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그냥 집으로 가래”....현대트랜시스 협력업체 비정규직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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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그냥 집으로 가래”....현대트랜시스 협력업체 비정규직의 눈물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09.09 2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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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쓰다 버려도 되는 일회용품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사장은 현대트랜시스다,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자를 복직하라”

여보 나 그냥 집으로 가래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2주 전부터 권고사직을 당하는 꿈을 꿔서 펑펑 울었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될 줄이야. 무슨 마음으로 사무실로 불려갔고, 무슨 마음으로 사인을 했고, 무슨 마음으로 뒤돌아 나왔는지 기억조차 없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문 앞에 식구들이 서서 저를 맞이하더군요. ‘여보 고생했어’ ‘엄마 잘했어라는데 또다시 눈물이 나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더군요.

지각 한번 해본 적 없는 회사 생활. 어쩌다 잠에서 늦게라도 깰 때면 미처 브래지어도 못 하고 부리나케 회사로 뛰다 정문 앞에서 아차 하고 당황했던 일, 12시간 동안 회사에 일하면서 혹시라도 사람들이 눈치챌까 봐 옴짝달싹 못 하고 계속 가슴 졸이며 온종일 일했던 시간들.

상도 받고 불량도 잘 잡았는데 무슨 근거로 회사에서 잘랐냐고 하는 식구들의 목소리도 눈물이 귀를 막아서라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더군요. ‘너는 왜 OOO한테 술을 안 사줘서 잘렸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뭐라도 바칠 걸 그랬습니다.”

7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권고사직 당한 노동자의 한숨 섞인 얘기 속에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울컥 눈물을 쏟는 사이에 다른 노동자도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라인작업이라 우리는 교대자가 없으면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갑니다. 갈려면 반장이나 조장을 그 자리에 세워 놓고 가야 하는데 편파가 아주 심해서 우리까지 차례가 오지를 않습니다. 술 먹고 밥 먹는 친한 사람에게만 화장실 가라고 배려를 해주니까요. 진짜 급해서 가야 되는데 못가다 보니 수시로 방광염에 걸려 고생을 하곤 했습니다. 이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반면에 나이 어린 남자 노동자들에게는 상당히 호의적입니다. 그들은 젊다 보니 주로 월급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수시로 이직을 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혹시라도 사표를 쓸까 봐 그런지 휴식도 여자들보다 긴 시간을 주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있도록 교대를 해주지요.

우리같이 가정도 있고, 나이 먹은 여자들이야 (회사)안나간다는 거 뻔히 아니까 배려대상에서 아예 제외시켜 버립니다. 이것이야말로 성차별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며 또 다른 비정규직 권고사직을 당한 노동자가 한숨을 쉬며 속풀이를 했다.

점심 먹고 난 후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를 불렀습니다. 면담 한번 없이, 제 의견도 청취하지 않고 사장님이 권고사직서를 내밀며 죄송하지만 쓰세요라며 사인을 하라고 하더군요. 지켜보니 전날 OOO이란 사람과 면담한 사람들은 자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현장에서 바라보면 면담한 휴게실이 다 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제스처를 취해놓은 상태에서 몇 분만 불러서 봐라. 우리는 각자 모두 면담했다뭐 이런 걸 사장님에게 보여주는 거죠.

이것은 순전히 현장 사무실에서 어떤 보여주기식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정작 저희는 부르지도, 의견도 묻지 않고 무작정 권고사직서만 코앞에 디밀었지요. 우리 세 사람 외에도 줄줄이 몇 사람 더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철밥통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 비참하게 해요. 현대트랜시스 직영(원청) 아내들이 간혹 몇 명 근무합니다. 그분들은 이번 사태처럼 일이 줄거나 회사가 어려울 때도 그냥 정리되는 것 없이, 내보내는 일이 없다는 거지요. 특히 한시직(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겨도 3~6개월짜리 단기로 자리배치 해주는 등 이거야말로 특혜 아니겠어요. 지금처럼 어려운 시국에서도 이런 부당함을 누리는 분들이 상당히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OOO란 사람은 평소에도 우리 비정규직원들에게 자존심 무너지는 소리를 자주 했습니다. 특히 가방 들고 와라. 일 못 하는 사람은 집에 보따리 싸서 가라며 면전에 대고 말하곤 했지요. 그래도 독설을 쏟아내도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눈 밖에 나는 날에는 언젠가 정말 보따리를 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당시의 일들을 회상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와중에 곁에 있던 한 분이 뭔가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바로 하얀 편지에 자필로 빼곡히 적은 한 통의 편지글이었다.

