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의 재미있는 이슈메이커-⑩

척박한 곳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척박한 곳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밤낮없이 따뜻한 조명, 사계절이 무색하리만치 적당한 온도와 습도, 비바람 겪을 일없이 탄탄한 외벽, 온실 속 화초 이야기다. 성인이 되어도 철부지 같고 이기적인 그들을 보며 다들 한번쯤은 비유하지 않는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온실에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들과 제법 울창한 나무들로 빼곡했다. 미세먼지 걱정 없고 궂은 날씨에도 끄떡없으니 이만큼 좋은 환경이 어디 있겠는가. 온실과 같은 환경을 수저 계급론으로 말하자면 소위 금수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녀의 지위도 결정된다는 이론으로 집안 형편이나 부유한 정도를 따져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따위로 나누는 것이다. 불합리함을 주장하지만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필자가 어린 시절 보았던 어느 드라마에서 불우하게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되어 재벌 손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는 진부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마흔이 넘은 지금은 흔하디흔한 드라마 소재거리에 그저 감흥 없이 볼 뿐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곤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게도 그런 재벌 할아버지가 산타처럼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백마 탄 왕자님이든, 선물 보따리를 안겨줄 산타든 익히 알고 있듯이 대부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물며 온실과 같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되겠는가.

리서치전문업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중 8명은 자신이 중산층 이상이 아니라고 답했다. 실제 중산층 정도의 수준을 갖고 있음에도 본인이 느끼는 만족감은 이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는 소득수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부모의 소득수준에 대한 만족감은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연세대사회발전연구소가 진행한 한국 청소년 행복지수에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즉 물질적 만족도에 비해 주관적 행복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을 다 헤아리지는 못하나, 필자의 성악설(性惡說)에 대한 신념을 무참히 깨트린 존재가 있다. 바로 몇 해 전 태어난 조카아이들이다.

식당에 가면 떠들고 뛰는 아이들에게 눈살을 찌푸리던 내가 조카에게만큼은 관대하다. 자기입장만 고수하는 고집 센 아이들을 보면 버릇없다고 험담하던 내가 고집 센 조카는 그저 자기주장이 확실하다고 칭찬한다. 이율배반적 사고에 헛웃음이 난다.

필자만 그렇겠는가.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일터. 부모는 소중한 자식을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물질적, 외재적 조건과 환경은 분명 한계가 있다. 또한 무한한 물질적 조건을 제공한다고 해서 올바른 양육방법이라 할 수는 없다.

시대에 따라 양육방식은 변화되어왔다. 17세기에는 엄격한 훈육과 체벌이 이상적인 양육방식이었으나, 18세기 들어서면서 지식과 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증가되었다. 20세기 초에는 부모-자녀 간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자녀의 인지발달이나 성격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양육태도를 처음 체계화한 Symond(1949)는 자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정도에 따라 거부형과 수용형으로 나누고, 부모의 관여 정도에 따라 지배와 복종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형태는 심리적으로 불안정적인 정서를 형성할 수 있다. 부모의 양육태도가 자녀의 성격, 가치관, 인성 등을 결정하는 만큼 뚜렷한 지침과 신념을 갖고 올바로 훈육하는 것이 물질적 가치보다 더욱 중요할 것이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출근길. 도로 위 하수도관에서 필자는 걸음을 멈추었다. 쓰레기로 가득차고 오물이 흐르는 하수도관에 민들레 한 송이가 핀 것이다. 절대적 조건에서 보자면 꽃이 필 수 있는 환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실 속에서 보았던 것과 다름없는 꽃이 피어있었다. 오히려 하수도관에서 피어오른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의지에 필자는 뭉클한 감동마저 일었다. 하물며 자녀의 성장을 바라보는 마음은 오죽할까. 어떤 환경을 줄 수 있느냐는 부수적 요인일 뿐, 꽃을 피우려는 의지만 가르친다면 그보다 갚질 수는 없으리라.

참고문헌 1. 김신정, & 김영희. (2007). 부모의 양육태도에 대한 고찰. 부모자녀건강학회지, 10(2), 172-181.

2. Symonds, P. M. (1949). The dynamics of parent-child relationships.

유은경 사회과학 박사과정 중
유은경 사회과학 박사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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