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8명의 자녀를 기르는 태안 그룹홈 송옥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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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18명의 자녀를 기르는 태안 그룹홈 송옥희 원장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07.28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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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이 우리 애들을 가족으로 만났다는 것

“18명의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지금보다는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태안 그룹홈 ‘희망터전·봄언덕’ 송옥희 원장.
태안 그룹홈 ‘희망터전·봄언덕’ 송옥희 원장.

프롤로그

지금의 내 인생은 덤으로 주어진 선물이다. 건강해지면서 생명이 연장됐고,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18명의 자식이 생겨 내 눈을 바라보고 있다. 오히려 지금의 나는 아이들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태안 희망터전·봄언덕송옥희 원장.

기자가 가는 날은 장마로 인해 장대같은 비가 내렸고 가는 곳마다 물웅덩이가 생겨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어려운 길을 뚫고 겨우 도착한 그곳에서 기자는 99일 신생아를 안고 있는 송옥희 원장을 만났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푸근한 인상과 밝은 미소의 주인공 그녀를 보며 거실로 안내되었고, 그곳에는 올망졸망한 눈을 하며 반갑게 인사하는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서산시대는 1층 남자아이들과 2층 여자아이들의 희망터전봄언덕을 운영하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돌보고 있는 송 대표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고향이 인천이라고 들었다. 혼자 태안으로 내려온 계기라도 있었나?

미혼인 서른 살의 내가 암에 걸렸다. 봉사를 하고 있던 차에 닥친 몹쓸 병은 나 자신을 코너로 몰아붙였고 나는 한동안 멍한 기분으로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이왕 죽을 거면 지금까지 하던대로 봉사나 하면서 생을 마감하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조금씩 모아놓은 돈을 들고 봉사를 하기위해 태안으로 내려오게 됐다.

당시 이 사실을 부모님께 알렸다. “인천에서 태안이 어디라고 그 몸으로 가느냐?. 그리고 바닷가에 병원이 제대로 있기나 하겠냐. 특히 바닷가 사람들은 드세다고 하던데.”라며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마음 정리를 했기에 부모님을 설득했고, 마지막은 좋은 일을 하며 삶을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객지에서 아기들과 아이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시설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묻는다. 왜 굳이 힘든 갓난아기가 있는 곳을 선택했었냐고. 나는 말한다. “모두 힘들다고 두손 두발을 드니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고, 또 그것이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을 살아가는 나에게 그나마도 후회가 덜 될 것 같아서라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그 속에서 울고 웃으며 생활했다. 신기하게도 언제 아팠는지 고통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나는 드디어 삶의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천리포수목원에서 1박2일 여행 중
천리포수목원에서 1박2일 여행 중

아동복지시설 공동생활가정 그룹홈을 갑자기 운영한 이유는?

5년가량 함께한 혈육 같은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봉사하고 있던 곳이 아동시설은 힘들다며 노인요양원으로 바꿔 버렸다. 아이들은 각자의 연고지로 보내졌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갈 곳이 없는 5명의 아이들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학교에서 콜렉트 콜로 이모 우리 다른 곳으로 가야 돼? 난 갈 곳이 없어. 나는 모르는 시설로는 가기 싫어라며 두려운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교회 사역으로 조금씩 월급을 받고 있던 때였는데 한 달 전화비만 30만 원 이상이 지출될 정도로 아이들은 불안에 떨었다. 함께 울면서 고민에 고민을 더했다. 5명의 아이가 다른 시설로 떠나기 전날, 결국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한진아파트를 월세로 얻어 함께 살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펑펑 눈물을 쏟았고, 나 또한 아이들과의 이별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그렇게 짐을 챙겨 유난히 추웠던 그해 2, 난방도 잘 안 되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난방을 돌려도 냉기만 가득해서 몇 겹으로 내복을 껴입었고 그래도 추우면 서로의 체온을 나눠가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서로 가족이 되어 잘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 시절 지금 와서 돌아봐도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이 우리 애들을 보내지 않고 껴안았다는 사실이다.

