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미향 취재부장
최미향 취재부장

이제 팔순에 접어든 우리 엄마는 명랑·쾌활하신 전형적인 경상도 할매입니다. 고스톱 솜씨는 또 어떻구요. 아마 우리 동네에서도 단연 으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쩌다 우리 자식들이 내려가 고스톱을 쳐도 우리 돈 다 따먹으며 피박에 쌍피다. 야야 내 아까 흔드는 거 봤제?”라며 타짜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하시거든요.

내 물올랐다. 니는 치지 말고 옆에서 데라 뜯어라라며 인심 팍팍 쓰기도 했고, 100원짜리 동전을 찰랑찰랑 흔들어 보이며 놀리기까지 했던 엄마였습니다.

 

그랬던 엄마가 2주 전에는 팔순이 훌쩍 넘은 우리 아부지를 노치원에 보내시고 할매들끼리 폐쇄된 경로당에서 신발을 숨겨두고 몰래 들어가 놀았답니다. 물론 마스크를 끼고 1m씩 뚝뚝 떨어져 앉아서 말이에요.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우리 15녀는 그러면 안 된다고 난리난리 폈는데 그때 울 엄마 왈 야야~ 깝깝해서 죽으나 코로나 걸려 죽으나 똑같다마. 말하지 마라라고 역정을 제대로 내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꼬리 내리며 하긴 글키도 하다며 입을 다물었지요.

그렇게 당당하던 엄마가 한풀 꺾였습니다.

며칠 전 경주 친정에 전화하니 인자 한 발짝도 못 나가게 생겼다. 온 동네가 다 조용하다. 확진자가 우리 동네에 왔다 갔단다라며 동네가 발칵 뒤집혔음을 알려주었죠. 그러면서 엄마는 별일이야 있겠나. 괘안타. 근데 이래 조심해도 걸리면 우야겠노. 인명은 재천이라 안 캤나. 너거나 몸조심해라라며 자조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제를 돌리려고 엄마 고스톱 치고 싶어 우야노라고 웃으며 묻자 야가 지금 고스톱이 문제가. 나라가 난린데.”라며 되려 저를 혼내셨습니다. 저는 깨갱 하며 맞다 맞다. 집에 꼭 붙어있어라라고 말했습니다. 전화 말미에는 몇 번이고 조심 또 조심하라라고 신신당부까지 하고요.

너거 아부지도 문 닫아가 인자 (노치원)안간다. 두 영감할매이 방안에 꼼짝 않고 있다. 지금 죽으면 자식 얼굴도 몬 보고 죽으니까 우리는 꼼짝 안할란다. 너거도 어디 함부로 다니지 마라. 우짜든동 조심하고... ~들 잘 챙기고 니도 공부할려면 힘드니까 잘 먹고 댕겨라

그렇게 씩씩하던 엄마가 어제는 이렇게 풀이 죽은 음성으로 제게 말을 하더군요.

명절 때는 우리 아부진 폐렴으로 엄만 독감으로 당신들 편찮으시다고, 괜히 내려오면 자식들 챙겨주다 더 (독감)도진다고 오는 걸 막았는데……. “내려오지 말고 삼월쯤에나 너거 별일 없으면 온나라고 해서, 눈 뜨고도 친정을 못 갔는데 이제는 코로나19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생각하니 작년에 보고 아직 못 본 우리 아부지 엄마. 삼팔선이 가로막힌 것도 아닌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폐 기능이 40%도 안 되어 수시로 경주동국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을 제집 드나들며 다니시는 우리 아부지. 당신이 주무시는 안방에는 산소호흡기 두 대가 아부지의 전용물입니다.

저는 오늘도 못 하는 기도를 다 해 봅니다. 부디 코로나19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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