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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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놓여 있다
  • 서산시대
  • 승인 2020.06.2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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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저자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박물관에 가면 석기와 청동기 유물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박물관에서도 철재로만 만들어진 과거 유물을 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뭘까. 우리는 인류가 사용한 재료의 흔적으로 고고학상 시기를 나눈다. 그렇다면 석기시대 이전에 목기시대는 있었을까?

인류는 단단한 석재나 금속재료를 다루기 이전에 목재를 훨씬 쉽게 다룰 수 있었을 거다. 나무가 지금까지 남아 있을 거로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철은 단단하니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시대적 구분으로 보면 철기 시대는 청동기 이후다. 금속을 다루는 야금술(冶金術)에는 열이 필요하다. 결국 불의 사용과 금속사용 시기에는 관련이 있다. 청동의 주재료인 구리는 약 1,000도에서 녹지만, 철은 그보다 500도가 더 높아야 녹는다.

구리는 철과 달리 눈에 잘 보이는 금속이기도 하지만, 불의 온도를 높이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으므로 철기가 청동기 이후에 위치한 것은 이해가 된다. 시기적으로 철기시대가 두 시대보다 늦은데도 순수한 철재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철이 산소를 만나 녹이 슨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과학은 이런 녹스는 과정을 산화 혹은 부식이라고 설명한다. 철의 산화 과정은 다른 금속과 달리 특징이 있다. 산화 과정은 대부분 금속이 피할 수 없는 화학반응이다.

주변에 흔한 알루미늄도 산화하며 부식 속도도 빠르다. 다만 대부분 금속은 표면에서 산화한 상태가 그 물질의 방어막이 된다. 그래서 금속 내부까지 부식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철은 다르다.

철의 표면에 생긴 녹은 마치 상처가 난 피부의 딱지처럼 철의 부피를 키우다가 떨어져 나가고 다시 안쪽으로 녹이 파고들어 간다. 결국 철은 금속결합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산소와 염분이 풍부한 바닷물에서는 철의 부식 속도가 빨라진다. 그래서 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작업 중의 하나가 녹스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때 철보다 더 쉽게 산화되는 금속을 철 위에 덧대어 놓으면 신기하게 철을 대신해 덧댄 금속이 먼저 녹이 슬어 배를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아연이나 마그네슘처럼 철보다 더 쉽게 산화되는 물질, 이런 물질의 희생으로 철을 보호한다고 해서 이런 화학 법칙을 희생 양극 법이라고 한다.

인류는 화학으로 철이 산화된다는 의미와 작동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철이 가진 자유 전자를 산소라는 물질에 뺏겨 붉은색의 산화철이 되는 것이다. 모든 금속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그중에 이온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얼마나 전자를 잘 잃어버리는지에 대한 화학적 특성이다. 이온화 경향은 금속마다 정도가 다르다.

이온화 경향이 강한 금속은 공기 중 수분과 산소에 쉽게 반응하는 셈이고 결국 녹슬어버린다는 의미다. 철이 단단하고 열과 전기를 잘 통하게 하는 성질은 뛰어나지만, 녹이 슨다는 문제가 철의 사용에 방해가 됐고 희생양극은 철을 유지하는 자연의 지혜다.

철을 보호하는 방법은 희생양극법 말고도 다른 것이 있다. 주석(Sn)은 철보다 이온화 경향이 약하다. 그러니까 녹이 덜 슨다는 거다. 그래서 철 위에 주석을 도금해 일종의 화합물인 새로운 물질로 만들어 쓴다. 양철 혹은 양은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재료다.

구리는 무르기 때문에 주석을 혼합해 단단하게 만든 것이 청동이고 표면에 생긴 녹색의 녹은 청동을 보호한다. 원소 주기율표에는 이 세상을 만든 모든 물질이 있지만, 양철이라든가 청동은 원소 주기율표에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도 이렇게 누군가가 먼저 부식이 되거나 부식이 덜 되는 물질처럼 다른 삶을 보호하거나 강하게 만들며 유지하고 있던 셈이다.

때 이른 더위가 찾아왔다. 최근 인천 미추홀구 워크스루 운영 중 방호복을 입은 보건소 직원들이 더위에 탈진해 쓰러졌다. 수분을 섭취하면 나으련만, 방호복 때문에 화장실을 가기도 어려워 가급적 물도 마시지 못한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무너질 때 자신의 안위보다 스스로 아연의 길을 택한 희생양극이고 보호막인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그들의 희생을 밟고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우리가 누리고 지키고자 하는 모든 일상, 그들이 없었다면 철의 부식처럼 사라질지 모르는 소중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최근 질병관리본부를 보건복지부의 외청인 질병관리청으로 독립시키는 정부조직법 개정 과정에서 감염병 연구의 핵심 조직인 국립보건연구원의 지리적 위치를 두고 잡음이 들린다.

게다가 보건복지부가 환자들을 최일선에서 돌본 간호사들을 위한 예산을 미편성한 사실이 알려지며 의료진들이 상처를 입었다고 보도를 한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는 응원의 글들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권력과 금전, 응원도 아닌 감염병의 종식이다. 최근 수도권과 대도시 확산세가 다시 커지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응원이 아니라 방역 협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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