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⑪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시간이 누적되면서 체력이 떨어졌는지 한번 생긴 구내염이 쉽사리 낫지 않는다. 3살과 6살 된 아이들은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는 것까지 내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거의 없으니 몸살이 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랄까. 이렇게 피로를 달고 사는 와중에도 나는 아이들 덕분에 웃을 수 있다.
내 첫 조카 선우가 어릴 때 꽃이 진 것을 보고 ‘꽃이 쓰러졌다’고 표현해 역시 시인 아들은 다르다고 감탄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을 키워보니 이렇게 재미있는 일화가 종종 생긴다.
#1
경주 친정에 가족들이 모여 있을 때였다. 거실에서 다 같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4살 다은이가 이모들을 둘러보며 “이모 한 마리, 이모 두 마리, 이모 세 마리” 하고 숫자를 세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다은이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은 한 명, 두 명, 세 명이라 세는 거라고 말해 주면서도 나는 한번 터진 웃음을 쉽게 멈추지 못했다.
#2
우리 아이들이 잠자리에서 매일 하는 의식이 있다. 자신들이 직접 고른 책 3~4권을 엄마나 아빠와 읽고 창작동화 CD를 들으며 잠을 자는 것이다. 그 동화 중 에릭 칼의 ‘아빠 달님을 따 주세요’에는 달님을 따 달라는 딸 모니카의 부탁에 아빠가 사다리를 타고 작아진 달을 따 주는 내용이 있다.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다은이는 아빠에게 달을 따 달라고 부탁했고, 밤이 되자 남편은 달님을 따러 간다고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문구점에서 장난감 야광 달과 별을 사 온 남편은 그 중 하나씩을 몰래 방에 가져다 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그것을 본 다은이는 기뻐하며 “아빠 어떻게 따 왔어요?”라고 신기한 듯이 물었다. “아빠가 높은 산에 가서 사다리 타고 올라가 따 왔지. 아이고 다리야”라며 다리를 두드리는 남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야광 플라스틱 달과 별을 만지면서도 진짜 달님과 별님이라 생각한 다은이는 “아빠 다연이꺼도 따 주세요”라고 부탁했고 그 날 밤 남편은 자는 아이들 곁에 야광 달과 별을 하나씩 더 꺼내 두었다.
매일 밤 책 읽기가 끝나면 남편은 형광등을 꺼 주며 아이 방을 나가는데 그러면 낮에 빛을 머금은 달님 2개와 별님 2개가 또렷이 눈에 들어온다.
#3
태명이 ‘다동이’인 다연이는 말을 트면서 어느 순간 스스로를 ‘따똥’이라 불렀다. 최근에는 언니가 ‘따똥’이라 칭하면 “엄마~ 언니가 따똥 해. 나는 그냥 다연인데”라며 속상해 하지만 스스로를 여전히 ‘따똥’이라 말하는 다연이.
그런 다연이는 밤에 “다연아 잘 자” 하고 인사해주면 “아빠잘자 엄마잘자 언니잘자 따똥잘자” 하고 랩이라도 하듯 속사포로 대답한다. 조금은 짧은 혀로 이 말을 하는데 그게 귀여워서 다은이와 나는 들을 때마다 함께 웃는다.
좀 더 크면 이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 하루는 불을 켠 상태로 동영상을 찍는데 제 딴에는 어색한지 평소처럼 말하지 않는다. 이 목소리를 간직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촬영해 봐야겠다.
#4
2주 전 어버이날 기념으로 시댁에 갔을 때였다. 잠시 외출한 남편이 아이스크림을 사 온다기에 기다리고 있는데 다은이가 밖을 보며 “아빠” 하고 불렀다. 밖을 내다보니 다은이는 아빠가 지나갔다고 말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어! 아빠가 구름빵 먹고 구름 위로 올라갔네”라며 맞장구를 쳤는데 옆에 있던 3살 다연이가 갑자기 아빠를 외치며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이제 내려왔네. 곧 집에 올 거야”라며 달랬지만 다연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동화 ‘구름빵’을 알고 있는 다연이지만 아빠가 너무 멀리 갔을까봐 겁이 난 모양이었다. 아이에게 두려움을 주는 장난은 조금 자제 해야겠다. ^^;
#5
우리 아이들은 꿀과 잣을 넣은 멸치볶음을 좋아한다. 며칠 전 콩자반을 먹던 다연이가 “짜”라고 했는데 나는 잣으로 잘못 듣고 두 번이나 “잣?” 하고 되물었다. 다연이는 “아니 짜” 했는데 이번에는 옆에서 같이 밥을 먹던 다은이가 “콩이 잣 같아?”라고 물었다.
순간 나는 사람들이 비속어를 에둘러 표현하는 그 말이 생각나 깔깔 웃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이 말을 하며 또 웃는데 그는 나를 향해 사상이 불순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치~ 그러나저러나 웃긴 걸 나더러 어쩌라고~
#6
어제는 온 가족이 기생충 약을 먹었다. 매년 봄에 먹는데 올해는 조금 늦었다. 어린이용 약은 시럽이라 각자 용량에 맞게 약병에 넣어 주었는데 약을 먹은 다은이가 이렇게 말했다. “오랜만에 약 먹으니까 맛있다” 그걸 들은 다연이는 크게 외쳤다. “약 또!” 약을 먹고 이렇게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고 어찌 웃음이 나지 않으랴.
엄마를 웃게도 하고 힘들게도 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우리 아이들. 이 아이들이 자랄수록 어릴 적 모습이 더 많이 그리워지겠지?
그 생각을 하며 힘들어도 다시, 또다시 기운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