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26

다은이는 나를 부를때 주변 사람들이 ‘다은이 엄마’라고 불러서인지 자기도 ‘다은이 엄마’라고 불렀다. 소유의 개념이 강해져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다은이는 작년까지 조부모를 ‘다은이 할머니, 다은이 할아버지’라 칭했다.)
다은이는 나를 부를때 주변 사람들이 ‘다은이 엄마’라고 불러서인지 자기도 ‘다은이 엄마’라고 불렀다. 소유의 개념이 강해져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다은이는 작년까지 조부모를 ‘다은이 할머니, 다은이 할아버지’라 칭했다.)

첫째 다은이는 생후 150일경부터 알아듣지 못할 말로 옹알이를 시작했다. 이후 엄마라는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고 생후 200일이 지나서는 의미를 지닌 엄마라는 말을 내뱉기에 이르렀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 여리디 여린 아기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비록 엄마라는 하나의 단어일 뿐이지만 옹알이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끊임없이 연습하고 시도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게 나를 엄마로 부르던 녀석이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다은이 엄마라고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다은이 엄마라고 불러서인지, 때마침 소유의 개념이 강해져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다은이는 작년까지 조부모를 다은이 할머니, 다은이 할아버지라 칭했다.)

4세 때 어린이집 친구들과 놀이터에 있을 때였다. 어김없이 나를 다은이 엄마라 부르는 소리에 옆에 있던 한 엄마는 혹시 다른 아이가 나를 부른 거냐고 물어보며 신기해했다. 다은이 엄마라고 하지 말고 그냥 엄마라고 부르면 된다고 수차례 말했으나 호칭은 변함이 없었다.

엄마를 부를 때마다 굳이 다은이 엄마라고 부르는 내 딸을 보고 친정 식구들도 웃었다. 외할머니가 다은이 엄마라고 하지 말고 엄마라고 부르라고 단단히 일렀지만 여전히 그 호칭은 한참동안 바뀌지 않았다.

어린이집 적응 첫 날 내가 “다연아, 선생님은 선생님 엄마고 나는 그냥 엄마야”로 소개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 다연이는 어린이집 적응기간 동안 엄마가 생각나면 “그냥 엄마 그냥 엄마~~~”를 외치며 울었다고 한다.
어린이집 적응 첫 날 내가 “다연아, 선생님은 선생님 엄마고 나는 그냥 엄마야”로 소개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 다연이는 어린이집 적응기간 동안 엄마가 생각나면 “그냥 엄마 그냥 엄마~~~”를 외치며 울었다고 한다.

반면 다연이는 한동안 나를 그냥 엄마로 불렀다. 어린이집 적응 첫 날 내가 다연아, 선생님은 선생님 엄마고 나는 그냥 엄마야로 소개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 다연이는 어린이집 적응기간 동안 엄마가 생각나면 그냥 엄마 그냥 엄마~~~”를 외치며 울었다고 한다. 순식간에 나는 엄마에서 그냥 엄마가 되었다. 내 말을 곧이곧대로 수용하는 다연이를 보며 아이 앞에서는 정말 말을 가려가며 해야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나서야 다연이는 드디어 나를 우리 엄마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문득 우리 엄마라고 말하며 내 얼굴을 쓰다듬는 둘째 다연이는 내가 뽀뽀해줄게라면서 이마, 양볼, , 입까지 골고루 입맞춤 해 주는 애교쟁이다. 어린이집에 다녀오면서 나는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 “내가 우리 엄마 진짜 많이 보고 싶었어”, “우리 엄마 귀여워라며 진한 애정을 표현하는 다연이.

두 아이가 내 다리를 한쪽씩 붙잡고 “내 엄마야”를 외치며 다툴 때만 빼면 ‘다은이 엄마, 다연이 엄마, 우리 엄마, 내 엄마’는 모두 다 듣기 좋은 말이다.
두 아이가 내 다리를 한쪽씩 붙잡고 “내 엄마야”를 외치며 다툴 때만 빼면 ‘다은이 엄마, 다연이 엄마, 우리 엄마, 내 엄마’는 모두 다 듣기 좋은 말이다.

두 아이가 내 다리를 한쪽씩 붙잡고 내 엄마야를 외치며 다툴 때만 빼면 다은이 엄마, 다연이 엄마, 우리 엄마, 내 엄마는 모두 다 듣기 좋은 말이다. , 누군가의 엄마라는 이유로 최윤애(崔閏愛)라는 고유의 이름을 잃고 싶지는 않다.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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