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방과학연구소 최문석 주임행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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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방과학연구소 최문석 주임행정원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02.25 2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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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아들 업고 함께 오른 정상, 걷는 기쁨 느끼게 해 주고파!

“우리의 등반기가 세상 속에서 여러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편지가 되기를….”
국방과학연구소 최문석 주임행정원
국방과학연구소 최문석 주임행정원

 

#글을 시작하며

지리산에 사는 이완규 시인은 산방한담에서 입산은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상생의 길이다. 누구나 입산의 마음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겨울 산이 던지는 메시지를 성찰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몸속에 거대한 산이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라고 적어놨다.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지원본부 행정실에 근무하는 최문석 주임행정원은 입산의 경지로 우리 가족 모두가 가슴 가득 큰 산 하나씩 담아오면 왠지 우리 우창이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산행 동기를 말했다.

서산시대는 한 몸이 되어 걷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는, 한라산과 지리산을 등반하게 된 우창이네 가족을 소개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다

최문석 주임행정원이 부인을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그의 나이 겨우 25살에 22살 그녀를 어느 가을날 만났다. 그로부터 8개월 후인 이듬해 5, 그의 말을 빌리자면 첫눈에도 환한 햇살처럼 눈부셨다는 그녀와 결혼을 했다. 꿈같은 생활은 그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안겨주었다. “우리 집 비밀번호가 바로 우리의 첫 만남 날짜였다. ‘평생 변치 않고 사랑하자라는 귀한 뜻이다.”

기자는 그에게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곤 멋쩍어 웃었는데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말한 것이었다. 그는 너무도 당연한 듯이 집사람과 우리 세 아들이다. 그중에서도 큰아들 준혁이와 쌍둥이 둘째 우진이, 뇌병변 2급인 막내 우창이가 가장 안쓰럽다.

우리 집 둘째와 셋째는 일란성쌍둥이로 33주 만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다행히도 인큐베이터에서 잘 버텨줘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랐다. 벌써 고등학생들이다라며 시간이 유수와 같다더니 정말 어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

기자는 놀라 물컵을 들다 말고 그를 바라보았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그는 예상한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씽긋 웃더니

뇌병변 장애인 쌍둥이들을 돌보느라 집사람만 힘든 줄 알았다. 그런데 연년생 쌍둥이는 큰아들인 형아를 부러워했고, 큰아들은 아빠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듯한 동생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그걸 뒤늦게 알았다. 큰아이 준혁이가 소외감을 느꼈다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가족사진
가족사진

# 서로가 힘들었던 가족들, 어려움을 털어 낼 수 있는 여행 계획

아이들의 멍든 가슴을 보듬기 위해 그들 부부는 작은 이벤트를 선물하기로 했다. 어느날 케이크를 앞에 놓고 그간 섭섭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며 말하는 그는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소외감을 느꼈다는 큰아들 준혁이의 말에 충격을 받은 아내는 우리 큰아들 준혁이한테는 누구보다 미안해. 준혁이도 아기였을 텐데 아픈 동생들 때문에 따뜻한 손길도 많이 못 받고.

엄마는 아빠 출근하고 혼자서 너희들 셋 보느라고 눈물 참아가며 키웠단다. 우창이 한 살 때는 갑자기 열나고 아파서 자주 병원 응급실로 택시를 타고 다녔어. 둘째 우진이 챙기다 보면 셋째 우창이가 울고, 쌍둥이 챙기다 보면 준혁이 울고.

어느날은 너무 속상해서 너희 재워 놓고 냉장고 앞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맥주를 마셨네. 그때 늦게까지 야근하다 퇴근한 아빠가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그제야 야근을 줄이고 일찍 퇴근했지. 그때부터 아빠는 둘째 우진이를 전담해 돌봐줬어. 아마 그때 아빠가 안 도와줬으면 엄만 우울증 걸렸을지도 몰라.

앞으로는 준혁아, 엄마가 아주 많이 신경 쓰고 소외감 덜 느끼게 할게. 너무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하지만 또 부탁해야 되겠다 어떡하니. 막내 우창이 걸을 때까지만이라도 조금만 더 참고 이해해줘. 너가 스트레스 받으면 엄마 마음이 너무 아파라며 처음으로 속내를 내보였다.

그때 그는 가족들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다들 미안하고 고마워. 이왕 이렇게 모여 이야기한 김에 마음속 모든 어려움을 털어 낼수 있는 여행을 가면 어떨까?”

 

# “한라산 꼭 가보고 싶어. 한라산 다녀오면 꼭 걸을게

첫째 준혁이의 확실한 지원사격을 받으며 여행을 가기로 결정. 둘째 우진이는 외국으로 가자는 의견을 냈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맞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자 막내 우창이가 한라산으로 가자는 의견을 내며 나 한라산 가보고 싶어. 한라산 다녀오면 꼭 걸을게라는 말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의 아내는 둘째 우진이가 거길 어떻게 가니? 너는 걷지도 않으면서라는 걱정을 뒤로하고 바로 엄마랑 아빠랑 준혁이 형아가 업으면 되지. 한라산 가자고 말했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 바로 한라산 등반기였다. 사실 그의 부부는 신혼 초에 1년마다 산에 가자는 작은 약속을 했었던 터였다.

하지만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그게 뜻대로 잘 되지가 않았다. 특히 아픈 두 아들을 돌보느라 산의 자도 생각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큰 결심을 한 것이 바로 세 아이를 데리고 제주도 한라산 등반하러 가자는 것인데 가만 생각하니 딱 15년 만에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그것도 한라산이 그렇게 높은지 모르고 말이다.”

