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용제는 복합 성분인 경우 단기 목적으로, 미생물 배양체인 경우 장기적 목적으로 쓰일 수 있어...

장하영 약사의 「약」 이야기-53

장하영 세선약국 약사
장하영 세선약국 약사

누구든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의 완성체는 종교이다. 보통 종교라 하면 어떠한 신을 믿는가에 정체성을 두겠으나 사실 그 신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물론 신이 있는 종교도 있고 신이 없는 종교도 있다. 그리스도교는 야훼(여호와)라는 신이 있고 생전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사후 세계가 갈린다고 한다. 불교는 신이 없는 종교이다. 우리가 말하는 부처는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깨달았던 성자(聖者)였다. 그 부처의 가르침대로 살기를 설파한다.

신이 있든 없든 종교란 한 개인 삶의 줏대를 세워주는 뿌리라 할 수 있다. 그 믿음 때문에 삶의 근원과 삶의 방식에 대한 해답을 찾아갈 수 있다. 어차피 인생에 정답은 없다. 스스로 답을 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하자. 손가락의 지문을 바꿀 순 없어도 삶의 지문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삶의 무늬는 바뀐다. 이러한 삶의 지문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종교이다.

그런데도 종교가 수단이 아닌 목표가 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어떠한 종교라도 경전의 가르침 자체를 목표로 하여 살아가길 강조한다. 하지만 가르침이 아닌 종교 자체를 목표로 살다 보니 종교에 대한 시각이 좁아진다. 프레임이 깊어지는 것이다. 심한 경우 타인의 종교는 무조건 배척하고 사이비 종교로 여긴다.

필자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녀온 종교가 있다. 과거에는 무작정 본인 종교의 교리를 절대시하였다. 그러나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순간 시각이 넓어질 수 있었다. 절대적인 종교는 없으며 결국 모든 종교의 근본 목적은 우리 삶 자체를 위함이다.

이와 비슷하게 필자가 어린 시절 편견으로만 보았던 질병이 있었다. 치질이다. 듣는 순간 불쾌하다. 발병 부위도 그렇지만 청결하지 못한 습관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치질의 원인은 청결함과는 큰 관련이 없으며 다른 데에 있다.

치질의 원인은 다양하며 기전조차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이중 혈액순환과 상관관계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차가운 곳에 장시간 앉아 있으면 혈액순환이 잘 안 되어 항문 주위 조직이 부풀어 오르게 된다. 이때 항문 내에 생기면 내치핵이라 하고 항문 밖에 생기면 외치핵이라 한다.

치질의 가장 흔한 증상은 출혈이다. 배변 시 치핵 조직에서 피가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치질이 심해지면 치핵 조직이 더 부풀어 오른다. 그렇게 되면 불편감은 더 커지고 통증도 더 심해진다.

치질이 심하지 않을 때는 외과적 처치 없이 약으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연고제나 좌제 등의 외용제로는 푸레파(일동), 포스테리산(동화)으로 양분할 수 있다. 푸레파 계열 약은 치질과 관련된 전반적 증상을 개선하는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항생제, 보습제, 국소마취제, 혈관수축제 등의 성분들로 배합되어 있으며 주로 단기간 치질 증상을 개선하는 목적으로 쓰인다. 포스테리산은 약물 기전이 독특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포스테리산은 약이 아니고 죽어있는 세균이다. 이러한 성분을 항문 주위에 바르면 우리 몸은 그 연고를 세균으로 인식하고 그 주위의 면역계를 활성화한다. 그런 식으로 염증을 낮출 수 있으며 장기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약효는 적어도 2주 후에 나타난다.

최근 먹는 치질약도 나왔다. 치센(동국)인데 약 성분은 일종의 식물에서 추출한 플라보노이드이다. 이 성분은 혈액 순환 개선, 항염, 소염 작용을 일으켜 치질을 개선하며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장점이 있다.

치질 때문에 약국을 자주 방문하는 손님들이 있다. 아마도 치질이 나아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물론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면 일시적으로 호전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치료된 것이 아니니 언젠간 재발한다. 따라서 일반의약품은 단기적 목적으로만 쓰도록 하고 호전되지 않으면 병원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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