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⑭

머리에 브릿지 헤어핀을 하나씩 나눠 꽂은 다은이와 다연이는 “공주같다, 엘사같다, 라푼젤같다”며 즐거워했다
언니 다은이를 너무 좋아하는 동생 다연이는 유치원 차을 타고 떠날 언니를 꼭 안고 있다.

61, 6살 다은이의 유치원이 드디어 개학을 했다. 4시 하원 후에는 같은 반 친구 2~3명과 매일 아파트 놀이터에서 1시간가량 더 놀았는데, 이때 지켜본 바에 의하면 다은이의 담임선생님은 신통방통한 손재주로 아이들의 머리를 묶어주신다.

등원 5일째 되던 금요일, 하원하는 다은이의 헤어스타일은 아침에 내가 묶어준 그대로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약간 풀이 죽은 목소리로 선생님이 내 이름을 안 불렀어라고 했다. 나는 아이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아침에 엄마가 묶어준 그대로라 예뻐서 안 묶어 준 것 같다고 말하며 직접 거울까지 보여주었다. 다은이의 아픈 손가락인 머리카락...

그날 오후 담임선생님은 한 주를 마무리하며 학부모에게 상담 전화를 돌렸다. 내가 처음으로 선생님과 상담한 내용은 바로 다은이의 머리카락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다은이가 유치원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만 말했는데, 선생님이 먼저 다은이의 머리카락에 관하여 이야기를 꺼냈다.

다은이는 유치원에서 밝은 모습으로 잘 지내요. 그런데 제가 여자 친구들의 머리를 묶어 줄 때 자주 쳐다보면서 부러운지 자신의 머리를 슬쩍 만져보곤 하더라고요. 저도 애써서 묶어주려고는 하는데 이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요라고 하시던 선생님.

그제야 나는 그날 하원 후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선생님은 죄송해요. 저도 너무 조심스러워서요. 앞으로는 매일 한 번씩 다은이 머리 만져주도록 할게요라고 덧붙였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교실에서의 사소한 장면일텐데 그런 다은이의 모습을 눈여겨보셨다니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머리숱이 너무 없던 아기 다은이. 나는 다은이의 머리가 시릴까봐 가을 겨울이면 어김없이 따뜻한 모자를 씌웠고, 따뜻할 때면 또 따뜻한 대로 여자아이 티가 나는 모자를 씌웠다. 시간이 지나도 머리카락이 거의 길지 않자 남편과 나는 서로의 아기 사진을 찾아 머리카락 길이를 비교해 보기도 했다.

아이가 돌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공원 벤치에서 모자를 벗은 채 바나나를 먹던 다은이를 보고 지나가던 할머니가 갓난아기가 혼자서 바나나를 먹네하고 말을 걸어오셨다. 머리카락이 짧으니 한참 어린 아기로 오해하신 모양이었다. 그 날 빨간색 외투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장군감이라고 하시며 걸음을 떼시던 할머니.

내가 분홍색 옷을 입혀도, 심지어 치마를 입히고 나가도 지나가는 어르신들은 매번 아들이냐고 물었다. 요즘 시대에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은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고리타분한 발상이지만 엄마인 나는 괜히 속상했다. ‘이 옷을 좀 보시라고요! 이 아이는 금쪽같은 내 !’이란 말이에요!‘

지인들은 말했다. “돌이 지나면 머리카락이 길거야돌이 지나선 두 돌이 지나면 길거야이후엔 내년되면 많이 길거야양치기소년이 되어 버린 지인들의 말.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고 싶다. 간곡히~

다은이는 잔머리가 많고 길이가 짧아 머리를 풀고 있으면 지저분한데, 제 딴에는 그게 더 길어 보이는 줄 안다. 그래서 자주 내가 묶어준 머리끈을 푼다. 다은이는 가끔 나 머리 많이 길었어. 이것 봐라고 말하는데, 아직 머리카락이 쑤욱 자라는 그 시기는 오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3살 터울의 동생에게 머리카락 길이를 추월당하기까지 했다. 아 슬프다.

머리카락이 닮은 다은이와 다연이
머리카락이 닮은 다은이와 다연이

다연이의 머리를 유심히 보던 남편이 다은이가 상처받지 않게 다연이 뒷머리를 좀 잘라주자고 했을 때, 솔직히 나는 좀 망설여졌다. 다연이의 머리를 길러 예쁘게 꾸며 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니 남편의 말이 옳았다. 머리가 많이 길면 미용실에 가서 예쁘게 파마하고 싶다던 다은이. 결국 나는 다은이를 위해 다연이의 뒷머리카락을 싹뚝 잘랐고, 둘의 머리 길이는 비슷해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는 매주 토요일마다 시부모님의 작은 별장에 간다. 산골이라 아이들이 마스크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어서이다. 지난주 다은이가 마당 한가운데 서있는 배롱나무의 잎을 따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다은아 나뭇잎 따면 안 돼. 그러면 나무가 아파. 나뭇잎은 나무의 머리카락이야. 누가 다은이 머리카락을 뽑으면 아플까, 안 아플까? 다은이가 나뭇잎을 자꾸 따니까 다은이 머리카락도 안자라는거야라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다은이의 표정이 갑자기 멍해졌고,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다은이가 곧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아이는 곧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알겠어라고 대답했다. 아이의 컴플렉스를 알면서 아픈 부분을 건드리다니... 나는 너무 미안해서 마지막에 내뱉은 한 문장을 주워 담고 싶었다.

그날 밤 인터넷을 뒤져 다은이를 위한 브릿지 헤어핀을 구입했다. 왜 진작 사 줄 생각을 못했을까? 집에 있는 노리개장식을 자신의 포니테일(말총머리)에 걸어 제 머리카락이라며 쓰다듬던 모습이 생각났다.

머리에 브릿지 헤어핀을 꽂은 다은이는 “공주같다, 엘사같다, 라푼젤같다”며 좋아했다.
머리에 브릿지 헤어핀을 꽂은 다은이는 “공주같다, 엘사같다, 라푼젤같다”며 좋아했다.

며칠 후 다은이에게 헤어핀을 건네주었다. 다은이는 좋아서 팔짝팔짝 뛰며 나를 끌어안고 엄마 정말 고마워라고 말했다. 좋아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로 감동받을 줄은 몰랐던지라 나는 다은이를 얼싸안으며 함께 기뻐했다. 머리에 브릿지 헤어핀을 하나씩 나눠 꽂은 다은이와 다연이는 공주같다, 엘사같다, 라푼젤같다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보라색 브릿지 헤어핀을 꽂고 집을 나서는 다은이의 뒷모습에, 이상하게 내 마음이 설레고 있었다.

즐겁게 유치원으로 등원하는 모습
즐겁게 유치원으로 등원하는 모습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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