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코로나19’가 앗아간 2020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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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코로나19’가 앗아간 2020년 봄
  • 서산시대
  • 승인 2020.03.0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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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웅 편집국장
박두웅 편집국장

시인 엘리엇이 유명한 자신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할 달이라고 말했지만 우리에겐 2020년 봄이 더 잔인하다.

봄은 역설의 계절이다. 겨우내 잠든 생명의 싹을 띄우는 계절이기도, 죽음도 피어나는 시기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에서의 자살은 3월부터 급증하여 5, 6월에 이르는 시기 동안 최고조를 이룬다.

2014년 서울여대 경제학과 노용환 교수의 논문 <자살의 계절성과 경기반응>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12년까지의 자살 추세를 분석한 결과 봄 최고조 (Spring Peak), 겨울 최저화(Winter Through)”라는 현상이 지속되어 왔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김호 교수의 <동아시아의 자살과 기온>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보고되었다.

그리고 최근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2013년에서 2017년까지의 통계청 자료, 2018년의 경찰청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에서도 3월에 급증하여, 5월에 최고조를 이루는 양상을 보였다.

봄은 환절기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불안정과 심리적인 박탈감이 가장 큰 계절이다. 만발하는 꽃처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수많은 이야기, 보도, 방송을 들으며 자신의 처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비관적 인식에 빠지기 쉽다. 개학, 취업, 시작 등의 봄맞이는 상황이 부정적이고 미래가 비관적인 사람들에게 높은 스트레스를 안긴다.

2020년 봄 코로나19가 한반도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바다를 건너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32일 현재 전국적으로 4200여명이 넘는 확진자와 22명의 누적 사망자가 발생했다.

모든 방송에서는 연일 코로나19’를 특보로 내보낸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엔 마스크가, 대화에는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다. 모두 세기말이라도 온 것처럼 코로나19’가 주는 불안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심지어 일부의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비난할 대상을 찾아 헤매는 정신병적 광증을 보이기도 한다.

방역당국에서 대인간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보니 독거어르신 안전확인도 간접 전화상담으로 바뀌고, 반찬봉사, 사랑의 밥차, 그동안 활발했던 각종 봉사도 모두 연기되거나 중단되었다.

코로나19는 노숙인, 이주노동자, 독거노인, 장애인, 시설 거주자와 수용인 등 아예 사회적 네트워크가 없는 이들에게 한 가닥 희망조차 빼앗았다.

철저하게 주류에 기초해 축적된 사회시스템은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현실에 무감각하다. 수십 년 축적한 시민의 역량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당황해서 그럴 것이다. 처음 겪는 지역감염으로의 확산에 허둥대다보니 그럴 것이다.

코로나19는 분명 인간에게 해가 되는 바이러스이지만, 이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던진 경고는 다름 아닌 삶의 방식과 가치의 재정립이다. 이제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펴보아야 한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코로나19는 분명 종식될 것이고, 우리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던지 변화를 강제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주변 어려운 이들에 관심을 두고 그런 곳과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 행동수칙과 같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일, 마스크나 생활용품과 같은 자원을 나누는 실천, 지역 공동의 노력이나 외부 지원을 촉구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지역별로 풀뿌리 수준의 시민대책위를 조직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2020년 봄.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에 이제 우리가 답을 돌려줘야 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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