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은 박물관 불모지...내포권역 역사 담아야

특별기고문화유산회복재단 김정윤 정책연구원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공주시에 위치한 충청남도역사박물관과 공주시와의 건물임대 계약이 당장 올해 만료된다. 이에 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가지정문화재 473점과 도지정 문화재 1364점을 비롯한 4만여 점에 이르는 유물을 보존하고 연구하고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해졌다. 미술관 건립, 박물관 건립 등 충남도, 충남도의회, 지자체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고, 선사시대이래 백제 역사, 고려 시대, 조선 시대를 아우르는 충남도의 유물과 문화재를 전시할 수 있는 충남도립박물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새롭게 개설된 박물관의 위치로 내포권역이 각광을 받고 있다. 내포란 순수 우리말로 안개라는 뜻인데, 바닷물과 강을 통해 육지 안까지 배가 드나들 수 있었던 지역을 뜻한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는 가야산 앞뒤에 있는 10개의 고을을 내포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곳은 현재 홍주, 결성, 해미, 서산, 태안, 덕산, 예산, 신창, 면천, 당진 지역이다. 내포지역은 서해안을 끼고 있어 예부터 다른 나라의 선진문물을 빨리 받아들이기 용이하였고, 발달한 해상교통을 기반으로 수준 높은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시기부터 꾸준히 해양교류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선진문물의 교류가 왕성했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에 거주했고, 장사나 보부상들도 많았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공주와 부여로 대변되는 백제의 왕도, 귀족 중심의 문화와는 달리 내포는 민초들과 백성 중심의 서민문화가 꽃피웠던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장리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

내포권역에서도 서산이 가장 강력한 신설 박물관의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충청남도 내 국·공립박물관은 총 28개가 있으며, 소장된 유물은 총 186천여 점에 이른다. 그러나 서산에는 박물관이 단 한개소도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공립박물관에 소장된 유물 중 85% 정도가 공주와 부여, 천안, 충남역사박물관 등 4개소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 꾸준히 문제 제기되어 왔다. 또한 문화재청에서는 지역균형발전과 박물관별 특성화를 위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인 지역 유물 42,474점을 해당 출토 지역의 소속 박물관으로 임시이관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국립부여박물관은 사비 백제 문화를 대표하고 국립공주박물관은 웅진 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선정되어 이에 해당하는 총 3,302점의 유물을 이관 중이다. 그러나 이관 예정 유물 중 1천여 점에 이르는 유물은 내포 지역에서 출토된 것이지만 내포지역에 박물관이 없기때문에 부여나 공주박물관으로 이관되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이렇듯 서산을 비롯한 내포권역에 있는 유적과 출토된 유물이 상당수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장할 박물관이 없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아니면 수장고에 방치되다시피 보관되어 있는 실정이다. 내포지역의 문화재를 포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 전시, 활용, 연구할 수 있는 도립박물관 건립이 시급한 이유이다.

 

내포문화권역의 중심지인 서산

다양한 유적지와 문화유산 남아

각 지역으로 흩어진 보원사지 유물들. 사진출처 : 보원사

 

내포문화권역의 중심지인 서산에는 다양한 유적지와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국보 제84호에 지정된 마애삼존불은 백제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세분의 부처가 돌에 새겨져 있다. 빛이 드는 방향이나 보는 각도에 따라 부처의 얼굴 표정과 미소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신비의 미소라고도 불린다. 서산 마애삼존불에서 계곡 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백제 때 창건하고 고려 때 번창하여 조선까지 그 법맥이 이어졌다는 천년 사찰 보원사터가 있다. 보원사터에서 출토된 높이 1.5m의 철불은 통일신라시기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철불이다. 철불은 철이라는 재료의 특성상 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한 편인데, 이 철불은 매끄러운 이음새와 부드러운 마무리를 자랑하고 있어 최고의 주조 기술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보원사에서 출토된 또 다른 철불좌상은 앉은 키가 2.57m에 다다르는 거대한 불상으로, 고려 때인 10, 11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보원사 터를 지켜오던 두 구의 철불들은 19183월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진 후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이 불상들은 모두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서산의 귀중한 문화유산이지만 문화재의 안전한 관리와 보존이 보장되는 박물관이 없다는 이유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임시이관 목록에 조차 포함되지 못했다.

서산 지곡면 도성리는 백제시대 최고의 금상감기법이라고 평가받는 칠지도가 제작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도성리에는 지금도 쇠똥(슬래그)가 수시로 농사 중에 나오고 있다. 인근에 옛 철광산이 있고 바다를 통해 철물을 운송했다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이 있다.

내포권역을 대표하는 철기 문명이 서산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서산 지역의 야철지가 15곳에 이른다는 점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경상남도는 가야 철기문명을 재조명하기 위해 경상남도 일대의 야철지 발굴과 유적지 조성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런 연유로 서산과 당진에 제철소가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현재 정부와 소유권 소송 한 가운데 있는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도 서산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서산 부석사에서 1330년에 조성된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은 왜구의 약탈에 의해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 모셔져 오다, 2012년 한국인 절도단에 의해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됐다. 이후 지금까지 불상의 원 소유주가 부석사인지를 두고 지난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하루 빨리 정당한 판결을 내려 불상이 마음 편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내포권역은 민초들의 이야기가 축적된 곳

왕도중심의 공주·부여와 차별되는 민중 문화의 중심지

부석사 금동보살좌상

내포권역과 서산은 활발했던 해상교류를 기반으로 민초들의 아름답고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대다수 분포하고 있는 미륵불상과 안국사 매향비는 당시 고난을 겪었던 민초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져 있다.

그동안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왕도인 공주와 부여를 중심으로 조명했다면, 이제는 가장 먼저 바닷길을 통해 문물을 받아들여 내륙으로 전파하고 또 우리의 문명을 동아시아로 확산한 내포의 역사문화콘텐츠를 발굴해야 한다.

현재 서산 및 내포권역을 비롯한 충남도 지역은 극심한 저출산과 인구절벽, 고령화로 생산인구는 급속히 감소하고 최첨단 산업 중심의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지역 경제는 점점 더 침체되고 있다.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복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과의 격차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지역 불균형을 완화하고 지역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균형발전 정책이 모색되고 시행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서산에 박물관을 건립하여 문화시설을 활성화하고 문화자원을 개발하여 지역 경제와 문화 발전에 보탬이 되는 길일 것이다. 오늘날의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수집하고 전시하고 보존하는 곳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지역을 대표하는 하나의 관광상품이기도 하다. 서산과 내포권역 고유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담은 박물관은 서산과 내포권역의 브랜드가치를 창출하고 증대시킬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충남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어 다양한 관광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왕도중심의 공주·부여와 차별화되는 민중 문화의 중심지로써,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내포문화권역의 가치를 재발굴하고 문화유산을 전시, 보존, 연구할 수 있는 박물관을 건립해야 한다. 마침 오는 415일 총선을 앞두고 이 지역 후보로 나선 조한기 후보가 이와 같은 필요성을 깊게 공감하여, 지역의 역사적 정통성과 자부심을 높힐 수 있는 박물관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소식이 매우 반갑게 다가온다.

피터 듀런트 교수가 제창했던 컬쳐노믹스(Culturenomics문화를 원천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로 인해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시킴)가 내포지역에서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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