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19

생일 파티는 주로 유치원 교사인 첫째 언니의 주도로 준비되었는데, 그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성대했던 내 어린 시절의 생일 파티는 막을 내렸다.
생일 파티는 주로 유치원 교사인 첫째 언니의 주도로 준비되었는데, 그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성대했던 내 어린 시절의 생일 파티는 막을 내렸다.

1982년 윤달 429일 저녁 7, 내가 세상에 첫발을 내밀었다. 우리 가족은 음력으로 생일을 챙겼지만, 나는 윤달에 태어난지라 예외적으로 양력 생일을 챙기게 되었다. 어려서는 생일이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가족들은 한 상 가득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가까운 아이들을 초대해 내 생일을 함께 축하해 주었다. 생일 파티는 주로 유치원 교사인 첫째 언니의 주도로 준비되었는데, 그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성대했던 내 어린 시절의 생일 파티는 막을 내렸다.

가족들은 한 상 가득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가까운 아이들을 초대해 내 생일을 함께 축하해 주었다.
가족들은 한 상 가득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가까운 아이들을 초대해 내 생일을 함께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매년 6월이 되면 마음이 설렜다. 올해 생일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을 수 있을까 내심 기대하며 그날을 기다렸던 것 같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직장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주변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만큼 내 생일을 기억해 주는 이는 점점 줄어들었다.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다보니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한 나는, 매년 생일이면 번번이 나의 옹색한 인간관계를 반성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무던해지는 게 기념일인지라 울리지 않는 휴대폰이 그리 속상하지는 않다.

아이들 생일은 출산의 기억이 겹치면서 소중한 날로 기억되고 있다.
아이들 생일은 출산의 기억이 겹치면서 소중한 날로 기억되고 있다.

몇 년째 친정엄마마저 깜빡하고 지나치는 내 생일, 아이가 없었더라면 조금은 외로웠으리라. 엄마가 되고 난 후에는 내 생일이 1365일 중 그냥 일상적인 하루일뿐이라고 가볍게 여기기도 한다. 그건 어쩌면 엄마바라기인 아이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어떠한 모습에도 변함없이 무한한 사랑을 주는 두 딸이 있기에 내 탄생을 기념하는 하루가 뭐 그리 특별하진 않았던 것 같다. 거기에 매년 손수 끓여주는 남편의 생일 미역국이 더해지니...

아빠의 사인에 따라 “엄마 생일 축하해요!”를 외치는 나의 미니미들
아빠의 사인에 따라 “엄마 생일 축하해요!”를 외치는 나의 미니미들

아침 댓바람부터 아빠의 사인에 따라 엄마 생일 축하해요!”를 외치는 나의 미니미들. 엄마 생일에는 겨울왕국 케이크, 아빠 생일에는 뽀로로 케이크를 당당히 고르는 대신 큰 목소리와 즐거운 표정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두딸들이 있기에 이번 생일도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이제 내 생일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대신, 아이들 생일은 출산의 기억이 겹치면서 소중한 날로 뇌리에 인식되어 있다. 유도분만 끝에 응급 제왕절개수술로 태어나 신생아 중환자실로 갔던 3.21kg의 첫째 다은이, 좋은 날을 선택해 제왕절개수술로 건강히 태어난 3.32kg의 둘째 다연이.

아이들의 생일에 더해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마저도 특별한 날로 느껴지는 걸 보면 이런 게 바로 내리사랑이 아닌가 싶다. 더운 여름, 불혹이 넘은 나이에 늦둥이인 나를 해산하고도 앞선 5남매 뒤치다꺼리에 제대로 된 산후조리조차 하지 못한 우리 엄마.

더운 여름 우리 엄마는 나를 낳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일이 되면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건 당연 내 몫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보다 엄마가 기억해 주지 못하는 게 더 서운하게 느껴지다니. 엄마에게 죄송하지만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은 내 경우에도 가감 없이 적용된다.

엄마 생신이면 내 고향 경주에는 벚꽃이 한창이다. 올해 생신에는 코로나19 사태가 겹쳐 엄마도 찾아뵙지 못하고 보문단지의 흐드러진 벚꽃도 보지 못했다. “시국도 안 좋은데 괜히 와서 북적대면 안된다며 오지말라고 말렸던 엄마였지만 속으론 또 얼마나 그리웠을까.

나와 딱 마흔 살 차이나는 79세 우리 엄마. 내가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엄마는 나를 바라보고 있겠지? 엄마가 지금처럼만 계속 건강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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