처음 인천에서 내려와 만난 6살 딸아이는 이제 23살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3살이던 우리 아들은 20B대학 물리치료학과에 다니고 있다. 모두들 잘 자라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후원회의 밤 행사 장면
후원회의 밤 행사 장면

다른 얘긴데 이곳은 후원회 조직이 잘 되고 있다고 들었다. 후원회장님은 어떻게 만났나?

우리는 그분을 고모님이라고 부른다. 고모님의 자녀분이 1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으로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자원봉사를 왔었다. 그때 만났다. 고모님은 한주도 빠지지않고 이곳으로 오셔서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몇 시간이고 기다렸다 다시 태워다주곤 하셨다. 특히 아이들과 영화도 함께 보시고 대화도 하며 몸소 자원봉사를 실천해주시며 정신적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무엇보다 감사하게도 늘 우리 아이들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해주신다. 얼굴도 이쁘신데 마음씨는 백배나 더 이쁘신 분이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만18세가 되면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하지만 후원회원님들 덕분에 자립할 때까지, 대학 졸업 때까지, 취업이 될 때까지 등 서로 여건이 되는대로 같이 살 때까지 함께 있을 수 있게 도움을 주신다.

이 모든 것이 고모님이 직접 발 벗고 나서서 후원회원분들을 결성해 주시고, 손수 앞장서서 도와주신 덕분이다. 벌써 11년이 되었다. 고모님으로 인해 1년에 한 번씩 후원회 밤을 통해 우리 식구들이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내가 키우는 게 아니야. 후원하시는 분들이 너희를 키워 주시는 거야. 그분들은 너희가 누군지도 몰라. 그래도 다 도와주잖아. 그분들처럼 너희도 커서 힘들어하고 아픈 사람들이 있으면 꼭 도와줘.”

백일된 아들
백일된 아들

이곳에는 유난히 어린아이들이 많다. 많이 힘들텐데?

힘들지만 나는 운명이라 생각한다. 맨 처음 고등학생인 비행청소년이 여기를 들어오게 됐다. 수시로 집을 나갔고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받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1년 동안 키우면서 걱정을 달고 살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졸업장을 받게 했고 그 아이는 자립을 하게 됐다.

사실 그 아이 때문에 아기들이 줄줄이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아이가 미성년자일 당시 알던 친구들이 아기를 낳으면 내가 딴 데는 모르는데 살아보니까 우리집에 맡기면 아무 문제 없이 정말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키워줄거야. 거기로 보내면 너무 좋아라고 해서 그 바닥에 우리 집이 좀 알려졌던가 보다. 심지어는 미혼모였던 여동생이 낳은 아기도 데리고 왔더라. 자기에게는 조카인데 말이다.

안 받아줄 수도 없었다. 아기들은 선택할 수가 없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서 출산하고 집에 데려가지 못하니까 미혼모들이 키워달라고 데리고 온다. 내가 힘들다고, 아이들이 많다고 받지 않으면 이 아기들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 때는 버리지 않고 데려오는 것만도 고맙다.

심지어는 10대 산모가 4대를 거쳐 5대에 이르는 집도 있다. 우리 집에 온 아이가 5대 아기인데 그때 생각했다. ‘최소한 우리 집에 있으면 20대 엄마는 되지 않겠지. 그래 10대 엄마의 끈만은 반드시 끊어주자!’ 그 사연을 알면 안 받아줄 수가 없다.

사람들은 나를 생각해서 힘들어서 암수술까지 받았으면서, 대상포진까지 왔으면서 또 받았냐며 힘드니까 받지 말라고 했다. 사실 나도 초등학생부터 받으면 좋겠다. 날밤 새우지 않아도 되고. 어린 아기들이라고 더 봐주지도 않는데 굳이 힘든 길을 깔까.

근데 부모가 자식을 대학생 따지고, 초등학생 따지면 그게 무슨 부모인가.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대로 받아야지. 그래서 최소한 우리 집에 와서 10대 엄마만 면해도 좋잖아.

내일이 백일인 아기는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우리집으로 온 아기다. 힘들지만 그래도 힘들다고 선택해서 아이를 받을 수는 없다.