한라산 산행 중
한라산 산행 중

 

# 한라산 등반 두 시간여 동안 우창이를 교대로 업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의 가족은 그동안 힘들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과 미움을 한라산 정상에 버리고 오기로 했다. 한라산 등반 계획은 이렇게 부랴부랴 수립되었고 마침내 대망의 도전 길에 오르게 됐다.

한라산 오르기 전날, 그의 가족은 숙소에서 긴 기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5, 꿈을 향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라산 정상 등반 여정.

부푼 꿈을 꾸며 우창이의 양손을 잡고 걸었다. 하지만 걸은 지 5분여 만에 아내가 먼저 우창이를 등에 업기 시작했다. 한라산은 입산 통제 시간이 정해져 있어 늦어지면 정상을 뒤로하고 하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올라가야지~. 우창이 한라산 올라가면 앞으론 제대로 걷는다고 했으니까. 올라가면 약속 지키는 거지?” 아내는 우창이 들으란 듯이 일부러 신나게 말을 했다. 그들은 그렇게 한발 한발 정상을 향해 걸었다.

원만한 길에서는 아내가 우창이를 업었고, 험한 길이 나오면 그가 우창이를 업고 그렇게 적정한 체력을 조정해 가며 산행을 이어갔다. 한라산 등반 두 시간여 동안 우창이를 교대로 업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포기란 단어는 배추 셀 때나 붙이는 단어다. 우리 가족에겐 불가능이란 없다.

해발 900m 지점에서 최문석 주임행정원의 가족들은 깊은 탄식과 함께 첫 번째 포기상황이 발생했다. 먼저 우창이를 업은 그가 숨이 목까지 차올라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여기는 우리가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닌 거 같아. 지금이라도 그냥 내려가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입산 통제 시간 전까지 이렇게 해서 언제 올라가냐며 그가 돌아갈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단호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안 돼! 우창이 꼭 걷게 할 거야. 우창아, 엄마 등에 더 바짝 매달려라며 남편 등에 있는 우창일 자신의 등으로 옮겨 업으며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행은 다시 시작되었다.

해발 1100m 지점, 세 시간이 지났다. 두 번째 포기상황이 발생했다. 그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의 등에 업혀있는 우창이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이 엄습했다.

우창이 걷게 하는 것도 좋지만 이번엔 정말 안 되겠어. 이제 허리와 무릎까지 저려와. 더군다나 오후 1시 전에는 진달래대피소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맞아.”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둘째 우진이도 다리가 아프다며 내려가자고, 막내 우창이를 붙잡고 애원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막내 우창이가 단호했다. “싫어! 올라갈 거야! 아빠, 힘내. 내가 조금 걸어가 볼까?”

한라산 정상 등반 8시간여 만에 해발 1700m 지점에서 또다시 네 번째 포기상황이 발생했다. 하산하라는 방송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반기를 들었다.

안돼! 여기까지 어찌 올라왔는데 내려가라는 거야!” 그는 관리소로 전화를 걸어 걷지 못하는 우리 아들을 업고 여기까지 올라왔다. 이제 정상까지 100m가량 남겨놓았는데 사진 한 컷만이라도 찍고 내려갈 수 있도록 해달라. 금방 올라가겠다라며 애원을 했다.

감사하게도 관리소에서는 알았다는 승낙을 보내왔고, 그의 가족들은 젖먹던 힘까지 모두 짜내어 힘차게 앞으로 나갔다. 지나는 등산객들은 저마다 여기까지 어떻게.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다. 힘내라. 정말 대단하다라며 독려해주기도 했다.

개그맨 이영자 씨와 우창이
개그맨 이영자 씨와 우창이

 

# 한라산 등반기로 인해 우창이가 어느 날 세상을 향해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여러 사람들의 격려에 아이들도 덩달아 아빠, 힘내. 아빠가 우리 가족은 뭐든 할 수 있다라고 했잖아라며 힘든 아빠를 응원해 주었다. 그는 속울음을 삼키며 그래, 올라가자! 우리 우창이 꼭 걸을 수 있도록. 우리는 할 수 있다를 수백 번도 수천 번도 더 부르짖으며 정상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산행 시작 9시간 10분 만인 오후 312, 한라산 백록담 해발 1950m 지점에 도착한 최문석 주임행정원 가족들. 그렇게 그들은 한라산 등반에 성공했다. 희열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말했다 그날의 산행은 우리 가족들에게 몸속에 거대한 산이 들어와 있음을 느끼는, 살아있는 기적을 맛보게 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거뜬한 자신감과 희망을 선물로 받은 셈이다. 이것은 바로 우창이가 어느날 세상을 향해 걸을 수 있는 토대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날 그들 가족은 온몸으로 부딪치고 깨지며 결국 눈부신 역사를 이루어냈다. 그것은 가족의 단합된 마음과 서로를 향한 믿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글을 마치며

그리고 그들은 한라산을 다녀온 지 삼 개월 만에 다시 지리산 천왕봉에 도전했다. 지리산 첩첩산중을 뇌병변 장애 우창이와 한 몸이 되어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며 고통과 동시에 인생 최대의 기쁨과 행복을 느꼈다는 최문석 주임행정원.

그렇게 그들은 또다시 눈앞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과 만났다. 온 가족과 힘을 합쳐 만난 그날의 감동은 한라산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가족이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보기 힘들었을 광경.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일출 앞에서 우창이는 사랑한다는 한마디와 함께 눈물을 펑펑 쏟았고, 아빠인 그는 그런 우창이를 안으며 아빠 엄마가 영원히 지켜준다라는 피눈물 나는 약속을 했다.

그날 그들이 보여준 뜨거운 사랑은 막내 우창이가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이제 더 이상의 불가능이란 없다. 무모할 것만 같은 우리의 도전이 장애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

지역방범순찰활동 등 235시간의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세상을 선물하고 싶어 235시간 자원봉사활동을 한 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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