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곡면 환경지킴이 채수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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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곡면 환경지킴이 채수호 회장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06.2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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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곡면에 전국 산업폐기물이 밀려 들어올 거란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숨이 턱턱 막힌다!

“미래의 후손들이 마음껏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지곡면 환경지킴이 채수호 회장
지곡면 환경지킴이 채수호 회장

 

프롤로그

우리 아버지는 왜정시절, 흙밖에 모르던 동네 구장(현 이장)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사는 것도 억울한데 공출미까지 강제로 걷어야 하니. 어느날 동네 주민들을 못살게 구는 담당관을 흠씬 두들겨 패주고는 만주로 도망가 해방될 때까지 살았다고 말하는 지곡면 환경지킴이 채수호 회장.

무남독녀 딸은 호주로 시집을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지곡에 산폐장이 들어오면 안 된다고 멀리서도 걱정을 이만저만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아버지 성격을 닮았지만, 내 아이도 또 내 성격과 비슷하다는 그는 형제들은 이미 모두 돌아가셨고, 아이는 멀리 떨어져 산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든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나는 지금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비록 외롭고 힘든 길이지만 훗날 가족들을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채수호 회장.

서산시대는 동네이장을 자그마치 11년 동안 했으며, 농작물 제초제피해대책위원장직을 수행했던 지곡면 환경지킴이 채수호 회장을 만나 그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봤다.

# 안중근의 정신을 닮은 아버지를 보며 자란 채 회장

중국의 동북지방인 만주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채수호 회장. 그의 부친은 충절의 고장 예산에서 마을 구장(현 이장)직을 수행했다. 하지만 일제의 강제 공출미에 불만을 품고 담당관을 응징하곤 어차피 잡히면 죽을 것은 뻔하므로 식구들을 데리고 만주로 야반도주를 떠났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늘 사람을 살리는 일과 불의를 보면 행동할 줄 아는 분이셨다. 고향을 지키고자 무던히 노력한 당신이 사람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당시 배고프다는 자식들에게 쌀 한 톨 넣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강제로 바쳐야 했던 곡물에 불만을 품고 처남들에게 짓던 농지를 맡기고는 과감한 행동을 실천에 옮겼다.

나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는 아들이다고 말한 채 회장은 멀리 떨어져 있는 출입구 문을 흔들리는 눈빛으로 응시했다.

기자의 눈에는 안중근의 정신을 이어받은 부친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했다. 말하는 내내 76년의 강을 건너온 해방둥이 채수호 회장은 부친에 대한 그리움과 애잔함이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조국으로 돌아와 맞은 어머니의 죽음

부친의 거사가 있던 날 저녁, 아버지는 형님과 두 누님을 데리고 만주로 도망간 것이 그만 15년의 만주 생활로 이어졌다. 19456, 중국 길림성에서 세상에 태어난 어린 막내 채수호 회장에게도 조국의 바람을 안기고 싶어 했던 아버지는 드디어 압록강 열차에 몸을 실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부모님은 나라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힘이라며 농사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성격이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시는 정의로운 분이었다면, 언제나 그런 아버지를 조용히 믿고 따르는 분은 어머니셨다.

형님과의 나이 차이는 10.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인 9살 때, 손이 귀한 집안을 염려하여 아버지는 고등학생인 형님을 장가보냈다. 나는 어머니 대신 어여쁜 형수님 손을 잡고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가장 행복했다. 어린 나에게 깍듯이 도련님 도련님하면서 마치 애기 다루듯이 해주었던 우리 형수님.

때로는 밥을 하고 난 후에 누룽지를 긁어주지 않으면 심통이 나서 형수님에게 생떼를 쓰기도 했다. 어느날 아침에는 그만 깜빡하고 누룽지를 긁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울며 학교에 안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어머니께서 조용히 다가가 형수님에게 핀잔을 준 적도 있다. ‘어린 시동생에게 그런 것도 못 해주냐.

그랬던 어머니는 1984년 향년 84세의 일기로 주무시는 듯 돌아가셨다.

당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전날 밭에서 열심히 잡초를 제거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망연자실 어떻게 고향으로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가셨고,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또 그렇게 흘러갔다.

다른 분들은 호상이라는 말로 위로했지만 나는 가슴 한켠이 컥컥 맺히는 슬픔과 그리움이었다.

#아내와 딸을 지곡면 처가에 맡기고 떠난 사우디 건설 현장

기자는 애잔함으로 쏴 한 공기를 뚫고 예산이 아버지의 고향이신데 어떻게 서산시 지곡면에서 터를 잡게 됐냐?”고 물었다.

