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당구공으로 코끼리를 구한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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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당구공으로 코끼리를 구한게 맞을까?
  • 서산시대
  • 승인 2020.08.0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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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저자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당구공은 그리 복잡해 보일 것 없지만 의외로 까다로운 조건을 채워야 한다. 40만 회의 타격과 5t의 하중을 견디는 내구성, 탄성은 필수이고 변형되지 않는 완전한 구형을 유지해 한다. 심지어 당구공이 타격 될 때 발생하는 시속 30km의 속도로 인해 당구대 표면과 순간 마찰열이 섭씨 250도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내열성도 필요하다.

당구공의 주요 재질은 페놀 수지로 이미 알려졌지만, 첨가되는 물질과 수십 단계에 이르는 제조 과정은 그야말로 당구공 업계의 극비 사항이다. 페놀수지는 플라스틱의 한 종류이다.

그렇다면 플라스틱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당구공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바로 코끼리의 윗턱에 있는 송곳니인 상아다. 상아의 특별한 성질로 인해 당구공뿐만 아니라 파이프 담배나 피아노 건반과 빗의 재료로도 사용됐다. 제국주의 시대 유럽 귀족들의 욕망을 채웠던 재료는 상아였고, 이들에게 상아를 공급할 수 있는 지역은 쉽게 추측된다.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 북쪽에 있는 연안에 코트디부아르공화국 République of Côte d’Ivoire’이 있다. 국명은 프랑스어지만 뜻은 상아해안 Ivory Coast’이다. 15세기 후반부터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인 이곳 해안을 중심으로 상아를 수탈했다.

상아로 나라 이름을 지을 정도니 얼마나 많은 코끼리가 희생됐을지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에 당구공이 상아로 만들어지면서 그 수요는 급증했을 거다.

상아에 대한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은 생태계에도 멸종이라는 위기를 가져왔다. 19세기 중엽 어느 미국 당구용품 회사가 상아 대체 물질을 만드는 사람에게 10,000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신문에 광고를 냈다. 미국 뉴욕의 인쇄공이었던 존 웨슬리 하얏트 John Wesley Hyatt는 석탄에서 열가소성 물질을 뽑아내 상아와 유사한 물질을 만들었다. 바로 셀룰로이드라는 이름을 붙인 최초의 천연수지, 즉 플라스틱이 등장한 거다.

하지만, 그는 그 상금을 받지 못했다. 이것으로 상아 당구공을 완전히 대체하긴 어려웠다. 이 천연수지의 주성분인 나이트로셀룰로스 성질 때문이다. 소위 폭약의 재료이기도 한 이 물질은 처음에는 잘 깨지고 잘 폭발해 당구공으로 쓰기가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셀룰로이드로 덕분에 상아 느낌이 나는 물건을 서민들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현재 당구공의 주성분인 페놀수지의 등장은 언제일까. 이후 1906년에 미국 화학자이자 사업가였던 리오 베이클랜드가 독일 화학자 폰 바우어의 논문을 찾아내 석탄에서 추출한 폼알데하이드와 페놀의 반응 방법을 개선했고 자신의 이름을 따와 베이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했다. 이것이 최초의 인공 합성수지인 플라스틱이다.

석탄으로 만든 페놀수지부터 시작해 1937년 네오플랜과 나일론이 등장했고, 석유가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100년이 지나지 않아 석유화학공업으로 만들어진 만능물질과 에너지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도 평범한 사람들도 양질의 물질을 사용할 수 있게 물질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인류의 이익을 위해 희생된 자연은 코끼리뿐만 아니다. 그리고 과학이 그 자연을 구한 이야기가 항상 따라 나온다. 보랏빛 염료를 얻기 위해 고둥 12,000마리 죽여 얻은 양은 고작 1g이다. 향유고래를 포획해 뇌에서 기름을 뽑아 등불로 인류의 밤을 밝혔다.

소설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당시 고래의 남획을 다룬 이야기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자연의 희생이 인류의 욕망을 채웠다. 그리고 과학이 자연의 위기를 구했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닐까. 상아가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었지만, 코끼리는 예전처럼 평화롭게 아프리카 초원을 누비며 살고 있지 않다.

지금도 동물의 신체가 인류의 탐욕과 부의 상징으로 거래되며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잔인한 방법으로 희생되고 있다. 왜 여전히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은 고통을 받고 있고, 지구의 생물 종은 계속 사라지고 있는 걸까. 인간은 탐욕의 세대가 바뀌었지만 그 잔인함은 달라지지 않았다.

효율과 단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지구적 미래를 위한 장기적 안목과 투자는 사라졌다. 지각에 있던 탄소를 꺼내 연일 넘쳐나는 일회용품과 화석연료로 지구 대기와 자연에 쏟아내고 있다.

기후변화로 촉발한 생태계의 변형과 서식지 변화로 결국 바이러스까지 동물의 몸을 타고 인간에게 이동했다. 탄력성을 잃어버린 인류 사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연의 실험에 무력화 됐다. 뉴노멀이라는 말이 회자 되지만, 누구도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수 없어 보인다. 기존에 알고 있던 사회적 경험과 법칙들이 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당구공으로 자연을 구했다는 건 오만일지 모른다. 모든 것이 멈췄다. 멈춘 시간, 둥근 지구 위에서 인류가 자연과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당구공처럼 둥글게 살아왔었는지 생각해야 할 시간임을, 자연이 깨달으라 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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