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보험왕 ‘사과나무인슈어런스’ 박재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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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험왕 ‘사과나무인슈어런스’ 박재현 대표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06.15 2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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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의 눈물을 아십니까? 그가 바로 대한민국 아빠입니다

힘겨웠던 삶의 순간에서도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원조슈퍼맨 ‘사과나무 인 슈어런스’ 박재현 대표
원조슈퍼맨 보험왕 ‘사과나무 인 슈어런스’ 박재현 대표

프롤로그

사과나무에 가치를 담았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상당히 희망적이지 않습니까라며 환하게 웃었던 서산의 슈퍼맨 아저씨 보험대리점 박재현 대표.

가장 불행할 때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의 사과나무를 박 대표는 어감이 예뻐서, 기억이 잘 나서, 무엇보다 희망적이라서 붙였다고 말하며 만약 힘겨웠던 삶의 순간에서도 가족이란 두 글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서산시대는 슈퍼맨 복장을 입고 비바람이 불어도 한결같이 서산시내 사거리에서 띠를 두르고 인사를 했었던 박재현 대표를 만났다.

개구쟁이 슈퍼맨

기자는 박재현 대표에게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그는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으며 저요? 저는 바로 상남자죠(웃음)”라고 말했다.

태안에서 빈농의 아들로 23녀 중 넷째로 태어난 박 대표는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나요. 저는 개구쟁이의 상징이었죠. 누나가 사고로 잘못되는 바람에 22녀 중에 장남이 되었으니 부모님의 기대가 얼마나 컸겠어요.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누나들 졸업앨범이나 사회과부도 책을 찢어 딱지를 만들었던 아들에게 일찌감치 큰 기대는 포기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하는 행동이 기대하기에는 한마디로 개갈이 나지 않았던 거죠(웃음)” 머리를 젖히며 아주 호탕하게 웃었던 박재현 대표.

누나들의 당황함이 곧 자신의 행복이었던 듯 그는 지금도 누나들은 저만 보면 너 때문에 졸업앨범이 한 장도 없다고 투덜대곤 합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고된 농사일을 자식에게만은 더 이상 물려주지 않으려고 장남인 그에게조차도 농사일을 시키지 않았단다.

아버지의 병환

하지만 그도 잠시, 중학교 시절 아버지의 폐암 소식은 온 집안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자식에게만은 빈농의 아픔을 물려주기 싫어 삽 한 자루 쥐게 하지 않던 아버지였지만, 당신의 병환으로 모든 식구가 아버지 몫을 감당해야 함에 늘 가슴 아파 하셨다.

아버지 병환으로 우리 엄마가 얼마나 끔찍한 삶을 살았는지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한창 예민했던 사춘기, 누나들은 모두 상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그 허전한 자리에 엄마의 전투적 삶의 방식이 꽉 들어차 저를 힘들게 했지요. 한마디로 우리 엄마가 모든 생활고를 다 떠안고 사셨습니다라며 그는 식은 커피잔을 채 기울이지도 못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엄마는 너무너무 강해서 늘 싸우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병든 남편과 자식 4남매를 도저히 건사할 수 없었던 거지요.

동네 아저씨들과도 당당히 싸웠던 우리 엄마. 대차지 않았으면 지키지 못했던 것들이 시골에선 의외로 많았습니다. 가물면 논에 물을 대야 하고, 밭에 뭘 줘야 하고……. 지금 생각하면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라며 왠지 그때는 그 모습들이 싫었다는 박 대표.

속으론 울 엄마 왜 저럴까?’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지?’ 자꾸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겉으로 표는 내지 않았지만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돌처럼 굳어져 갔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 직원들에게 투영되는 것 같아요. 왜 있잖아요. ‘저 사람들을 반드시 성공시켜야겠다당시에는 우리 엄마처럼은 절대 살지 않겠다고 했는데 지금 저를 보니 제 속에도 어느 사이엔가 우리 엄마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지금은 우리 엄마가 천사가 되었어요라고 웃었다.

흙으로 돌아간 우리 아버지

6년을 아버지 병원 모시고 다니시면서도 농사일에 자식들 일일이 챙겼던 엄마를 생각하면 괜히 마음 언저리가 숙연해진다는 박재현 대표는 닭고기만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가는 듯하다고 말했다.

요즘처럼 더울 때였는데 엄마는 안뜰에 걸린 아궁이에 닭을 삶고 닭죽을 끓이고 계셨어요. 우리는 엄마가 들고 올 닭고기를 생각하며 눈으로 엄마만 쫓고 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불을 지피는 엄마를 보는데 도와줄 생각은 않고 멍석 위에 앉아 초롱초롱한 별을 머리에 이고 엄마의 손길만 기다렸어요.

드디어 엄마표 삼계탕 등장.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죠. 지금도 닭고기만 생각하면 당시 엄마가 식구들을 위해 해주셨던 음식이 그리워집니다.”

