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곡면 ‘삼강 정려’ 안내판 오류...형제가 바뀌었다?

지곡면 ‘삼강 정려’에 형제가 뒤바뀌어진 상태로 세워져 있는 안내판
지곡면 ‘삼강 정려’에 형제가 뒤바뀌어진 상태로 세워져 있는 안내판

문화유적지를 방문하였을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이 바로 안내판이다. 건물과 유물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그에 대한 정보를 의심하지 않으며 습득한다. 그러하기에 안내문은 절대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지곡면 소재 삼강 정려의 안내판 내용 중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 여러 방향으로 검증하지않고, 인터넷 상에서 쉽게 인용하는 과정에서의 오류인 듯 함에 씁쓸할 뿐이다. 참고문헌이나 조금만 발품을 팔았더라면 현장에서 구전되는 내용도 들어보면서 심사숙고하게 작성하였을텐데... 그랬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문제점은 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곡면 면사무소에서 중왕리 방향으로 약 1킬로 가다 보면 부성산을 감아 내려온 우측 기슭에 최몽량, 최호주, 나주 정씨의 명정 현판을 한데 모은 삼강 정려각이 있다. 정려각 내부 중앙에 충신증자헌대부이조판서양관대제학통훈대부행의주판관증시충의공최최몽량지문(忠臣贈資憲大夫吏曹判書兩館大提學通訓大夫行義州判官贈諡忠毅公崔崔夢亮之門)’ 우측에는 효자증정삼품통정대부비서원승경주최호주지문(孝子贈正三品通情大夫秘書院丞慶州崔鎬周之門)’좌측에는 열녀학생최호문처유인나주정씨지문(烈女學生崔鎬文妻孺人羅州丁氏之門)’ 최호문의 처 나주 정씨 명정문이 걸려있고 정려각 중앙에 최호주의 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방문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정려각 외부에 설치한 안내판에 심각한 오류가 발견되었다. 이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재론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문화유적 중 잘못된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다.

안내판 내용에 열녀 나주정씨(羅州丁氏)는 효자 최호주의 형인 최호문의 처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사실이다.

최몽량의 10세손인 최호주와 최호문은 형제지간으로 최호주가 맏형이고 최호문은 아우이다. 현재 지곡면 산성리에 살고 있는 후손들의 족보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호산록(湖山錄)』 『여지도서(輿地圖書)』 『서산시지(서산시지편찬위원회, 1998)을 참고로 작성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도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최몽량(崔夢亮)[1579~1627]과 그의 10세손 최호주(崔鎬周)[1844~1893]의 정려는 현재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다. 최몽량의 정려는 1757(영조 33) 건립되었으며, 최호주의 정려는 1902년에 명정되었고, 최호주의 아우 최호문(崔鎬文)의 처 나주 정씨(羅州 丁氏)의 열행으로 1920년에 정표(旌表)를 세워 삼강정려(三綱旌閭)가 되었다.’

모름지기 사실을 바로잡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방문객들은 안내문이 잘못된 정보인지도 모르고 다른 곳에 가서 오류를 전하게 된다. 이럴테면 코로나19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파가 되기 십상이다.

얼마 전 서산시보를 읽다가 시민기자가 작성한 글에서 안견 선생에 대한 내용을 읽어다. 한데 안견 선생의 출생지가 지곡면 무장리라고 쓰여 있는 내용을 발견하고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냐?”고 질문했더니 착오가 있었다고 하여 정정기사를 낸 사실이 있었다.

이번에는 지곡면 소재 문화재에서 또 잘못된 정보를 안내 표지판에 적어 놨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몇 자 적었다.

이번 기회에 서산시 문화유산에 대해서 전문위원회를 위촉하여 오기와 왜곡된 부분은 없는지 전수조사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설령 잘못된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누락된 내용이라든가, 서산시 문화유산에 대한 재정립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

공인 기관인 서산 시청에서 작성한 안내판이 오류를 범하였다면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며, 조속한 시일 내에 올바른 안내판을 작성하여 설치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천윤식 독자
천윤식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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