애기들 돌잔치
애기들 돌잔치

 

사춘기가 되는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는 없나?

왜 없겠나. 나는 아이들이 마음을 다쳤을 때가 가장 가슴아프다. 여기는 도시 같지 않고 군 단위라 마을 사람들이 적다. 누구네 애들인지 아니까 학교에서 놀림당할 때도 있고, 낙인화되어 있을 때도 있더라.

우리 애들은 후원자님들 덕분에 잘 입는다. 이런 걸 보고 일부 어른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너는 얼마나 부자라서?”라는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것을 애들이 벌써 눈치채고 엄마 속상해할까 봐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집 처방전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여름방학이면 펜션을 빌려 사춘기 우리 애들을 한 명씩 데리고 1:1로 맛있는 거 해주면서 그 아이만을 위해 얘기 들어주고 속상함도 풀어준다. 특히 주변에 놀림당하고 왔을 때도 있었을 것이고, 동생들에게 뺏긴 엄마의 정이 몹시도 그리웠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날만은 오롯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다. 너무 행복해한다. 이 모든 것도 다 후원회원님들의 배려다.

지난번에는 사회로 나간 우리 아이가 꽃과 선물, 봉투와 편지를 써서 들고 왔더라. 그때 아이는 이런 말을 했다. “여기 살았을 때는 불행한 줄 알았다. 나가보니 행복하게 잘 컸더라. 잘사는 애들은 학원 다니며 공부만 했던데 나는 중·고등학교 다니며 승마, 골프, 요트, 여행 등 안 해본 게 없었다. 정말 무수한 경험과 체험을 했다. 심지어 그때는 엄마가 어디 가자고 하면 싫을 정도였는데... 사회에 나가보니 그 어떤 강남 애들보다 더 잘하고 살았구나란 걸 알았다. ‘우리 엄마 그때는 고생 많았겠구나!’ 이제사 느껴진다. 그러니 우리 동생들도 우리처럼 힘들더라도 많이 해주라

아이들의 단란한 한때
아이들의 단란한 한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애들은 보호자들이 모두 있고 우리는 양육만 한다. 18세가 되면 아이들은 그동안 수급비, 후원비, 생활비 등을 모은 돈으로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그때 부모들이 찾으러 오는 경우가 있다.

따라가지 말라고 해도 부모 정이 그리웠던 아이들이라 또 선뜻 따라나서는데 잘 살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정착금을 모두 뺏기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너무 속상하다. 내 아이의 눈물 앞에서 엄마의 나는 물물이 무너진다.

부모는, 부모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런 대가 없이 다 내어주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밖에 없다.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우리 애들이 이다음 커서도 서로가 가족처럼 잘 챙기며 함께 살아가기를, 그리고 후원자분들의 마음을 이어받아 사회에서도 자기 역할 잘하면서 주변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잘 챙기며 살아가기를, 그리고 부디 부모의 소임을 다할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 달라고.

아이들과 단란한 한 때
아이들과 단란한 한 때

에필로그

우리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이 땅의 부모는 그냥 되는 게 아니란 걸 절실히 깨닫는다. 오늘도 아이들의 자는 얼굴을 바라본다. 너무도 귀하고 사랑스럽다.

이토록 이쁜 우리 애들을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고 특히 대학도 가고 부족한 생활비도 채워주시는 고모님(후원회장님)을 비롯한 후원자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 꼭 올린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덕분에 행복한 여정을 할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룹홈 희망터전 & 봄언덕송옥희 원장.

인터뷰를 마치며 송옥희 원장은 우리 딸이 선택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더라. 이처럼 아이들은 선택없이 태어난다. 그리고 여건이 되지 않아 이곳으로 오게 된다. 내가 힘들다고 해서 키우지 않으면 또 누군가는 해야 할 몫이라며 우리나라는 아동에게는 관심이 없다. 민생법 올라가 봐야 유권자가 아니니까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게 너무 속상하다. 그러다 보니 아동복지법은 12월이면 폐기되는 현상이 해마다 벌어진다. 부디 제도적인 뒷받침이 이루어져 우리 애들이 밝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가족들의 단란한 하루
가족들의 단란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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