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쌤의 미술읽기-⑬

사과와 오렌지(Pommes et Oranges)1895~1900/캔버스에 유채/74x 93cm/오르세미술관
사과와 오렌지(Pommes et Oranges)1895~1900/캔버스에 유채/74x 93cm/오르세미술관

20년 전엔 스마트폰이 없었다. 그래서 고3 수험생이었던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내가 찾고 싶은 정보를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런데 알아보니 미대를 가기 위해서는 실기가 필수였다. 뒤늦게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술 대학에 가려고 서울로 올라가 재수학원과 미술학원 그리고 고시원을 등록했다. 이때 미술학원에서 수채화 시간에 제일 먼저 배웠던 정물이 바로 사과그리기.

사과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니야?’ 으리으리한 석고상들 앞에서 작은 사과는 언뜻 보기엔 굉장히 쉬워 보였지만 생각보다 그리기 힘든 것이 또 사과였다. 왜냐하면 사과는 구 모양과 같기 때문이었다.

3차원(입체)의 세상에 보이는 물건을 2차원(평면)에 담기 위해서는 빛을 알아야 한다. , 제일 어두운 부분, 반사광, 그림자를 이해해야만 구를 그려 낼 수 있다. 단언컨대 사과를 제대로 그릴 줄 안다면 모든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본다.

오늘 볼 만나볼 화가는 바로 사과를 제대로 연구한 폴 세잔(Paul Czanne)이다. 폴 세잔은 1839119일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세인트 조셉학교에서 그림을 배운 세잔은 그림을 계속 그리길 원했으나 은행가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엑상프로방스 법과대학에 들어가 2년 동안 공부하게 된다.

그러나 법대를 다니면서도 드로잉을 꾸준히 해온 그는 예술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1861년 결국 파리로 떠나게 된다. 그러나 1870년 프랑스 전쟁이 일어나자 파리에서 다시 마르세유로 옮겨간 이후 파리와 프로방스를 오가며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했다. 그러다 1880년 초부터 10년간 프로방스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세잔은 파리의 인상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들과는 또 다른 화풍을 꾸려나가게 됐는데, 인상주의자들이 빛의 순간적인 인상을 화가의 시선으로 연구했다면 그는 빛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관찰하려 했다.

특히 그는 사과의 매력에 푹 빠졌는데, 사과를 그릴 때 상투적으로 먹음직스럽게 표현하기보다 대상 자체에 집중해 표현하려고 했다. 세잔은 사과를 얼마나 대단한 존재로 여겼는지 초상화를 그릴 때 모델에게 움직이지 마시오. 내가 사과처럼 가만히 앉아 있으라 했잖소!”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꾸벅꾸벅 조는 모델에게는 얼마나 화가 났던지 모델의 얼굴을 그리지 않고 미완성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후 세잔을 만나는 모델들은 진한 블랙커피를 마시는 게 습관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 중 사과와 오렌지’(1895~1900)는 사과의 매력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느 정물화와 다를 것 없이 사과와 오렌지. 흰 천, 꽃병을 테이블에 놓았고, 화면의 정 중앙에는 아주 정성스럽게 사과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림을 가만히 보다 보면 약간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무언가 불편하고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특히 가운데 놓인 사과는 마치 떨어질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이 들게 하고 말이다. 테이블의 모양도 조금 이상하다. 가운데 사과를 두고 보면 마치 테이블과 뒤쪽 테이블 앞이 계단처럼 휘어진 모양이다.

이유는 이렇다. 보통 전통적 정물화 그림에는 하나의 시점이 통일되게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은 복수의 시점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보인 것이다. 또 사과 밑에 깔린 흰 천을 보면 천의 주름과 명암에 의해 사과가 떨어질 위치에 있지도 않은데, 마치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하자면 한 화면에 복수화된 시점을 사과를 중심으로 표현되어 감상자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준다.

세잔을 작품을 보고 메를로 퐁티는 사물들의 덮개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서 사물의 덮개는 바로 사과의 외면적 모습이며, 그림은 사과를 중심으로 복수의 시점이 드러난 광경이 되는 것이다.

세잔은 자신의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마치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당신은 테이블에 올려진 사과를 볼 것인가, 흰 천위에 깔린 사과를 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세잔은 190610, 선선한 가을에 야외 그림을 그리다 만난 소나기로 폐렴에 걸려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고향 엑상프로방스에 묻힌다. 그는 비록 사생아였으나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으로 평생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었다.

세잔은 1895년 생애 단 한 번 개인전을 개최한 게 전부이나 이후 20세기 다양한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20세기 회화의 아버지라 불린다.

우리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사과는 미술사에 아주 중요하게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였다. 세잔의 그림에서도 느껴볼 수 있을 정도로. 이토록 끊임없이 그려지는 정물이 사과 말고 또 있을까!

오늘날 휴대폰 뒤에 그려진 사과를 본다면 세잔은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젠 사과처럼 앉아 있지 않아도 되오! 우리에겐 이것이 있으니…….’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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