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부터 1개월간 전시할 예정

맹정호 서산시장에게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한기웅 전 교수
맹정호 서산시장에게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한기웅 전 교수

지난 19일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여미갤러리에서는 강원대학교 문화예술공과대학 디자인학과 한기웅 전 교수이자 현재 서산시대 자문위원장이기도 한 한기웅교수 정년퇴임이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시민들에게 그동안 직접 디자인했던 작품 중, 경제학 이상으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창출해 낸 작품들을 사진으로 전시하여 시각적으로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됐다.

관람자들의 시선을 끌었던 아트 펜스는 자연의 모습인 나뭇가지와 모양을 새겨넣은 디자인으로, 자연 친화적인 업사이클링 디자인 펜스로 반영구적인 소재인 동시에 가격 경쟁 면에서 매우 우수한 제품이다.

그밖에도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하는 그린디자인을 실천한 제품과, 짚을 이용한 제품디자인부터, 생명과 화합-물고기 창작조형물, 스피커 박스 등을 사진으로 감상하도록 전시되어 있다.

한기웅 전 강원대 교수는 디자이너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불편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디자이너의 눈으로 찾아내어서 개선해 나가는 것인데 발명가와는 다르게, 일명 개선가라고도 할 수 있다디자인은 경제학 이상으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창출해 내는 매우 창조적인 학문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부족한 정년퇴임에 참석해주신 맹정호 시장님을 비롯한 지역의 어르신들과 단체장님, 그밖에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함께 자리해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전시는 운산면 운정로 112에 있는 여미갤러리 전시장에서 지난 19일부터 한 달간 전시될 예정이다.

지난 19일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여미갤러리에서는 강원대학교 문화예술공과대학 디자인학과 한기웅 전 교수이자 현재 서산시대 자문위원장이기도 한 ‘한기웅교수 정년퇴임展’이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지난 19일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여미갤러리에서는 강원대학교 문화예술공과대학 디자인학과 한기웅 전 교수이자 현재 서산시대 자문위원장이기도 한 ‘한기웅교수 정년퇴임展’이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인터뷰강원대학교 문화예술공과대학 디자인학과 한기웅 전 교수

 

2의 인생은 디자인농장건설에 사활을 걸고자 한다!

강원대학교 한기웅 전 교수
강원대학교 한기웅 전 교수

Q 후진 양성을 해오시다 이제 개인 여정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함에 축하드린다. 소감을 말해달라.

공식적인 퇴임오픈일인 19일 자를 끝으로 상아탑과는 작별을 고했다. 아쉽기도 하고 이제 시간이 아주 여유로워졌다는 것에는 반갑기도 하고 그렇다.

많은 사람이 이럴 때 시원섭섭하다고 말하는 뜻을 이제야 알겠다. 그래도 섭섭함은 오래가지 않을 듯싶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Q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있다는 것을 언제부터 알게 되었나?

아마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 마을 친구나 아래 동생들을 데리고 내가 배우가 되어 안방극장놀이를 하며 입장료로 토끼풀 한주먹씩을 가져오라고 했다. 왜냐하면, 집토끼가 먹는 풀은 항상 내 몫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계산이 빨랐던 것이 훗날 비즈니스 감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겨울철 앉은뱅이 썰매나 외발스케이트는 또래들보다 잘 만들었던 것 같다. 물론 어려운 것은 바로 위 형님께서 만들어 주었지만.

이런 입체물 만들기를 좋아하고, 4계절 자연 속에서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의 체험들이 오늘날 창의적 사고를 발휘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Q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은?

대철중학교 2학년 때 아버님을 잃은 슬픔이 가장 큰 아픔이다. 안타깝게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와 목욕탕을 가 본 기억이 없다. 물론 그때는 시골에 목욕탕이 어디 있었겠느냐 마는. 참고로 나 역시 아들과 목욕탕을 가 본 기억이 없다(웃음).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께 용돈을 달라고 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아버지가 어렵기도 했지만, 그보다 우리 어머니가 잘 헤아려 줬기 때문이다.

그래도 참으로 감사하다. 당신들을 대신해 어린 저를 위해 큰형님 내외분께서 보살펴 주시고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심에 목이 멘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다.

Q 지금 생각해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업디자인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시골의 무지렁이였던 내가 서울의 명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행운을 줬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원동력이다.

미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디자인실에 입사하여 5년간 실무를 익혔다. 이후 전문대학으로 자리를 옮겼고, 평소 내가 염원하던 조형예술연구소를 1997년에 오픈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후배들을 무료로 가르치기 시작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나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던 같다.

Q 현대 시대는 디자인이란 영역이 아주 많이 확장되는 것 같다. 도시공간디자인, 마을디자인 등을 분야별로 말해 달라.

맞다. 얘기한 대로 디자인 영역은 정말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환경디자인(도시공간, 마을디자인, 테마파크디자인 등)은 물론, 제품디자인(전자. 전기제품디자인, 문구류디자인, 스포츠용품디자인 등), 디스플레이디자인(백화점 쇼윈도 디스플레이, 무대디자인 등), 인테리어디자인(, 오피스 인테리어디자인 등), 자동차. 선박. 비행기디자인 등에 이르기까지 정말 모든 영역이 디자인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최근 농업디자인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한국농업디자인대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농부는 달리 말하면 농사를 잘 짓는 엔지니어이다. 그들에게 창조적 사고를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

중국, 미국, 유럽 등의 농산물이 무관세로 대량 진입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대응은 바로, 자기만의 감성농업(感性農業)을 일구는 전략이라 굳게 믿고 있다. 아직도 이런 상황에 대하여 그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우며 시범학교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짜고 있다.

Q 서산시 도시재생지원센터는 우리 서산을 어떤 식으로 디자인할 계획인가?

조심스럽게 꼭 이야기하고 싶은 문항이다. 현재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위상이나 역할은 아주 미비한 상태다. 즉 센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관계부서에서 간과하고 있다는 판단이 인다.

이는 맹정호 시장님의 의지와는 다른 것임을 잘 알고 있다. 40여 년의 디자인 필드에서 축적한 경험들이 새로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기선정된 사업에 잘 반영되도록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시스템이다.

그만큼 도시재생센터의 역할이 미비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나는 현재 지식과 지혜가 반영될 수 없는 센터장의 역할을 이대로 계속해야 할지고민하고 있다.

도시재생센터의 현재의 시스템과 역할에 대하여는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심층적인 대담을 열어가고 싶다.

Q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님의 어려운 농작시대를 두 눈으로 확연히 바라보며 성장했다. 따라서 제2의 인생은 농촌이 잘 살 수 있고, 농촌이 도시인의 피안처가 되고, 그리고 소비자가 행복하게 바라보는 일터이자 도시인의 체험농장으로 가꾸어 가는 디자인농장건설에 사활을 걸고자 한다.

이는 혼자의 힘만으로 결코 이룩될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농부, 전문가, 지자체 등과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도 게을리하지 않을 계획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무튼 여러 가지 생각이 인다. 앞으로는 서산시의 도시재생뉴딜사업 선정에 힘을 보태고, 그리고 내가 바람잡이 역할을 도맡아 탄생한 서산 여미오미(餘美五味)로컬푸드사업에 집중할 생각이다.

며칠 전시준비로 보지 못했던 수박. 참외. 토마토밭이 놀라울 정도로 성숙해 졌다(웃음). 기회가 된다면 많은 분이 놀러 오기를 기원한다.

서산시 운산면 '여미갤러리'에서 '한기웅 교수 정년퇴임 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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