박재현 대표의 아버지는 그의 나이 22, 음력으로 1996년도 101, 양력으로는 1111, 투병 생활 6년 만에 흙으로 돌아가셨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생애 처음으로 농어업인의 날’, ‘흙에서 나서 흙을 벗 삼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농어업인의 날이었는데 딱 그의 아버지 삶이었다.

농민들이 한 해 농사를 마치고 쉬어갈 수 있는 시기에 당신은 식구들을 두고 먼저 떠난 딸을 찾아 길을 나섰다. 그날은 박 대표 막냇동생이 수학능력시험을 치는 날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시험을 치는 동생에게는 연락할 길이 없었던 박재현 대표. 휴대전화는커녕 삐삐도 없던 그 시절, 그의 동생은 자분자분 길을 밟아 집으로 돌아왔는데 병든 아버지는 이미 길을 떠나셨고. 다들 그때는 이렇게 처절하게 살았던 시절이었다.

20대 초반, 잘못된 선택

고교 시절, 원 없이 알차게 생활했다. 그때도 운동을 참 좋아했다는 박재현 대표는 체대로 가고 싶었는데 집안 사정상 그곳으로 진학하기에는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갔던 곳이 경기도에 있는 폴리텍대학입니다.

운동을 유난히 좋아했던 제가 기계를 만지며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마치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현실과 맞지 않았지요. 결국 군대에 갔고, 복학하자마자 친구의 권유로 바로 기아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그가 회사에 들어간 시점은 IMF가 터질 때였다. 그때 같이 일하던 분이 어느날 제게 오더니 너는 정말 영업을 잘할 거야. 젊기도 하지만 머리도 좋고, 말도 잘하잖아하지만 6개월을 다니면서 차라고는 정말 딱 2대밖에 팔지 못했다.

너무 일찍 영업을 시작한 겁니다. 영업이란 자고로 나이도 좀 있고, 인맥도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말이지요. 지역사회 기반으로 영업을 하다 보니까 너무 일렀던 겁니다. 스물하고도 겨우 서너 살 더 먹은 제가 어디 가서 차를 팔겠습니까. 선후배 그래 봐야 당시 나이들이 겨우 23~25살 정도인데 지금으로 보면 아직 아기들이잖아요(웃음)” 한마디로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입니다.”

박 대표는 결국 6개월 만에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쓰고 태권도 사범 생활을 시작했다. 좋아하던 운동으로 돈을 버니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은 돈 주고도 하는데. 하지만 이도 만만치 않았던 게 그만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다시 친구와 함께 바닷가에서 조개구이를 파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슈퍼 딸과 사랑에 빠지는 행운을 얻었다. 가만 보면 그녀를 만나기 위해 돌아 돌아서 이곳까지 오지 않았을까. 새삼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제 집사람을 만난 일입니다라고 말하는데 기자는 깜짝 놀랐다. 그의 입이 어느 사이엔가 귀에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연어가 고향찾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결혼하고 박 대표는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결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팩을 가지고 있지 않단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주저앉기에는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다 사업을 하게 됐다.

사업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맨날 실수투성이였죠. 정보도 제한되어 있고 인맥도 없고. 그러다 보니 어렵게 장사를 시작하고, 또 망하고, 조그만 자본을 가지고 다시 하다 보니 또 망하고. 정말 직업이 10여 개가 넘었다면 말 다 했지요.

30대 초반에 이미 인터넷으로 오픈마켓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G마켓, 옥션, 11번가 같은 거죠. 몇 년간 장사가 아주 잘 됐습니다. 그런데 운 길이 자주 끊어져도 어째 그렇게 끊어지던지요.

20089, 글로벌 금융위기인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미국 주택시장에서 비롯된 파생금융상품의 부실이 번지면서 위기화 된 사건인데 그게 저한테까지 여파가 미쳤습니다.

결국 제가 수입해 와서 박리다매로 팔아야 돈이 되는 상품들이 원부자재값 상승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겁니다. 그 와중에 직원과 송사에도 휘말렸고요. 그 직원이 퇴사하면서 거래처를 모두 가지고 나가는 사태가 발생한 겁니다.”

당시 사건이 생각나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박 대표는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막막한 속에서 생각났던 것이 바로 고향이었다는 박 대표. 물론 그전 사업실패로 2억 원의 빚들은 다행스럽게도 오픈마켓 수익으로 갚았던 상태였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제로가 되어버린 통장뿐이었다.

30대 중반이 되어 고향 쪽으로 무작정 식구들 손을 잡고 내려왔다. 모든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려온 고향은 누구 하나 반겨주지 않은 말 그대로 불모지였다.

마음은 황망한데 할 것은 없었습니다. 어느날 아내가 교회에 가자고 하더군요. 아마도 꽤나 힘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곳에서 보험업계의 사수를 만났지요. 그때가 제 나이 서른넷이었습니다.”

