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영 약사의 「약」 이야기-52

장하영해미 세선약국 약사
장하영
해미 세선약국 약사

학부 시절 전공과목은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수강하였다. 지금은 대다수 학과가 전공과목을 전공필수와 전공선택으로 나누지 않는다. ‘전공’으로 통일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여도 전공 중 꼭 이수해야 하는 의무적 과목을 지정하였는데 이를 ‘전공필수(전필)’라고 하였다. 이 과목들 때문에 내 역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였을까. 졸업을 위해서 꼭 이수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었다. 예외는 없었다. 전공선택(전선) 과목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과목을 선택하면 그만이었다. 학생들은 학점을 조금이라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과목을 신청하였다. 그러나 전공필수는 학년에 맞추어 무조건 신청해야 했고 전공선택보다 몇 배는 공부해야 학점을 취득할 수 있었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묘한 신경전도 있었다. 특정 과목이 전공필수로 지정되는 순간 그 과목 담당 교수는 학생보다 우위의 입장에 섰고 전공선택으로 지정되는 순간 그 반대가 되었다.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것이다.

전공필수 과목 중 2학년 때 맨 처음 수강했던 과목이 ‘무기의약품’이란 과목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약을 배운다는 기대감에 과목을 신청했다만 선배들의 조언에 힘이 빠졌다. 군 복무 후 복학해서 재이수할 각오로 수강하란다. 그만큼 학점을 주지 않는 과목으로 유명하였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고 피할 수는 없었다. 반드시 이수해야만 하는 과목이었으니까.

공부에 대한 압박은 컸다. 1학년 시절 시험 기강 잠깐 공부하던 방식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개강 2주째부터 시험이 시작되었고 교수님 기분대로 수시 시험을 보았다. 그러니까 언제든 시험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한편으로 재미있었다. 물론 배운 내용을 모두 외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화학반응을 이용하여 약을 만들고 인체 내에서 응용하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인들에게 약학도로서 약에 대해 아는 척하기에도 좋았다. 약성분표를 보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에도 다다랐다.

안타깝지만 무기의약품은 현대사회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과거 유기약품 기술이 없을 때에 자연계에서 직접 채취해 쓰는 자연계 물질, 광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분이 단순하여 효과에 한계가 있고 더 이상의 발전도 어렵다.

그렇다면 무기의약품은 미래에 더는 쓰이지 않는 묵혀진 약이 될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아무리 좋은 최첨단 전쟁 무기가 나와도 재래식 무기가 여전히 쓰이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단순히 말하자면 가격 대비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흔히 쓰이는 외용 무기의약품을 몇 가지 소개한다.

과산화수소, 포비돈 요오드, 알코올은 대표적인 일차적 살균 소독제로 찰과상 등 개방된 상처에 여전히 쓰인다. 상처 때문에 병원에 방문하였을 때도 가장 먼저 사용된다. 과산화수소를 상처에 바르면 거품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기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산소이다. 우리 몸의 효소에 의해 과산화수소가 산소로 분해되는 것이다. 이 산소에 의해 미생물이 죽게 된다. 그러나 피부도 부식될 수 있어서 최근 들어 잘 쓰이지 않는다. 알코올은 메탄올과 에탄올 2종류가 있는데 인체 소독용은 에탄올이다. 메탄올은 인체에 써서는 안 된다. 오로지 공업용으로만 쓰인다. 알코올을 구입할 때 어디에 쓸 것인지 용도를 확실히 밝혀야 하겠다. 포비돈은 과거에 ‘빨간약’으로 통했던 가정상비약의 대명사이다.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쓰였는데 그 본질은 상처에 쓰이는 소독약이다.

붕산은 바퀴벌레 퇴치 약으로 쓰인다. 원리는 붕산 자체의 탈수작용을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습한 곳에 놓아서는 제대로 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음식물과 섞어 놓으면 바퀴벌레가 먹고 며칠 내에 목말라 죽고 만다. 그러나 인체에도 유해효과가 있을 수 있으니 취급상 주의해야 한다.

명반(백반)은 인체에 소염 작용 등의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야외에서 뱀 퇴치 목적으로 쓰인다. 뱀이 명반 냄새를 맡고 피해간다고 하는데 확실히 입증된 것은 아니다. 아직 뱀 퇴치제가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염산은 강산의 일종으로 약국에서는 저농도의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보통 하수구를 뚫는 데 사용하는데 하수관도 부식될 수 있으니 유념토록 하자. 그리고 피부에 직접 닿으면 안 되니 취급할 때 조심해야 한다.

이외에 유황은 애완견 피부 문제 개선에 쓰이고 붕사는 설탕물과 섞어서 개미퇴치제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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