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국회,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입법화
제18대 국회, 일명 ‘국회선진화법’이라고 불리는 국회법 개정

2008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2008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17. 17대 국회(2004.05.30~2008.05.29)

2004415일 치러진 17대 국회의원 선거결과, 전체 299석 중 열린우리당 152, 한나라당 121, 민주노동당 10, 민주당 9, 자민련 4, 기타 3석으로 구성되었다. 17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의 주요 특징적인 사항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여 그동안의 여소야대 국회가 거대 여당체제로 전환되었고, 최초로 도입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시행에 힘입어 헌정사상 처음으로 민주노동당이 원내 입성하였다. 또 총 299명의 국회의원 중 211명이 초선으로 당선되었고 3~40대 의원비율이 43%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여성의원의 비율도 13%(39)로 두 자리 숫자로 크게 증가하였다.

 

호주제 및 동성동본 금혼제 폐지

 

국회는 200532일 민법을 개정하여 2008년부터 호주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가족부제를 도입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동성동본 금혼제도도 폐지하였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입법화

 

국회는 신행정수도 건설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200532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을 통과시켜 연기·공주지역에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도록 하였다.

 

선거연령 하향조정을 통한 국민의 선거참여 확대

 

국회는 2005630일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을 개정하여 선거권 연령을 20세에서 19세로 하향조정하고, 영주체류자격 취득 후 3년이 경과한 외국인에게도 지방선거권을 부여하는 등 국민의 선거참여를 확대하였으며,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실시 등 책임정치의 기반을 강화하였다.

 

18. 18대 국회(2008.05.30~2012.05.29)

200849일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회의원 정수 299석 중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원내 절반을 넘어서는 153석을 차지했으며, 통합민주당이 81, 자유선진당 18, 친박연대 14, 민주노동당 5, 창조한국당 3, 무소속이 25석을 각각 획득하였다. 18대국회의 국회의원 정수는 299인으로 제17대 국회와 동수를 유지하였으나, 지역구 의원 수가 243인에서 245인으로 2인 증가한 대신 비례대표의원수는 56인에서 54인으로 2인이 줄었다.

 

재외국민에게 투표권 부여

 

국회는 200925공직선거법, 국민투표법, 주민투표법을 개정하여 재외국민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였다. 이 법률 개정으로 19세 이상의 재외국민 240만 명이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 비례대표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FTA 비준안 국회 의결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2007630일 양국 정부간 공식 서명이 이루어진지 45개월만인 201111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날 표결에는 야당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이 불참하였고, 한나라당 의원과 자유선진당·미래희망연대 의원들은 표결에 참가했다.

 

의회운영 패러다임 개혁

 

18대국회는 일명 국회선진화법이라고 불리는 국회법 개정을 통하여 이견조정이 필요한 안건을 위해 여야 동수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위원회 안건 숙려기간 및 안건 신속처리제, 예산안 및 세입예산안 부수법률안의(121) 본회의 자동 부의제도, 본회의에서의 무제한 토론제 등을 도입하였다. 또 의원의 의장석 또는 위원장석 점거 금지 및 국회 회의장 출입방해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징계하도록 하는 등 기존의 의회 운영 패러다임을 바꿨다.

 

2008년 5월 광우병 촛불집회
2008년 5월 광우병 촛불집회

 

광우병 촛불집회

2008년 대한민국 촛불 시위는 20085월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 내용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학생과 시민들의 모임으로 출발한 촛불 시위이다. 100일 이상 집회가 계속되면서 쟁점이 교육 문제, 대운하·공기업 민영화 반대 및 정권퇴진 등으로 점차 정치적으로 확대되었다. 52일 첫 집회 이후 2개월간 연일 수백에서 수십만 명이 참가하였으며, 610일을 정점으로 하여 7월 이후에는 주말 집회가 계속되었다.

시민들은 대부분 광우병 촛불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으나 보수 언론에서는 일부의 중고생들은 일부 교사들이 수행평가 가산점을 준다며 참석을 종용하여 참석한 것이라며 비판하기도 하였다.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참가도 많았으며, 연예인이나 음악가들이 많이 참가하여 문화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집회가 끝난 뒤 거리행진을 하며 청와대로 향하는 과정에서 경찰들과 폭력적으로 충돌하기도 하였다. 시위 참가자의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특성을 두고 웹 2.0에 빗대어 민주주의 2.0” 혹은 시위 2.0”의 등장이라고 부르기도 하였고, 이와 더불어 정권의 시위 과잉 진압, 소통없는 정치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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