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
국내 최고 뇌의학자가 전하는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통찰

요리된 음식은 먹기가 편합니다. 불에 익히면 녹말은 젤라틴으로 콜라겐은 젤리로 바뀌어 부드러워지고 질긴 식물성 섬유질이나 동물의 근육은 연해지죠. 우리 조상들은 불을 쓰기 시작하면서 식사 시간이 짧아졌고 흡수되는 에너지 효율이 높아졌습니다. 따라서 식사 후 남는 시간에 사냥을 하거나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켰고, 소화 효율성 증가로 얻은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해 큰 뇌를 만들었습니다. 불에 의해 병원균이 제거돼 먹거리가 안전해졌다는 것도 큰 이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불을 이용해 요리를 한 것은 역사적으로 인간이 한 그 어떤 도전보다도 의미 있는 행위였습니다.

마늘, 양파, 오레가노, 후추 등 대부분의 양념은 병원균을 억제해 먹거리를 안전하게 만듭니다. 인도와 같이 더운 지방에서는 고기 요리에 쓰는 양념의 개수가 10개에 이르지만, 노르웨이와 같이 추운 지방에서는 사용하는 양념의 개수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어느 나라건 채소보다 고기 요리에 양념을 더 넣는 것은 이런 경험에 의한 지식일 겁니다.

입덧을 하는 임산부들이 강한 양념이 들어간 음식을 선호하는 이유도 양념의 항균작용 때문입니다. 임산부에게 수정란은 남의 세포입니다. 당연히 거부해야 할 대상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수정란을 죽이지 않고 반대로 자신의 면역작용을 약화시켜 수정란을 안고 가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면역작용의 약화로 외부 세균에 무방비 상태가 될 수 있으므로 임산부는 입덧을 유발시켜 약화된 면역을 보완했습니다. 일종의 조기 위험 신호와 같은 셈이죠. 임산부가 발효된 음식을 부패한 음식으로 과장 해석해 오판하는 것도 유사한 이유입니다. 임산부가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것 역시 캡사이신의 항균작용을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임산부들이 겪는 걱정 중 하나는 임신 중 매운 것을 즐겨 먹으면 아이가 아토피를 앓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입덧이냐 아토피냐! 매콤한 것이 입덧을 완화시키는 것을 경험한 임산부라면 큰 고민에 빠질 수 있을 겁니다.

20124월 필자의 연구팀은 피부과 부문 국제 저명 술지인 부과학저널journal of Dermatological Science’에 아토피 피부염 흰쥐 실험동물 모델을 보고했습니다. 이 모델은 신생기의 흰쥐 피하에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을 주입한 것으로, 자라면서 아주 심각한 아토피 피부염 증상을 보였습니다. 더구나 이 증상은 아토피 환자가 사춘기가 되면 증상이 완화되는 것과 유사하게 흰쥐의 사춘기인 10~12주령이 되자 서서히 소멸됐으며 아토피 환자와 같이 사춘기 이후에 재발하는 양상까지 보였습니다.

신생 쥐에 캡사이신을 투여한 것이 임산부가 매운 것을 먹은 것과는 같지 않으나, 흰쥐는 항상 미숙아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운 음식이 아토피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입니다. 다만 캡사이신이 아닌 마늘의 매운 성분인 알리신이나 양파의 올레신은 이런 작용이 없으니 안심하고 드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농업은 약 1만 년 전 신석기 혁명의 중심지였던 지중해의 동쪽, 지금의 터키와 시리아가 있는 지역에서 시작 지방의 수렵-채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찍이 열대인은 풍부한 자원으로 유복했으나 인구 증가로 인해 식량 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냥 도구개발로 사냥이 효과적으로 이뤄졌으나, 이로 인해 사냥 간의 유대 약화가 나타났고, 채취하는 식물의 양도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불확실한 식량 조달은 안정적인 식량 수급이 가능한 농사와 목축을 유도했습니다. 농사-목축인은 수렵-채취인보다 식단의 질이 떨어져 전반적으로 허약했지만 기아에 허덕이지 않고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정착 생활을 해 자손을 번창시킬 수 있었습니다.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탈출할 때 100만 명이었던 전 세계 인구수가 농사를 막 시작한 1만년 전에는 532만 명으로 9만 년 동안 미미하게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엄밀히 말하면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점의 전 세계 인구수는 11억 명으로 농사 덕분에 먹거리가 풍부했던 9,500년 동안 폭발적으 증가했습니다. 이는 농사가 인구를 기아로부터 탈출시켜 주었음을 말합니다. 더구나 농산물로 만든 이유식이 수유 기간을 줄여 임신을 촉진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농사의 기원인 밀 농사는 아주 작은 돌연변이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야생종 밀은 낱알이 줄기에 느슨하게 붙어 있어서 익는 족족 땅에 떨어졌기에 농사를 지어 수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낱알이 줄기에 단단하게 붙어 있는 돌연변이가 나타나 이 품종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씨를 퍼뜨려야 하는 밀에게는 낱알이 줄기에 계속 붙어 있는 것이 절대 불리하겠지만, 인간이 밀을 길러 효과적으로 수확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변화였습니다. 밀의 낱알이 줄기에 계속 붙어 있는 돌연변이를 발견한 사람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를 이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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