민지쌤의 미술읽기-⑯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80년~1881년 인상주의/크기130.2Ⅹ175.6 cm/필립스미술관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80년~1881년 인상주의/크기130.2Ⅹ175.6 cm/필립스미술관

나는 8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세대이다. 88올림픽을 TV로 보고 자랐다. 학창시절 TV 속 연예인을 보고 여름 야영캠프 무대에서 친구들 앞에서 보여줄 춤을 연습했다.

20대가 되어서도 TV 사랑은 계속되었다. 월드컵도 TV로 시청하면서 ~한민국을 외쳤고, 응원가를 따라 불렀다. 내가 본 텔레비전 속에는 온갖 재미난 일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불가능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TV를 보면서 울고 웃고 분노하고 감동하며 자랐던 세대였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커다란 거인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만능 엔터테이너들이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와 급격한 IT 기술의 발달하면서 컴퓨터로도 TV를 보는 게 가능해졌고, 채널도 많아졌다. 이제는 스마트 폰으로 TV도 볼 수 있고, 내가 직접 채널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무엇이든 만들고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직업도 바뀌고 다양해진다. TV를 만들던 사람이 이제는 유튜브도 한다. 요즘 나는 유튜브를 달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로 영화도 보고 뉴스도 보고 드라마도 본다.

미술이라고 별수 있나. 화가도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긴 마찬가지다.

위대한 화가 프랑스 출신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1841년 출생 1919년 사망). 그는 도자기에 무늬를 그려 넣는 일을 했다. 하지만 도자기에 그림을 붙이는 기계가 발명되면서 그는 회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때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미술교습을 받아 1862년 에콜 데 보자르에 합격한다.

르누아르는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1870~1871년까지 치러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참전해 슬프게도 사랑하는 친구인 바지유를 잃었다. 전쟁이 종식된 후, 르누아르는 전쟁의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그림에 몰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눈에 보인 평범한 일상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림은 고통을 잊을 만큼 아름답다. 더 이상 그림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르누아르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화풍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부르주아의 여가 생활과 같은 일상적인 주제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으며 여성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데 뛰어난 재주를 가졌었다.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섬세하고 정교한 회화 테크닉은 고전주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 화풍으로 그려진다. 그림이 아니라 마치 사진처럼 선이 없이 보들보들하고 매끈하게 그린 것과 고흐의 작품처럼 물감을 덧칠해 질감이 남겨지게 한 것이다.

그는 일흔이 넘어서 관절염으로 고통받자 따뜻한 프랑스 남부로 이사를 하게 된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그림을 그렸다. 손에 마비가 오자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까지 했다. 이 광경을 본 르누아르의 친구가 왜 그리 고통스러워하면서까지 그림을 그리냐고 묻자,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며 그림에 몰두한다.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화가의 열정 앞에 나이도, 육체적 고통도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작품만 있을 뿐이다.

르누아르는 자신의 아이들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르누아르는 세 명의 아이 피에르, , 클로드를 두었는데 장은 후에 배우로도 활동하는가 하면 나중에는 영화감독이 된다. ‘가브리엘, 장 느루아르와 어린여자아이(1895~1896)’작품에는 보모 가브리엘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 가브리엘은 장에게 기뇰인형극을 소개해 주었고 1974나의 인생과 나의 영화를 출간하며 보모가 준 영향을 진술하기도 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처럼 장 르누아르는 아버지의 그림에 영향을 받아 국제적으로도 성공하며 1975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고, 프랑스 영화의 개척자가 된다.

화가의 일생을 돌아보면 묘하게 현재와 닮았음을 느낀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시대는 예술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예술은 기술을 따라간다. 이제는 미술관도 유튜브를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으로, 유튜브로 미술관의 소식을 확인하고 있는데 시대의 흐름을 따라 이제 미술관에서 다양한 챌린지를 시도하고 있다.

직접 가보지 못하지만, 여전히 예술은 현재 진행형이다. 2020년 코로나 시대,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히 남는다라는 르누아르의 말처럼 나도 이번 추석에는 아이와 함께 미술관 챌린지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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