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노래는 에너지, 힘들 때나 슬플 때도 노래만 있으면 힘을 얻을 수 있어요”

인터뷰새벽을 여는 노래배달부 가수 나윤한

새벽을 여는 노래배달부 가수 나윤한

 

#글을 열며

 

음악은 세상이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고 했던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힘든 가수의 길로 들어선 서산의 가수 나윤한 씨에게 기자가 노래가 뭐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없이 에너지라고 말했다. 힘들 때나 슬플 때도 노래만 있으면 모든 걸 잊고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둠이 내린 카페 한편에서 팬과 가깝게 이야기하며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새벽을 여는 노래배달부 나윤한씨를 만났다.

 


 

#새롭게 신축하면서 쇠퇴의 길로 들어선 아담농원

아담농원 식당에서 부모님과 함께

3남 중 장남인 가수 나윤한 씨는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의 지극한 정성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다. 그는 지금의 아담농원 터에서 과수농사와 묘목을 키우며 동시에 동부시장으로 묘목을 판매하러 다니는 부모님 밑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기자가 어떻게 식당을 하게 됐느냐?”고 묻자 그는 농원으로 과일을 사러 오신 손님들이 원두막과 한옥을 보며 식당을 해도 좋겠다고 하시는 통에 부모님은 과감히 원두막에서부터 (식당)시작했고, 식당이 생각보다 잘 되다보니 과수원을 접고 식당으로 업종을 바꿨다고 했다. 더구나 식당일이 바빠 더 이상 묘목을 팔 수 없어 그때부터 나무들은 자라 훗날 울창한 숲이 멋지게 조성된 아담농원이 되었다.

학창시절에는 아담농원이 전성기였다. 정겨운 한옥과 울창한 정원이 마치 미로처럼 이어져 관광객들을 유혹했고, 집으로 들어오는 농로길은 늘 자동차로 인해 비좁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일하는 입장에서는 고()주택이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에 더우니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외부는 보존하고 내부만 리모델링했으면 좋았을 텐데 한옥을 모두 허물고 현대식 건물로 지었습니다. 그것이 화근이었어요. 정겨운 분위기가 모두 사라져 버리자 그때부터 사람들의 발걸음이 서서히 끊기게 되더군요. 설상가상으로 미로처럼 울창했던 아담농원 숲도 20109, 서해안을 강타한 태풍 곤파스로 60%가량 소실되었구요.”

그는 아쉬운 듯 고개를 돌리며 어둠이 내리는 창밖을 응시했다.

기자가 알던 그곳도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정원 그 속에 어우러진 동물들까지, 아마도 아담과 이브가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면 그곳에 살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던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노래의 길로 들어서다

급식배달을 하기 위해 냉동탑차에 물건을 싣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부끄러움도 많고 소심했던 그였지만 어느날 우연히 발견한 초등학교 3학년 생활기록부는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말 놀랐습니다. ‘이 아이는 가창력이 돋보임. 이 계통으로 신경 썼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거든요. 사실 저는 음악시간에 뭘 어떻게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는데 여하튼 선생님이 제 끼를 보셨나 봐요. 어쩌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가슴 한 켠에 숨겨놓은 글귀가 바로 이 문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수 나윤한 씨는 군대를 제대하고 대산에 위치한 현대석유화학()에 입사를 했다. 하지만 20051월부터 ()씨텍, ()LG대산유화, ()롯데대산유화로 각각 분할되면서 그는 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사실 내면에서는 믿는 구석이 있기도 했다. 부모님이 식당도 하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도 하고 싶고... 겸사겸사 그는 많은 고민 끝에 사표를 던졌다.

 

#2015년 정식으로 음반을 출시하다

처음 무대로 올라가게 만들어준 김대환 선배님과 함께

 

그리고 나서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전국에서 개최되는 가요제에 출전하기 위해 자주 식당 문을 닫았다. 차라리 애초부터 떨어지면 포기하기도 쉬웠을 텐데 꼭 본선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지곤 했던 가요제. 때문에 그는 포기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날도 시흥가요제에 출전하기 위해 식당 문을 닫고 나가는데 갑자기 제 자신이 미쳤구나!’ 싶더라고요. 너무 심하다 싶으니 스스로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대요. ‘그래 오늘 가요제에서 입상 못하면 가수로 가는 길은 바로 쫑 내는 거다. 당장 때려치우고 일상생활로 깨끗이 돌아가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장려상을 받아버렸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의 옆길도 없이 음악의 길로 내달렸고, 결국 2015년도에도 정식으로 음반을 내고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부모님도 저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런데 지금은 감사하게도 응원을 많이 해줍니다. 장남역할도 제대로 못하는데... 그저 감사할 뿐이지요.”