2020618일 그날을 잊을 수 없다는 한 노동자는 얘기도 하기 전에 눈물부터 터뜨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교대 근무를 하면서 일하고 있는데 사무실로 오라고 했습니다. 예감이 이상했어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책상에 사장님이 앉아 계셨고 책상 위에는 권고사직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설마 했는데 제가 여기에 해당되는 권고사직대상자라는 겁니다. 너무 당황해서 말 한마디 할 수 없었어요.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류에 사인하고 나왔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멍하니 눈물도 안 나오더군요. 그때 그 심정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을 못 하겠습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이를 대학까지 마치게 했던 것은 순전히 회사 덕이라고 했다. 그녀는 지금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노후도 노후지만 아이들 결혼도 시켜야하는데 막막할 따름이라는 그녀는 가슴을 잡고 한참 감정을 조절해야만 했다.

이럴 줄 알고 밤새 편지를 썼습니다. 어떻게 써졌는지 모르겠습니다며 하얀 편지지 두 장을 꼬깃꼬깃 접어서 손에 쥐여 주었다. 글씨는 눈물에 번졌지만 그녀의 정성 들인 활자는 기자의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2005년도에 현대 파워텍 사내 협력업체에 입사했습니다. 혼자 힘으로 살아갔지만 꿈을 꿀 수 있는 직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의 빈자리를 제가 대신 채워야 했기에 최선을 다해 일하면 아이들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겠다는 희망도 있었습니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꿋꿋이 버티고 버텨냈는데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고 보니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15년 동안 몸담으면서 아이 둘, 학교 한번 가지 못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진로담당 선생님께서 전화로 부모님 언제 학교에 오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대답을 못 했습니다. 보내주지 않았으니까요.

아이가 대학 입시를 보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실기시험을 치러 가는 날에도 함께 가지 못한 못난 엄마였습니다. 두 달 전부터 몇 번이나 관리자에게 얘기했지만 OOO란 사람은 자신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차 쓰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닌데 반려를 시키더군요. 한마디로 너 엿 먹어라이거 아니면 뭐였겠습니까. 그래도 서운하다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생계와 연관되어있는지라 불만이 있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도 저와 두 명의 자식을 키워주는 회사였기에 고맙다하고 다녔는데 하루아침에 권고사직이라니요. 자존심도 상하고 무엇보다도 저 자신이 너무 비참합니다. 그래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위안을 줍니다. ‘괜찮아. 잘했어. 잘한 거야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다독여도 너무 억울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보니 이 또한 소용이 없습니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3인은 현재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트랜시스 정문에서 혹은 후문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는 억울하다를 외치고 있다. 오늘도 그랬고, 어제도 또 그전에도 비가 오나 태풍이 부나 폭염이 찌고 지열이 펄펄 끓는 시간에도 그녀들은 도로 위에 서서 목소리를 낸다.

함께 지냈던 동료들은 그런 그녀들을 보면서도 애써 눈길을 피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안다. 이 또한 누군가에게 닥칠지도 모를 화살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래도 고마운 건 기운 내라는 전화 한 통화였다고 속내를 밝혔다.

아파도 함께 현장을 누볐고, 코피가 줄줄 흘러도 동료들에게 민폐가 될까 봐 참고 참았던 그때 그 시절,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다달이 하는 생리때도 화장실 한번 마음대로 못 가서 당황하던 기억들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도 바보처럼 그저 그립고 그립다는 세 사람. 한편으론 갑질을 당하면서도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기에 입술을 깨물며 살았던 곳이라 아프기도 한 곳이라고 말할 때는 가슴이 아팠다.

 

그녀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일련의 모든 것들은 단 한 사람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OOO란 사람 때문에 지치고 힘든 시기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협력업체가 네 번 바뀌고 세상도 바뀌었지만, 이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당해고에 이 사람의 사심이 전적으로 들어갔다고 주장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권고사직을 당하기 약 한달하고 2주 전, 사장님이 바뀌었습니다. 아직 일을 잘 모르시는 사장님을 대신하여 OOO란 사람이 살림했습니다. 그러니 사직에 관련된 일들도 당연히 위임을 받았겠지요. 말 그대로 권력을 휘두른 겁니다. 앞 사장님은 그래도 제재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사장)바뀌는 시점에 다시 날개를 달았던 거죠.

우리는 바랍니다. 일련의 일들을 조사해서 그에 대한 상응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당연히 저희들은 복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 세 사람은 현대트랜시스 비정규직원으로서 권고사직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하는 내내 한숨을 쉬며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당한 일들이 생각나서 힘든 탓이기도 했을 터이다. 그녀들은 협력업체 직원이었지만 엄연히 자신들의 진짜 사장은 현대트랜시스라고 말했다.

우리는 쓰다 버려도 되는 일회용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먹고 살아야 합니다. 해고는 곧 밥줄을 끊어버리는 살인입니다. 복직시켜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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