채 회장은 잠시 마음을 진정하고 80년도 당시 열사의 땅 사우디로 일을 하러 가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 근로자들이 진출해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곳인 사우디. 그 속에는 아내와 딸을 서산시 지곡면 처가에 맡기고 열사의 땅으로 떠난 채 회장도 있었다.

집사람과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처가밖에 없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귀국하면서 바로 지곡면에 집을 짓고 정착하게 됐다.”

처음 결혼하기 위해 인사를 드릴 때부터 왠지 마음으로부터 와닿는 지역이기도 했다. 특히 구릉산지가 형성되어 작은 하천에 보와 저수지가 아름아름 있던 지역의 조용한 소재지가 참 맘에 들었다.

또 유명한 조선 최고의 르네상스 작품이라고 불리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창작 모태도 어쩌면 지곡면 자연에서 그 모티브를 얻었지 않을까. 이렇듯 천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던 곳 지곡면.

고향에서 신선처럼 살고자 했던 그의 영혼의 외침이 복선으로 깔렸지 싶다.

지곡면 환경지킴이 발대식 모습
지곡면 환경지킴이 발대식 모습

# ‘지곡면 환경지킴이채수호 회장이 되어 길 위에 서다

그렇게 아름다운 우리 마을에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온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지곡면 환경지킴이 채수호 회장.

소규모 산폐장이라면 또 모를까. 우리 지역 것만 처리한다면 15~20년 정도는 이상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전국의 모든 쓰레기를 가지고 몰려온다면……. ~ 그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가장 먼저 지곡이라는 동네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을이 될 것이다. 나아가서는 서산시라는 세 글자보다 산업쓰레기장으로 불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것은 서산이라는 이미지 면에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번씩 주민을 먼저 생각하고, 정의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은,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였다면 이럴 때 과연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그래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앞장서서 막아야지라고 격려해주실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작은 힘이나마 우리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 힘을 모으고 있다.”

산폐장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이 서산시의회 2층 복도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산폐장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이 서산시의회 2층 복도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모습

# 산폐장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벌떡 숨이 막힌다는 그는 애초에 했던 약속을 지키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현재 지곡면에서 노인회장직을 맡고 있는 환경지킴이 채수호 회장은 지곡면에 산단이 들어올 때도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우리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몰랐다. 그러다 2013년 어느날 갑자기 산폐장이 건축된다는 소리를 듣고 아연실색했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숨길이 막혔다. 청정지역으로 소문났던 지곡에 전국의 산업폐기물이 쉴 새 없이 밀려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복장이 터졌다.

201894, 면민들과 함께 유해환경으로부터 몸살을 앓고 있는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으로 지곡면 환경지킴이를 공식 출범했다. 이날 함께 한 이들은 자신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지역주민과 산폐장 반대위, ·태안환경운동연합, 산폐장 백지화 연대, 서산시민단체 등 100여 명이다.

산폐장은 서산시민 모두의 생명권과도 직결되어있는 사안이었다. 특히 지킴이가 결성되던 시점은 오토밸리 산업단지 내 연이은 화재와 산업폐기물 매립장 공사 등으로 주민들의 반대 투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던 때였다.

우리 지킴이들이 했던 첫 번째 활동이 바로 최초 약속과 허가대로 오토밸리 산단 내 폐기물만 매립하라는 것과, ‘행정심판 제기 즉각 취소2가지 사안이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니체는 사람은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킬만한 좋은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들 똑똑한 사람들이니까 설마 기억력이 떨어졌다는 소리는 하지 않을 줄 안다.

애초에 주민들과 했던 약속을 반드시 지켜달라!

도저히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곡면은 선조 때부터 이어 내려온 청정지역이다. 이곳에 우리 지역 폐기물만 묻어도 피해가 큰데 전국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한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애초 했던 약속을 반드시 지켜라라고 간곡히, 그러나 단호히 말하는 채수호 회장. 그의 결의가 여름철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서늘하게 다가왔다.

에필로그

우리 후손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말한 채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는 말미에 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혹여라도 우리가 산폐장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후손들이 우리를 보고 우리 선배들은 도대체 뭐 했나!”라고 하지 않겠나.

만약 재판에 지더라도 반대운동은 끊임없이 계속할 테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 대에서 못다 한 운동은 또 다음 세대로, 또 그다음 세대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독립운동도 그전 시대부터 계속 뒷받침이 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열중쉬어하고 외면한다면 나중 세대들에게 우리는 할 얘기가 없다. 설사 우리가 진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은 최선을 다해 제대로 해야 되는 게 맞다. 앞으로도 우리 지곡면 환경지킴이들은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밖에는 뜨거운 6월의 공기가 하늘을 덮고 있었다.

지곡면 환경지킴이 발대식 모습
지곡면 환경지킴이 발대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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