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의 재미있는 이슈메이커-⑳

사진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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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또각. 수업이 한창인 고요한 대학교 복도. 구성없는 구두 소리가 들려온다. 이미 늦어버린 수업 시간. 그녀의 발걸음에서 서두름이라고는 찾을 길 없다. 조용히 뒷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온다. 지루한 타이밍에 마침 잘 됐다는 듯 다들 뒷문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꽂는다. 배꽃같이 화사한 자태. 덕지덕지 바른 화장 사이로 겸연쩍은 듯 미소가 흐른다. 전공 시간이지만 전공 책은 보이지 않는다. 노트 한 권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가방을 내려놓고 수업은 다시 진행된다.

반대편에 앉은 필자는 수수하다 못해 조촐하다. 치장하는 따위의 일은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학문에 심취한 것은 아니지만 겉치레만큼은 유난스럽게 싫다. 요란한 허울보다 풍부한 내실을 다지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치 체계의 우선순위가 다른 그녀와 나는 극과 극의 캐릭터였다.

슬쩍 필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그녀의 눈빛이 이미 나에 대한 견적을 내린듯하다. 얼마쯤으로 측정된 필자는 그녀의 서열 순위에서 아마도 가장 하위권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필자의 서열 순위에서 그녀는 최하위권이었다.

책 한 권 없는 가방이 무슨 자랑거리인지 명품 로고가 부각된 가방을 의기양양하게 매고 간다. 브랜드를 알아본 친구들의 관심이 쏟아지자 그녀는 어깨를 우쭐 흔든다.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그녀는 그 순간을 즐기는 듯하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별나게 검소했다. 부모님이 100원을 주면 그대로 쓰지 않고 저금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돈이든 물건이든 아껴 쓰는 게 습관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겉모습에 치중하는 이의 내면은 부실할 것이라는 편견이 한몫 거들었다. 당연히 명품에는 관심 없고 브랜드 구분도 못했다. 그런 필자가 안쓰러워 부모님은 한 번씩 백화점을 데려가셨다. 공주처럼 키우진 않았어도 얼마나 예쁜 자식이던가. 한창 꾸며 예쁠 나이에 녹의홍상(綠衣紅裳) 걸쳐본 적 없으니 안타까웠으리라.

그 마음을 이해하고자 어머니가 골라준 원피스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는 모양새가 어줍다.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이 화사한 옷과는 생뚱맞다. 어머니의 강청에 못 이겨 장만하지만 몇 번 입지도 못하고 옷장에 전시되곤 했다.

수수한 이십대가 지나고 삼십대를 지날 즈음. 20년 가까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을 위해 제대로 된 사치 한번 누리지 못했음을 통감했다. 그리고 이렇게 흘려보낸 젊음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면서 필자의 철옹성 같은 가치관에 가느다란 실금이 생겼다. 오랜 세월 직장 생활에 필요 이상의 돈을 쓴 적이 없으니 돈이 부족할리도 없건만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돈 쓰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애꿎은 일 없이 억울하고 분했다. 궁상맞은 인생에 대한 보상을 하고 싶었다. 과감하게 저지른 첫 사치는 자동차였다. 생전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 필요 이상의 호사스러운 물건을 구매하는 일은 의외의 짜릿함을 선사했다. 인간이 느끼는 과시욕이란 것을 처음 느끼면서 비로소 그녀의 명품 가방이 이해되었다.

인간의 과시 욕구에 관한 연구는 1857년 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에 의해 대두되었다. 그는 과시적 소비’, ‘과시적 여가등의 말을 처음 사용했으며, 과시적 소비패턴을 일컫는 베블런 효과라는 경제학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베블런 효과는 가격이 오르는 데도 인간의 과시욕이나 허영심 등으로 인해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과시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과 더불어 남들보다 우위에 서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는 사회적 과시 행위를 통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반영하며, 사회적 지위나 위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를 포함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자신의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 아니다. 일 년에 한 번이나 있을 법한 호텔 브런치는 늘상 있는 일처럼 포장된다. 과시하고 싶은 욕구는 구태여 과하게 연출된다.

겉치레가 중요하진 않지만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인간의 욕구 중 하나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지나치지 않으면서 적당한 경계선 사이에서 가끔은 자신의 욕구를 표출하는 것도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보여주기식에 치중된 삶은 허울뿐인 허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이홍균. (2006). 한국인의 사회적 과시와 인정의 사회적 형식. 담론 201, 9(2), 207-243.

2. Mesure, H. (2007). Thorstein Bunde Veblen as precursor of business and society field. Society and Business Review, 2(1), 121-129.

유은경 사회과학 박사과정 중
유은경 사회과학 박사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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