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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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 김기숙 기자
  • 승인 2020.01.0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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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숙/수필가. 수석동
김기숙/수필가. 수석동

이름두 물러유 승두 물러유.” 살다가 보면 엉뚱한 곳에서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지인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입술엔 루즈를 빨갛게 칠한 학생이 가방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좌불 안석이다. 거듭 세 바퀴째 대합실을 돌고 있다. 학생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남에게 말을 잘 거는 난 학생 있는 곳에 가서 학생 무슨 일 있능 겨, 핸드폰 잃어버렸어?” 나도 급해서 거듭 물어본다. 손에는 핸드폰을 꼭 쥐고 있다.

핸드폰이 아니구유. 지갑을 잃어버렸유.”

워디 가는 길이여.”

지금 천안으루 면접 보러 가는 길이 구먼유.”

차 삯은 있어?”

읎유.”

저런 워쩐댜, 시간은 멧시꺼여.”

지금 차 탈 시간이유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빈 가방만 자꾸 뒤집는다. 나도 난감하다. 이럴 땐 워떻게 해야 되나. 학생의 장래가 달려있는 면접이다. 면접을 못 보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고 모든 일이 뜻대로 안되면.......

학생의 앞날을 생각해서 돈 오만 원을 주려고 내 가방을 뒤지니까 수수돈만 삼만 원이 나온다. 숨 가쁜 시간이다. 왕복에다 점심 먹고 나름대로 계산 해 보니게 모자랄 것 같아 더 뒤져서 이만 원을 보태 주면서 빨리 가서 표를 끊으라고 등 떠밀었다. 그런데 옆에서 이런 모습을 본 어른들이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가라고 부추긴다. 급히 가는 학생 뒤에다 집에 가먼 엄마헌티 고마운 분이니 게 인사허구 돈두 돌려주라구 허여.” 부탁도 한다.

학생은 핸드폰을 주면서 내 번호를 찍으라고 한다. 삽시간에 일은 제대로 벌어진다. ‘늦은 아침에 뜨물 끓여 먹는다고 번호를 찍어주었다. 번호를 찍어준 것은 학생의 신분이 궁금해서 전화 한 번 해보려고 알려 준 것이다. 삼분 정도의 만남, 학생과 헤어지고 면접에 합격하라고 진심으로 빌고 빌었다. 학생이 떠나고 보니까 어느 사이 구경꾼이 새카맣게 모였다. 학생이 나가자 구경꾼들도 각자 흩어진다. 면접을 본다고 하니까 전화를 걸어 볼 수도 읎구. 어떤 학생인지 궁금하기가 짝이 읎다. 고등학교 면접일까, 대학교 면접일 까, 요즘 애들은 일찍 성숙하고 게다가 화장까지 했으니 말이다. 학생한테 지갑에는 얼마나 있느냐고 물어보니게 구만 원이란다. 내 자식 같은 심정이다. 오늘 이 시간은 금이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 날.

네 시가 넘어서 전화를 해 보았다. 학생은 면접을 보고 지금 서산에 오는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디서 사는 학생이냐고 물어 보니게 안면도에서 살고 중학생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조리과 면접을 보러갔다고 한다. 궁금증이 조금은 풀렸지만 무슨 대 탐험가마냥 미지의 세계로 자꾸 빠져든다. 이름도, 성도, 가족은 몇인지 등이다. 그리고 이틀 후에 문자가 왔는데 내용 인즉 이렇다.

할머니 고마웠어요. 그리고 돈 잘 썼어요. 집에 가서 돈을 부쳐 드릴 게요. 비록 면접은 떨어졌지만요. 지금은 집이 아니에요.” 어린것이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지갑을 잃어버리고 면접까지 떨어지다니... 이틀이나 늦게 문자를 보낸 것은 방황을 한 것 같았다.

며칠 있다 밤에 전화벨이 울린다. 모르는 전화번호다.

누구유!”

우리 지연이 돈을 주신 어른이지유.”

! 맞어유.”

지연이가유 그러는디유 할머니도 엄마처럼 여기저기 뒤져서 천 원, 오천 원짜리로 주셨다고 하면서 할머니가 너무 고마워서 버스 타고 가면서 울었대유.”

그리고 2차로 면접에 붙었어요.”

지연이 엄마도 학교급식 조리사란다. 지연이 엄마도 나도 할 말이 많다. 이렇게 저렇게 바빠서 전화를 진작 드려야 하는데 늦게 전화 드려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어르신 덕분에 지연이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통장번호를 보내 주어유~”한다.

2차로 면접에 붙었다고 하니까 반가운 마음에 나도 눈물이 왈칵 나온다. 지연이 엄마도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번 기회를 만약 놓쳤다면 생각도 하기 싫은 순간이었다고 한다.

“2차라도 붙었으니 잘 됐슈.”

그리구 입금 할 생각은 말어유. 돌려받을 생각은 전혀 읎유.”

학생이 안타깝고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칠 것만 같아서 했던 일이다. 전화상으로 사람을 대하여 보니 학생 부모님도 착하신 분들이었다.

통장번호를 보내라는 전화에 여러 번 거절했지만 지연이 엄마한테 오히려 짐을 주는 것만 같아서 통장번호를 주었다. 지연이 엄마와 난 같은 고향이기도 하다.

지연이 문자가 또 왔다. “할머니 덕분에 방학이 끝나면 학교 가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 할머니 감사 합니다.“

우리는 색다른 인연을 만나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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