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태후 김규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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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태후 김규민 회장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02.04 2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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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있는 파이터, 서태후 회장에 등극하다

서태후의 슬로건은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

내가 가진 것은 단단한 무기의 책임감...... 회원들을 위해서라면 눈보라도 끄떡 없어
서태후 김규민 회장
서태후 김규민 회장

 

#글을 시작하며

사람에게 이름이란 무엇일까. 개인의 호칭을 넘어 개성을 나타내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큰 의미이기도 한 이름 석 자. 여기 그 이름을 몇 개씩이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당진 현대제철 항운노조에 근무하는 김규민 씨다.

한때는 삼겹살집과 족발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으로, 또 특전사 군인으로, 2019년에는 탁월한 권투실력으로 챔피언에 등극한 바 있는 파이터로 이름을 올린 그는 연초부터 서·태안을 가장 핫하게 만든 인물 1호로 또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태안을 사랑하는 후예, 이름하여 일명 서태후회장으로 추대된 그는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우리 서태후의 슬로건이라며 생각이 비슷하고 시각이 비슷해서 정말 잘 어울리는 구성원들인데 우리는 자주 모범이 되자는 말을 한다고 밝혔다.

서산시대는 올 들어 가장 추운 날, 사무실 한켠에서 의리의 파이터가 서태후의 회장이 되기까지 풀 스토리를 들어봤다.

현대제철 항운노조에 근무하는 김규민 회장
현대제철 항운노조에 근무하는 김규민 회장

 

#‘정의파며 평화주의자라고 말하는 그는 트러블메이커가 가장 싫다고 했다.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김규민 씨, 조상대대로 일궈온 땅을 이어받은 그의 부친은 한 치의 외도없이 땅만 파며 세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어린 마음에 그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잣집이 우리 집인 줄 알았다(웃음)”고 말하며 누구보다 배움에 굶주린 부모님 덕분에 남부럽지 않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형제간의 우애를 제일로 여기는 두 분 때문에 우애도 남달랐다고 회상했다.

부모님의 든든한 후원으로 저는 지금까지 아주 당당하게 산 듯하다는 그에게 기자는 가만히 눈을 맞추며 자신을 표현한다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정의파며 평화주의자라고 말했다. 이어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트러블메이커.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인데 굳이 트러블을 일으키면서까지 살고 싶을까라며 되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챙겨 줄 정도의 돈만 있어도 행복하다.

이런 심성은 그의 부친(74세 김기인 어르신)을 닮은 듯 했다. “아버지는 평생 술, 담배는 커녕 남들이 보면 답답할 정도로 순수함을 가진 모범가장이십니다. 그러다보니 제 친구들은 우리 아버지가 술 취하면 용돈 넉넉하게 준다는 말이 제겐 영 이상했어요. 저는 죽었다 깨나도 그런 요행을 바랄수가 없었거든요(웃음).”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돈은 많아도 문제! 적어도 문제!’라는 것이 그의 부친 지론이다. “돈이 많아도 삼시세끼, 없어도 삼시세끼를 먹는데 굳이 아등바등 주변사람과 부딪치면서까지 힘들게 살진 마라는 말은 김규민 회장이 늘 가슴에 새겨놓고 한 번씩 꺼내보는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저 또한 한때는 돈을 벌려고 참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만, 지금 가만히 뒤돌아보면 돈이란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챙겨 줄 정도만 있어도 행복하단 생각이듭니다라며 약간은 부끄러운 듯 눈길을 아래로 내려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밖에는 찬 기운이 매서웠고, 그와 대화를 나누는 사무실 안은 그 어떤 날 보다도 따뜻했다.

 

#고등학교 시절, 기성정치인들이 하듯 학생회장 투표를 위해 선관위에서 투표함을 빌려오기까지 했다.