슈퍼맨 복장을 입고 홍보를 하기 시작한 박재현 대표
슈퍼맨 복장을 입고 홍보를 하기 시작한 박재현 대표

박재현 슈퍼맨이 되어 돌아오다

그분이 제게 당신 말도 잘하고 영업 잘할 것 같은데 해보면 어떠냐?’고 물었고 잘하면 돈 좀 번다는데 그 말 한마디에 솔깃하더군요. 그때의 심정은 부자 되는 것보다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싶었거든요.

갑자기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고 싶어 낮에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했던 일들이 생각나더군요. 이제 더는 고향 내려와서 겨우 한다는 게 대리운전이야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시 생활만 하다 보니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데 누가 제게 보험을 들어 주겠습니까. 홍보가 필요했지요. 그때 S화재에 슈퍼보험이 있었습니다. ‘아 그렇다면 슈퍼맨이 되어보자. 슈퍼맨은 남을 구해주잖아. 보험도 누군가를 도와주고 구해주니 이 둘은 서로 닮았네라며 바로 슈퍼맨 복장을 입고 홍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하여 딱 한시간 반을 사거리를 옮겨 다니며 안전한 출근길 되세요. S화재 슈퍼맨입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한결같이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어요. 때로는 스스로 눈물이 나더군요. 왜 그러고 서 있느냐고 자신에게 자문도 했습니다.

아내는 이런 저를 보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돌아서 울더군요. 솔직히 저 또한 부끄러운 마음에 슈퍼맨 복장을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슈퍼맨은 제가 숨을 수 있는 가면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저는 16개월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슈퍼맨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사람들이 한 달 두 달, 1년이 지나면서 손을 흔들어 주는가 하면 클랙슨 소리를 눌러 용기를 주기도 하더군요.”

회사 업무 전경
회사 업무 전경

새롭게 비상한 새가 두 마리 토끼를 잡다

그리고 저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낮 동안 명함을 들고 사람들을 만나면 당신이 슈퍼맨이야? 당신한테 내가 자동차 보험 들어준다. 당신한테 내가 운전자보험 들어줄게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저는 다시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서산청년회의소 선배들을 통해 인맥을 펼치고 회사 내 내로라하는 분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슈퍼맨이 저를 여기 이 자리에 있게 해줬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도 정말 잊지 못하는 추억도 하나 있습니다. 어느날 사거리에서 인사를 하는데 어떤 여학생이 다가와 요구르트를 내밀며 아저씨 이거 드세요. 열심히 하시는데 힘내세요라는 겁니다. 저는 그 요구르트를 먹질 못했어요.

그 여학생에게서 제가 본 건 희망이었거든요. ‘아 이 젊은 학생 눈에도 내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이는구나.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이와 비슷하게 느끼겠네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게도 희망과 용기가 생기더군요.

그러고 보니 당시에는 저를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전화 와서 저에게 보험 가입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회사 내에서도 이슈화되었지요. 어느날 지점장님이 저의 슈퍼맨 복장을 발견하고 놀라서 아니 박재현 씨, 이벤트 회사로 옮겼냐?”고 묻더군요. 당시 직원 70명도 에이, 신입사원이 하면 얼마큼 하겠냐! 열심히 해봐’.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너 진짜 인정할게라며 학을 띠더군요.

세상이치란 영원하지 않나봅니다. 슈퍼맨 복장을 하고 인사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민원이 들어왔다며 어느날 경찰이 출동하더군요. 결국 박재현 식 슈퍼맨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안타깝게도 술을 못하다 보니 영업의 한계를 느껴, 대신 업무적으로 철저하게 접근하여 신뢰를 쌓았습니다. 저를 올곧게 세워준 S화재에서 십 년을 근무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의 회사로는 어렵겠다는 결론을 얻어 창업을 하게되었습니다. 조그마한 인원 2~3명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18명까지 저를 믿고 따라주는 직원들이 생겼습니다.”

박재현 대표가 운영하는 사과나무인슈어런스에는 유튜브 방송시스템도 골고루 갖춰져 있다. 서산 속 방송인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그는, 얼마 전 시민들에게 숨은 보험금 찾아주기캠페인을 하여 눈길을 끈적도 있다.

몰라서, 너무 복잡해서 못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시작하게 됐는데 반응들이 상당했다며 뿌듯해 했다.

에필로그

원조슈퍼맨 사과나무인슈어런스박재현 대표는 현재 물고기에게 푹 빠져 있다. 보고 있으면 괜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는 그는, 자신을 물고기 아빠라고 불러달란다.

잠시 짬을 누리는 것도 호사인 박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소소한 행복 또한 건강해야 가능하지 않나. 얼마 전 서태안 교통사고 환자들의 빠른 치유를 위해 혜민한방병원MOU를 체결했다. 조만간 서산의료원과도 업무협약을 앞두고 있다. 이로써 서산 최초로 보험금 청구대행 서비스 및 서산의료원의 의료행정서비스가 개선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물고기 아빠가 부디 행복하기를, 또한 위로와 희망의 선물이 되기를 서산시대는 간절히 기원한다.

직원들과 유튜브 촬영회의
직원들과 유튜브 촬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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