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 엄마의 200점 도전기-⑧

6살 다은이와 3살 다연이
6살 다은이와 3살 다연이

나는 편식이 심한 아이였다. 언제부터인지, 어떤 계기였는지 나조차도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돼지고기, 소고기, 흰 우유를 입에 대지 않았고 시골 출신답지 않게 야채류도 잘 먹지 않았다. 김치도 볶은 것만 먹었다. 대신 닭고기, 소시지나 햄 같은 가공육, 달걀, 생선, 해산물, 마른반찬이 있으면 밥을 잘 먹었다.

어릴 때 자주 먹던 일명 사라다에는 메추리알과 각종 과일, 견과류, 야채가 들어 있었는데 나는 야채만 쏙 빼고 먹곤 했다. 내 접시에 오이만 수북이 남은 것을 본 오빠에게 혼나 투덜대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카레에 몰래 고기를 넣고 모른 척 먹이려고 했지만 단번에 알아내고 먹지 않은 기억, 학교 급식실 아주머니께서 닭고기가 나온 날에는 이거라도 많이 먹으라며 수북하게 담아 주셨던 기억도 난다.

우리 가족들은 언제나 나에게 고기를 먹이려 애썼다. 고등학생 시절, 성화에 못 이겨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그것을 씹는 순간 나는 우웩하고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둘째 미향이 언니가 그걸 보고 가족들에게 못 먹는 개고기를 억지로 먹이면 우리도 구역질이 날거다. 윤애에게는 이 고기가 개고기와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 소리에 나는 고기를 뱉어내고 구역질로 나온 눈물을 닦을 수 있었다.

반면 남편은 타고 난 대식가였다. 청소년기에는 앉은 자리에서 초코파이 한 통을 다 먹고 우유 1리터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시어머니는 집에 잘 먹는 개 한 마리를 키우는 것 같다라고 하셨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남편은 김치 한 가지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6살 다은이와 3살 다연이
6살 다은이와 3살 다연이

이런 우리 부부에게 안 먹는 아이와 잘 먹는 아이가 한 명씩 있다. 안 먹는 아이, 그 떡잎부터 다르다.

첫째 다은이가 신생아일 때, 모유를 조금 먹다 잠들기를 반복했고 나는 매번 잠든 아이를 깨워가며 수유를 해야 했다. 처음 이유식을 시작했을 때 아이가 잘 먹어주어 기뻤지만, 그 기쁨은 고작 몇 번이 전부였다. 물조차 잘 마시지 않던 다은이는 대신 과일과 치즈, 과자 같은 간식은 좋아했다.

둘째 다연이는 모유, 이유식, 밥 모두 잘 먹었다. 둘째라 일찍부터 간이 된 음식을 줬는데 오히려 음식 맛을 더 잘 아는 것 같다. 식사 때가 되면 엄마 밥 주세요!”하며 먼저 밥을 찾고 식탁에 앉아 성화를 부린다. 첫째에게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모습이다.

6살 다은이와 3살 다연이
6살 다은이와 3살 다연이

잘 먹는 아이는 약도 잘 먹는다.

다은이는 아플 때 약을 먹이기가 참 힘들었다. 입 한쪽으로 약을 조금씩 넣어주면 울면서 삼키던 아이는 달콤한 시럽 약도 매워하며 먹기 힘들어했다. 쓴 가루약이 들어가면 아이는 입을 벌리지 않았고 심지어 입에 들어간 약을 뱉어내기도 했다. 약을 먹일 때면 도망가는 아이를 붙잡아 억지로 먹여야 하는 등 한바탕 전쟁이 일어났다. 말이 통하면서부터는 그나마 약을 먹이기 쉬워졌다.

한편 다연이는 가루약조차도 잘 먹는다. “하고 외치면서 스스로 약병을 거꾸로 들고 쪽쪽 빨아 먹어주니 한결 수월하다. 동생의 이런 모습에 다은이가 약을 전보다 잘 먹게 되었다.

잘 먹는 아이는 울면서도 먹는다.

먹성 좋은 다연이는 배가 고프면 밥을 잘 먹는다. 그러니 가끔 잘 먹지 않아도 걱정되지 않는다. 간식을 줄 때도 밥을 먹지 않을까 봐 하는 부담이 적다. 다연이는 음식을 먹다가 울게 되어도 그 와중에 손에 든 것을 계속 먹는다. 잘 먹는 아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에 음식 넣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밥 먹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다은이, 나도 식사시간이 두렵다.

다은이는 밥 먹자는 소리에 바로 달려온 적이 몇 번 없다. 여러 번 불러야 마지못해 식탁으로 온다. 이런 아이의 모습은 아기가 배고픈 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초보 엄마의 잘못이 크다. 이유식을 주면 고개를 돌리는 아이에게 구강기(~1) 빨고자 하는 욕구를 이용해 다른 숟가락으로 입에 이유식을 넣어 먹이곤 했던 나,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 같다. 돌 때까지 간을 하지 말라는 이유식 책을 보면서 나는 아이가 그렇게 안 먹는데도 간을 최소화했다. 한때는 미끄럼틀에서 놀이를 해 가며 먹이고, 시간이 지체되어도 정해진 양을 끝까지 먹이려고 애썼으며, 밥을 먹으면 간식을 주겠다고 협상을 해 가며 먹이기도 했다.

6살 다은이와 3살 다연이
6살 다은이와 3살 다연이

많은 육아서와 전문가들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막상 내 아이가 너무나 안 먹으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다은이가 내 아담한 키를 닮을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약 40분으로 식사시간을 제한하고 식탁에 앉아서 먹도록 하며 후식과 간식을 줄이려고 하지만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다은이가 식사시간이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아이가 또 안 먹을까 봐 식사시간이 두렵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어릴 때 심하게 편식한 것이 큰 후회로 남는다. 그때 고기, 우유, 야채를 적당히 먹었더라면 내 키가 한 뼘은 더 자라지 않았을까? 유전적인 소인에다 편식이라는 후천적 소인까지 더해져 아담 사이즈로 자란 내 키. 밥을 싫어하는 내 딸 다은이도 어른이 되어 이런 후회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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