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영 약사의 「약」이야기-54

영구적 제거 방법은 레이저 요법...정말 필요할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진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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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싶다. 한창 자랄 시기라 몸에 대해 호기심도 생겼다. 문득 내 종아리를 보니 털이 보였다. 뭉실뭉실하였다. 촘촘한 구멍(모공)에 한두 가닥씩 솟아나 있었는데 신기하게 보였다. 그러나 썩 흉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제거 작전을 짰다. 모두 뽑아버릴까? 그러면 그 통증이 만만치 않겠지. 가위로 잘라 버릴까? 밀도를 고려하면 셀 수조차 없는데 모두 잘라버리기에는 어림없겠지... 그러다 아버지 면도기를 발견하였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그 유명한 도루코 면도기였다. 집마다 하나씩은 있었던 바로 그 면도기였다. 80년대 후반엔 통째로 된 1회용 면도기가 없었고 면도기에 면도날을 갈아가며 썼었다. 물론 전기면도기도 흔하지 않았다.

나는 그 면도기로 다리털을 싹 밀어버리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엇대어 피가 났다. 그러나 힘을 조절해가며 그 강도와 방향을 체득하였다. 단숨에 손 감각이 생겼고 그날 종아리의 털을 시원스레 죄다 밀어버렸다. 아주 말끔하였다. 피부는 얼음판처럼 매끈하고 가뿐하였다.

그러나 단 이틀뿐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부터 다시 나기 시작하였으니 말이다. 다시 면도기로 밀어버릴지 고민하였다. 그러나 어차피 또 날 게 아닌가. 그냥 놔두기로 하였다. 이후 새로 나는 종아리 털을 보니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일반적으로 체모는 일정 길이로 성장하면 자연적으로 잘리고 안에서부터 다시 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인체의 털은 짧은 것부터 긴 것까지 다양하게 있다. 이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잘라내면 모든 체모가 같은 시점에서 나기 시작하니 길이가 모두 동일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라고 있는 체모를 보면 누가 보더라도 밀었던 자국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다시는 면도기로 밀지 않았다.

누군가는 체모를 자르거나 면도기로 밀어버리면 굵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그릇된 상식이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면도를 시작할 나이가 10대 후반 이후인데 수염이 짙어지기 시작할 때이기 때문이다. 면도 시작 시기와 수염이 나고 굵어지는 시기가 겹치는 것이다. 오비이락 격이랄까.

여담이지만 내 개인적으로 체모가 풍성해지며 좋은 점도 있었다. 모기가 체모를 뚫고 들어가지 못해 모기에 물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터럭은 자연 모기장인 셈이다.

제모는 미용 목적으로 여름에 자주 하게 된다. 방법이야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 방법이 화학적인 방법인 제모제를 이용하는 것이다.

제모제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체모의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체모는 특수한 단백질 조직으로 엘라스틴과 케라틴 구조로 되어 있어서 탄력성과 강도가 뛰어나다. 모발 1가닥으로 150g을 버틸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튼튼한 체모를 어떻게 부수어버릴까?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특수한 약품(치오글리콜산)으로 수분을 털의 단백질 조직에 집어넣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털 주요 성분인 케라틴 단백질의 결합이 쉽게 파괴된다. 자연적으로 탄력성은 줄어들게 되고 약한 강도로도 쉽게 부서진다. 종이를 물에 적시어 냉동시킨 후 망치로 두들기면 쉽게 부서지는 것과 이치가 비슷하다.

그러나 제모제는 강제적으로 털을 부수는 만큼 피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사실 체모와 피부는 연속선상에 있다. 제모제를 털에 주입한다면 피부에도 약품이 주입될 것이다. 그나마 피부는 각질층이 있어서 이를 최대한 방지하고 있다. 부작용으로 피부염 등이 있을 수 있으므로 조심하여야 한다. 제모제를 사용한 후 사용한 부위가 발갛게 부어오르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제모제는 일시적으로 체모를 제거하는 만큼 시간이 지나면 또 생겨 자란다.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은 없을까? 병원에 방문하여 레이저 치료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할 정도로 체모를 제거하는 것이 좋을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꼭 필요한 시기에 제모제를 사용할 것을 추천하고 싶다. 물론 피부가 민감하다면 이마저도 피하는 것이 좋겠다.

장하영 세선약국 약사
장하영 세선약국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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