 

#14역을 소화하며 꿈을 키워나가는 나윤한 씨

 

그는 한 가정의 남편이면서 두 형제를 키우고 있는 가장이다. 부모님을 도와 운영하는 아담농원 식당도 옛날 같지 않아 손님의 발길은 뜸한지 오래고, 무엇보다 행사는 수입이 불안정해서 벌써 6년째 새벽 5시에 일어나 학교 급식 식자재배달을 하고 있다.

전날 대리운전으로 피곤한 몸을 뉘인지 얼마되지 않은 새벽녘,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나 잠들기 전에 미리 갈무리 해놓은 옷을 입고 모두가 곤히 잠든 밤거리를 흐릿한 달빛을 벗삼아 걷노라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단다. 그러다 꿈을 위해 새벽부터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다시금 맘을 추스르며 작업장으로 들어선다.

몸이 미쳐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냉동창고에 쌓여있는 물량을 차에 싣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탑차의 높이가 워낙 낮아서 무거운 박스를 들고 구부정하게 숙여서 적재하다보니 허리가 많이 아파요. 그래도 학교로 이동하는 동안 저만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노래를 원 없이 지르다보면 속이 다 뻥 뚫리는 듯 시원합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일하시는 분들이 또 힘내라고 응원해주시고, 음료수나 간식도 챙겨주시지요. 그럴 때마다 진짜 힘이 납니다.”

그가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 하는 사이 카페 음악은 바뀌어져 있었고 뒷자리 비어있는 의자에는 시끌벅적한 고객들이 자리를 틀고 앉아 그를 아는 듯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기도 했다.

그는 개의치 않고 찬찬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침 10시에 배달일이 끝나면 그때부터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때로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한달음에 달려가 노래를 합니다. 그러다 다시 저녁이 되면 늦은 밤까지 대리운전을 하구요. 때론 약간 늦어질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영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12시 퇴근으로 못 박아 놨습니다. 그래봐야 4시간 약간 넘게 눈을 붙이는 격이거든요.

때로는 언제 이 일에서 해방되려나 한숨이 나지만 그래도 일이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 KBS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에 서다

KBS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 출연 당시 모습

 

그러다 우연히 KBS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를 보고, 사연을 올리게 되어 출연을 하게 되었다. 그는 저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길을 걷습니다. 그때마다 새벽을 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안고 일터를 가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이 바짝 들고 힘이 생깁니다. 특히 눈이 내린 날이면 남겨진 저의 발자국을 보며 한발 한발 가수의 꿈에 다가가는 것 같아 행복합니다.

하지만 방학 때가 되면 일을 못하기 때문에 생활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런 날이면 새벽일을 하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모릅니다라며 담담하게 무대에서 말하며 노래를 불렀고 많은 사람들의 격려를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식당일을 하시다 오른쪽 팔에 큰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저는 어머니가 너무 열심히 일을 하셔서 팔에 근육이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봤더니 그게 종양덩어리였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죄송스러워요라며 그는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억눌렀다.

아침마당 출연이후 인간극장 제작팀에서 5부작 출연의사를 타진해 오기도 했다.

 


#글을 마치며

 

40대 늦은 나이에 가수로 입문한 나윤한 씨는 인터뷰를 마치며 돈을 못 벌어 그렇지 흉 볼 직업은 아니다고 힘주어 말했는데 그 말을 들으며 기자는 상당히 마음이 아팠다. 그는 저는 가수로서 성공을 못할지라도 결코 후회하진 않을 것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평범한 가장임에도 어려운 길로 들어 선 그는 다시 한 번 아무리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끝까지 걸어 나갈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뭔가 손에 잡히는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기자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생각만 하면 다시 힘이 생기고 행복해진다는 그에게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힘든 일도 지나갈 것이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이 글을 마치며 Peter McWilliams의 명언 한 자락을 남긴다.

'기꺼이 불편함을 택하라. 불편함을 편하게 생각하라. 그것이 힘들지도 모르지만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작은 댓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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