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대 문단】 수필

김기숙 수필가.수석동
김기숙 수필가.수석동

나의 인생 거래처는 팔십이 넘은 어른들로부터 구십 오세까지 입니다. 주로 혼자사시는 분들로 구성 되어 있구유. 그렇지만 여기서는 누구 할머니라고 열거는 하지 않겠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만은 독자께서 계속 거래처로 알면 됩니다. 인생 신용불량자는 제외. 내가 젊어 아이를 낳기 시작 할 때 거래처들은 아이들을 다 낳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 나도 아이 셋을 낳아 어느 사이 커서 시집장가 다 갔습니다. 그러니까 거래처와 저도 똑같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거지요. 거래처들은 남자 어른들은 몇 명 안 되구요, 팔십에서부터 구십 세까지 여자들만 많습니다. 저도 이제는 칠십이 넘었습니다. 거래처들이 무릎이 아프면 저도 아프고, 허리가 아프면 저도 아픕니다. 거래처들이 머리가 하얗게 세었는데 저두 하얗게 세었어요. 좀 젊어 보이려고 몰래 검은 물 좀 들여 보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좀 젊으니 거래처 어른들을 찾아보아야 도리가 될 것 같아 서지유. 여름엔 일하느라고 이웃이라도 드문드문 보고 살었는디 겨울이 되어 좀 한가 허니게 한 집 씩 가보려고 합니다. 거래처들이 회관에 안 가시는 날만 골라서 가려고 합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어느 회관이고 다들 비슷하게 지내는 것 같습니다. 거래처들은 삼삼오오 짝을 맞추어 꽃딱지를 치든가 아니면 윷을 던지다가, 맘이 안 맞으면 방석을 둘러업고 가벼운 입씨름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말을 걸지도 않고 등 돌리고 있다지유. 어째서 나이 들면 어린 아이들이 될까유?

하루는 칠십 구세 되시는 거래처에 문안 차 갔습니다. 거래처는 나에게 나 오늘 저 너머 동갑네와 싸웠어하고 나 헌티 미주알 고주알 이르는 것입니다.

이유가 뭔디요?” 허니 게, “내가 설거지를 한참 허구 있는 디 물 끓이는 커피포트인가 뭐라나 들입다 들이미는 거여.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 설거지 허여.” 그랬더니 왜 나만 가지고 시비냐고, 벌써 나한테 세 번째 듣기 싫은 말을 해서 오늘은 그냥 지나가지 않겄다고 하면서 막 소리 치고 난리를 치는 거여하신다. 이 말을 듣고 난 속으로 일감 하나 제대로 얻었다고 쾌거를 불렀지요. 내가 아니면 서로 사과를 안 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앞으로 말 안 할 거유허니 게 다시는 동갑 내와 말 안 허지 안 허구 말구.” 각오가 단단하다.

이제 난 양쪽 두 거래처 모르게 변론을 할 셈이다.

말하지 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 알지유, 나 못 들 척 헐 테니 께, 내일 회관 가먼 말 시작 허유.”

이렇게 다독여 놓고 다음 거래처로 가니 게 그분 역시 화가 치밀어 후들후들 떨면서 실감나게 이른다. 이쪽 거래처와 똑 같은 말로 다독여 주면서 이해가 가게끔 잘 이야기 했쥬. 이분 저분 할 것 없이 거래처들은 내가 웃은 소리 잘 하고 따라 주니까 내 말을 잘 들어 줄 것 같아서지유.

다음 날 거래처 양쪽을 다니면서 눈치를 보았습니다. 쇠뿔도 본 김에 빼라고 사과도 될 수 있으면 빨리 해야지, 하루 이틀 지나면 더 힘들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지유.

양쪽 몰래 다니면서 보이지 않는 힘을 썼더니 진통제처럼 약발이 받아서 거래처들은 삼일 만에 사과를 했습니다. 변론 한 건 제대로 했습니다.

다른 일도 있지유. 며칠 있다 한 부부가 사시는 거래처에 가보았습니다. 두 분은 아직도 건강하게 일도 잘하시고 웃은 소리와 경우 하나는 똑 소리 나지유. 등이 굽어서 동네 마실을 잘 안 가시는 분들입니다. 내가 가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후미진 집을 찾아왔다고 좋아 허지유. 물렁거리는 것, 죽이나 묵을 쑤면 먼저 생각나는 거래처입니다.

두 분이 똑같이 허리가 굽어 밥하기가 어려워 아들이 왔을 때 아내가 남편을 보면서 농담으로 느이 아버지 죽었으면 좋겠다허니 게, 아들의 대답이 ~~머니~이 어 허 어 허하더랍니다. 그 말을 회관에 계신 분들에게 하고 한바탕 웃었노라고 말 합니다. 나도 자다가 비실비실 웃었지유.

나두 남편과 입 다툼을 했슈,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못자리에 물을 주면 못자리가 빨리 말라 버리지유. 남편은 무조건 물 조금 주어서 못 자리가 말랐다고 억지 말을 합니다. 일 몰리고 근력이 부치면 짜증을 내는 거지유. 다 똑같이 일 하고 기분이 나쁩니다. 아들이 집에 들르러 왔어 서운 한 맘에 미주알고주알 일러 바쳤지유. 아들 녀석은 어머니, 아버지랑 사이좋게 지내유하면서 갑니다.

가는 등 뒤에다 늙어서 이젠 사이좋게 지내긴 다 틀렸다고 쏘아 부쳤지만, 거래처 아들이나 우리 아들이나 공평한 말로 중립을 잘 지키는데 뭐 좋은 말도 아닌 것을 일러바친 것에 미안해 에미가 옹졸한 것 같아 갑자기 작아집니다.

동네에 구십이 넘은 거래처 한 분은 자손들이 대부분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종일 혼자 집에 계시면서 창문으로 내다보고 놀다가라고 손짓을 합니다. “내가 집 지키는 개냐고~사람 귀해서 죽겠다구 노래하시더니 그만 넘어져서 요양병원에 가신지 몇 년을 병마와 투병하시다 집에 한 번 못 오시고 올해 아주 먼 나라로 가셨지유.

살던 집에 한 번 만이라도 가자던 거래처 생전 모습이 떠올라 맘이 안 좋습니다.

또 다른 거래처는 형편이 어려워 불도 제대로 못 때고 전기장판으로 누울 자리만 만들고 삽니다. 말벗이라도 하면 여간 좋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변해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이제는 나 홀로란 이름 아래 거래처에 한 번씩 들르면 그나마 집집마다 방에 군입거리는 떨어지지 않아유. 자손들이 보낸 거지유.

하지만 모두 다 똑같은 말씀, 가난 중에 사람 가난이 제일 힘든 것이라고 하십니다. 거래처들도 나도 영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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