기자가 본 김규민 회장은 참 당찬 학창시절을 보냈던 사람 중의 1인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운산공업고등학교 화공학과 제1회 졸업생인 그는 3년 동안 반장과 학생회장을 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투표를 하기위해 기성정치인들이 하는 것처럼 참모들과 함께 각 반을 돌아다니며 선거운동을 했던 그는, 투명성을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함까지 빌려오는 기염을 토했다. 선거공약을 하기위해서는 밤잠을 설치며 머리를 짜내기도 했다는 그는 지금 생각해 봐도 기성정치인 흉내를 냈던 것 같은데 제가 봐도 신기하다며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기자도 아주 맹랑한 학생이었다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학창시절이 고등학교 다닐 때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한 김규민 회장은 운산초, 대철중, 운산공고를 거쳤지만 가장 열정적인 태도로 임했던 시간이 바로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한마디로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죠라고 당당히 말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단란한 한 때
사랑하는 가족들과 단란한 한 때

 

#고진감래 끝에 사랑하는 그녀를 품에 안고, 35세 늦깎이 나이에 현대제철 항운노조에 입사하다

지금까지 그는 두 눈 부릅뜨고 살았다고 했다. 한때 최정예 특전사 출신이었던 그가 제대 후 공무원 집안답게 특수직 경찰특공대에 입사하려고 피나는 준비를 했지만 시험당일 계단에서 구르는 사고로 인해 아깝게 포기해야만 했던 슬픈 사연이 있었다. 그때 그는 ! 인생이란 것은 바로 머피의 법칙이구나!’를 느끼며 좌절했다고 그때의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옛말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한 것처럼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던 걸 과감하게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식당을 운영을 했습니다.”

그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당시 영양사 선생님으로 온 지금의 아내를 만났던 것이다. 처음 본 순간 첫눈에 반해 참 많이 따라다니기도 했다는 김규민 회장.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녀를 제 아내로 데려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웃음).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은 바로 저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꿈인 듯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우리 세 아이들을 보고서야 , 현실이구나!’를 느낍니다. 세상 가장 잘 한 일이 사랑하는 그녀를 제 아내로 모셔온 일입니다(웃음)”

그는 현재 서로 존댓말을 하며 생활하는 아내와 세 아이들이 가장 고맙다고 말했다. 아내 얘기를 하는 내내 행복한 모습을 보이며 주위를 웃음바다로 물들였던 김규민 회장. 기자는 남편을 물물이 다독여 주는 그의 그녀가 몹시도 궁금해지는 하루였다.

이후, 식당을 접고 지입차를 가지고 들어간 것이 현대글로비스였는데 그곳에 입사한 이유를 묻자 우리 아이들에게 돈 걱정없이 살게 해 주고 싶어서였다. 변변한 이력이 없었지만 그를 받아준 이유는 솔직함이었다. “솔직함이 무기가 될 수도 있더라구요그것은 그가 가장 내세울 수 있는 스펙이기도 했다. 그러다 용케 자리가 생겨 옮긴 것이 지금의 현대제철 항운노조였다.

 

서태후 회원들과 단합대회를 하며
서태후 회원들과 단합대회를 하며

 

#서태후는 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단체, 적극 노력하여 목표한 바를 이루겠다.

학창시절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그래도 믿고 따라준 것은 어쩌면 부모님이 물려주신 책임감 때문이라는 그는 서태후 회원들이 제게서 책임감을 봤나봅니다. 그래서 저를 회장으로 추대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며 두 손을 가지런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기자가 그렇다면 (서태후)만들게 된 계기라도 있냐?”고 묻자 그는 갑자기 밝은 목소리로 그냥 좋은 사람들과 막걸리 한잔 마시다가 좋은 모임 하나 만들자얘기가 나왔고 그것이 일파만파 커지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서태후를 두고 어떤 프레임을 씌워버리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저는 극구 아니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우리 서태후는 회원들이 약 100여분 정도 되는데 이분들과 함께 후대에까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아름다운 모임으로 정착되도록 열과 성을 다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다리에 힘이 쭉 빠집니다.”

우리단체가 해야 할 일은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봉사는 기본이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해 줌으로서 그들에게 희망을 전달해 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젊은이로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할 생각입니다. 이런 것들이 또한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니까요.”

 

‘제48회 KBI 전국생활복싱대회’ 일반부 90㎏급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규민 회장
‘제48회 KBI 전국생활복싱대회’ 일반부 90㎏급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규민 회장

 

#글을 마치며

지난해 복싱입문 3개월도 안된 그는 전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복싱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전 퇴행성관절질환과 과체중으로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받았다던 그가 어떻게 그 어려운 대회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을까.

김규민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자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며 목표 도전을 위해 애썼다낮에는 일하고 틈틈이 짬을 내 운동을 계속 이어나갔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의 투혼을 그려보며 늦게나마 깊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이번 제1기 서태후 회장에 취임하는 동시에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뜻있는 단체의 선장을 맡은 김규민 회장. 그로인해 살신하는 단체가 되기를 바라며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한자락 내려놓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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