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저자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깊은 숲에서 울리는 메아리인 에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의 요정이다. 그녀는 이기적이고 잘생긴 젊은 사냥꾼에게 실연당해 슬퍼하다 육신은 사라지고 숲에 울리는 다른 목소리에 대답하는 목소리로 남게 된다. 결국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 의해 그 청년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게 된다.

이 이야기는 지나친 이기심의 파국적인 결과를 경고하는 교훈으로 자주 인용되는 그리스 신화로 자기애를 의미하는 나르시시즘은 이기적인 청년 나르키소스라는 인물에서 유래됐다. 최근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여러 사건이 이 신화와 무척 닮아있다.

인간은 병원균 같은 타자가 몸에 들어 온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대신 생물학적 과정인 면역이 작동한다. 타자에 대한 적절한 방어 체계를 면역계라고 하는데, 그 기작이 자기와 타자를 구별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마치 중세시대의 성처럼 타자에 대한 방어와 공격 장치가 겹겹이 있다. 높은 성벽과 문으로 침입하는 통로를 제한하듯 우리 몸은 면역계 이전에 최전선에 1차 방어막을 구축하고 있다. 피부는 사망한 피부세포와 과립세포층의 지방으로 세균의 침입을 막는다. 그래서 화상 환자들이 감염에 취약하고 몸의 때를 과도하게 밀어 없애는 목욕법은 보건에 유리하지 않다.

대표적 출입구인 코와 입인 호흡기는 기도까지 도달하는 통로에서 점액이 타자들을 포획하고 섬모에 의해 몸 밖으로 배출한다. 더럽다고 여기는 코딱지와 가래는 전리품이고 재채기나 기침은 승리를 자축하는 환호인 셈이다.

이렇게 몸에 있는 여러 구멍에 존재하는 점액은 단순한 분비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항균 단백질이 포함된 화학무기다. 심지어 귀지도 지방질과 항균 물질이 버무려진 청소기다. 귀지는 일부러 제거해야 할 더러운 존재가 아니다.

이런 1차 방어선인 성문이 뚫리면 비로소 면역계가 작동한다. 2차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킬러세포는 피아를 식별한다. 대표적 킬러 세포인 호중구는 매일 골수로부터 약 2억 개 가량이 혈관으로 쏟아져 감염 지역에 이동해 병원균을 살해하고 대식세포는 이름에 걸맞게 균을 포식하며 고름이라는 잔해물로 처리됨을 증명한다.

그런데 킬러라는 이름답지 않게 작전 수행이 세련되지 못하다. 호중구는 전투지역에 독성 화학물질을 쏟아내 상대를 분해하는 통에 정상 조직도 막대한 손상을 입게 된다. 이런 거친 킬러세포도 있지만, 세포들을 심문해 수상하면 감염된 세포에 구멍을 뚫고 효소를 분비해 세포가 스스로 자폭하게 하는 자연살해세포도 있다.

이 방어선마저 뚫리면 정예 암살단이 등장하는데, 보통 T세포, B세포라고 불리는 후천성 면역세포들이다. B세포는 맞춤형 항체를 주문 생산하고 T세포는 타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배신한 암세포 같은 배신자까지도 색출한다.

우리 몸은 약 1조 개의 구별되는 항체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어떠한 항원도 살해 대상이 된다. 이 암살법을 이용한 것이 바로 백신 Vaccine이다.

지금까지 다소 공격적이고 배타적으로 면역계를 설명했지만, 부적절하거나 거부감 없이, 오히려 이해가 잘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타자에 대해 무조건 적대적인 게 맞을까.

우리 몸은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타자인 미생물과 공생하는 생태계다. 과학자들은 면역의 기본 작동을 무조건 자신과 다른 존재를 구별하거나 위험인자만을 감시한다는 모델을 넘어서 지금처럼 싸우지 않고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해 미지의 질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공생 모델을 주장한다.

이 생각을 사회적인 생태계인 우리 공동체로 끌어와 겹쳐 보면 꽤 고민할 거리를 던져준다. 우리 공동체도 자연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가진 타자는 여전히 다양하게 존재하고, 관념조차 돌연변이처럼 유기적으로 계속 변하며 때로는 위험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결국 서로의 모습은 공동체 안에서 영향을 주는 환경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공생하는 존재다.

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단순한 피아식별로 타자에 대해 인색하고 적대적이며 배제하거나 공격적인 경우가 많다. 타자를 배려하지 않는 한 자신도 독성을 가지고 숙주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최근 특정 유사 종교 집단과 비교적 건강했던 젊은 세대의 문화와 자본의 중심에선 몇몇 기업들의 이기심이 낳은 참담한 결과는 공동체에 속한 개인은 물론이고 숙주인 국가 전체를 뒤흔든 셈이 됐다. 이미 정상적이라 착각한 과거의 모든 시스템은 감염병의 등장으로 무너졌다. 사회 구석구석 어느 하나 고통받지 않는 곳이 없다. 팬더믹은 마치 엑스선처럼 현대 문명을 비추며 진실과 민낯을 보여줬다. 이 전염의 시기가 끝나면 일상의 회귀와 함께 소멸할지 모르는 진실이다.

배움이 없는 역사는 또 반복된다. 숲에 울리는 에코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소리로 메아리치고 있을까. 혹시 나는 자신만을 바라보는 나르키소스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타인이 무너지면 자신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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