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쌤의 미술 읽기-⑦

폴 고갱 / 밤의 까페, 아를/ 1888/ 92x72cm/ 캔버스에 유채/ 모스크바 푸쉬킨 시립 미술관 소장
폴 고갱 / 밤의 까페, 아를/ 1888/ 92x72cm/ 캔버스에 유채/ 모스크바 푸쉬킨 시립 미술관 소장

고갱은 184867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해는 18482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해였다. 정치적 혼란기에 신문의 정치부 기자였던 고갱의 아버지는 가족과 프랑스를 떠나 페루로 가게 되지만 여객선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어린 시절 페루 리마에서 보내다 1854년 프랑스에서 돌아왔으며 1865년 선박의 항로를 담당하는 도선사가 되어 세계를 여행하다 1871년 어머니가 사망한 후 다시 파리에 와서 증권 거래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어릴적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림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그가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결혼이후 5명의 아이가 생기고 난 후 쯤이었다. 조금씩 미술품을 구입하다 직접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되었고, 살롱전에 출품도 하게 되었다.

1883년 그는 35세에 증권 거래점을 그만 두고 전업 화가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화가가 된 뒤 생활은 어려워졌고 가족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경제적인 후원은 매우 중요했다.

1887년 가을 고흐와 고갱은 파리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고흐의 동생 테오의 주선으로 만나게 된 두 예술가는 서로 영감을 주면서 그림을 그리고자 했으며, 특히 옐로우 하우스라는 공동 작업실을 통해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소통하길 원했다.

평소 고갱을 매우 좋아했던 반고흐의 끈질긴 구애 끝에 다음해 18881023일 프랑스의 남부지방 아를로 내려가 작업을 하게 된다. 그 둘의 만남은 세기의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 둘의 예술적 교감은 단 9주만에 끝나고 만다. 둘의 동거는 아슬아슬했다. 고갱은 고흐와 예술적 작업방식이 달라도 너무 달라 자주 타투었다. 한마디로 터지기 직전의 화약고 같았다.

고갱이 아를에 온지 2주쯤 되었을 때, 고갱과 고흐는 평소 자주 가던 라가르 카페의 주인 지누 부인의 초상화를 함께 그리게 되었다. 고흐는 모델이 된 그녀에게 아를의 민속의상을 입어 달라고 부탁했다.

고흐는 방안에서 책을 들고 나와 하나는 부인 앞에 펴 놓고 나머지는 그 옆에 펴 두고 그녀의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고갱은 지누부인을 책 대신 압생트 술잔과 술병과 함께 그렸으며, 술에 취한 사람들과 함께 뒷 장면까지 묘사했다.

같은 여인이지만 두 예술가는 인물에 너무 다른 시선을 가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지누부인은 아를의 여인'에서 고마운 여인으로 고갱의'아를의 카페에서'라는 그림에서 창녀로 묘사되었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고흐의 주변인물에 대한 멸시와 비하가 담겨있었다.

고갱은 평소 고흐가 좋아하던 사람들에 대한 조롱이 담긴 그림으로 아를의 카페를 그려냈다. 그리고 동료 화가 에밀 베르베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친구 고흐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쉽게 넘어가는 무른 사람이라는 말로 고흐를 비난하게 된다. 자신을 좋아하던 고흐를 보며 그의 재능을 아래로 보았으며 그에게 친구 고흐는 예술가의 우정이었다기 보다 동생 테오의 후원을 위한 비즈니스 관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고갱은 1903년 쓴 그의 책 <전과 후(Avant et Apré)>에서 자신이 반 고흐의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고갱은 생전 1점밖에 팔지 못한 고흐의 그림이 21세기에 얼마나 비싼 값에 낙찰되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그림에 대한 견해 차이로 고갱은 고흐와 그게 다투었고 이에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라버리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되기도 했다. 그 뒤 고갱은 아를을 떠나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떠나 버렸고, 그리하여 그 둘은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 그 후 고갱은 타히티의 원시성에서 미술에 대한 영감을 받고 그림을 그렸으며 그곳에서 오랜병마와 약물중독에 시달려 1903년 사망하게 된다.

고갱과 고흐의 흔들린 우정을 보면서 나는 몇 년전 절교한 친구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중학교때부터 친했으나 늘 다투고 화해하는 것을 반복해 왔던 우리. 그러다 30대가 되어 함께 간 여행에서 그녀는 내게 만약 지금이라면, 난 너와 친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 없으나 난 그날 상당히 마음이 상했고, 여행지에서 돌아온 나는 조용히 카톡에서 그녀의 연락처를 지워 버렸다. 평생갈 것만 같은 우정도 때론 사사로운 문제앞에 크게 흔들릴 때가 있다. 고갱과 고흐가 그랬던 것처럼.

우린 다시 연락할 수 있을까? 어쩌면 고흐와 고갱처럼 영영 만나지 않을지도....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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