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

나흥식 고려대학교의과대학 교수
나흥식 고려대학교의과대학 교수

심장혈관계는 닫힌회로입니다. 심장을 출발한 혈액이 동맥, 실핏줄, 정맥을 지나 심장으로 되돌아오는 순환회로이기 때문입니다. 닫힌회로에서는 압력(혈압)이 발생합니다. 혈압은 심장이 내보내는 혈액의 양과 혈관의 저항을 곱한 값으로 계산됩니다. 따라서 심장이 빠르고 강하게 뛰거나 전체 혈액량이 증가하거나 혈관이 좁아지면 혈압이 높아집니다.

건강검진을 하러 가면 꼭 혈압을 잽니다. “12080이요라던 간호사의 말이 귀에 익으실 겁니다. 하지만 120은뭐고 80은 뭔지 정작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앞에 숫자는 수축기 혈압이며 뒤에 숫자는 이완기 혈압입니다. 수축기 혈압은 뇌를 포함한 우리 몸 구석구석에 피를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압력입니다. 뇌가 발이나 손보다 심장에 가까이 있지만 뇌에 피를 공급하려면 중력에 역행해야 하므로 수축기 혈압 정도의 압력이 필요합니다.

저혈압 환자가 기절하는 것은 낮은 압력 때문에 뇌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입니다. 그런 환자가 기절하여 눕게 되면 중력에 대한 역행이 사라지므로 낮은 혈압으로도 뇌에 혈액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빈혈이나 저혈압을 앓고 있는 환자가 쓰러지는 것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려는 기가 막힌 우리 몸의 방어기전인 셈입니다. 저혈압으로 기절해 쓰러져 있는 사람을 절대 일으켜 세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뇌에 혈액 공급을 막는 해로운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키가 최대 6미터나 되는 기린의 수축기압은 270수은주밀리미터mnihig이며 이완기압은 180수은주밀리미터입니다. 120/80에 비하면 배가 넘는 압력입니다. 이 엄청난 혈압을 만들기 위해 기린의 심장은 무게가 10킬로그램이나 되며 기린을 해부해보면 심장이 가슴의 반을 차지합니다. 머리 꼭대기에 위치한 아주 작은 뇌를 위해 엄청나게 큰 심장을 작동시키고 있는 기린은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도태될 위험성마저 있어 보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많은 그림을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많은 그림에 옥의 티가 있습니다. 그 옥에 티를 과학적으로 한번 설명해보겠습니다.

 

심장에서 힘차게 출발한 피가 동맥과 실핏줄을 지나 정맥에 도달하면, 혈압은 거의 ‘0수은주밀리미터에 가까워집니다. 뇌나 얼굴과 같이 심장보다 높은 부위에 있는 장기의 정맥은 중력을 이용해 자신보다 아래에 위치한 심장으로 혈액을 쉽게 보낼 수 있지만 다리와 같이 심장보다 낮은 부위에 있는 정맥이 심장에 혈액을 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정맥은 혈관 주위에 있는 골격근의 수축에 의해 추진력을 얻습니다. 골격근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 정맥이 눌리고 펴지는 것을 반복하면서 혈액을 흐르게 하며 정맥의 2~3센티미터마다 있는 판막이 역류를 막아 혈액이 심장 쪽으로 흐르도록 도와줍니다. 걸어 다닐 때 보다 서 있을 때 다리가 더 붓는 것은 서 있을 때 골격근이 덜 수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면 몸이 공중에 뜨기 때문에, 다리의 어느 근육도 수축할 수가 없어서 다리의 정맥피가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됩니다. 이 여파는 실핏줄에 전달되어 혈장이 실핏줄 밖으로 빠져나가 다리는 붓고 그만큼 혈액의 양이 줄어들면서 뇌로 가는 혈액의 양도 줄어듭니다. 그러다 결국은 사망하게 되는 거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이유는 몸은 스스로를 쓰러뜨려 뇌에 혈액을 공급하려 했으나 팔다리가 못에 박혀 있어서 쓰러지지 못하고 고정되지 않은 머리만 숙여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그림이 좀 더 사실에 입각하려면 다리가 훨씬 더 부어 있어야 합니다. 뇌로 가는 피가 부족해 고개가 숙여졌다는 것은 많은 혈장이 빠져나가 혈액량이 상당히 줄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심한 출혈로 응급실에 온 환자는 얼굴이 백지장 같습니다. 교감신경의 흥분에 의해 피부의 혈관이 수축됐기 때문입니다. 출혈로 혈액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뇌나 심장등 중요 장기에 혈액을 제대로 보내기 위해 교감신경이 피부 등 덜 중요한 장기의 혈관을 수축시키는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혈관의 개폐 조절인자는 대사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국소조절과 자율신경계에 의해 결정되는 중앙조절이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인 뇌와 심장은 국소조절을 통해 자기 세포들의 대사와 산소 요구량만을 생각하며 혈류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다른 장기는 뒷전인 셈이죠 이 두 장기가 우리 몸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반면에 덜 중요한 장기인 피부나 소화기관은 교감신경에 의한 중앙조절에 따라 조종됩니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출혈로 혈액의 양이 줄어들면 뇌와 심장에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기 위해 다른 장기의 혈류가 줄어들어야 합니다. 이때 모든 장기가 뇌와 심장처럼 자기만을 생각한다면 우리 몸은 혈류가 부족해 공멸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교감신경은 피부나 소화기관과 같은 덜 중요한 장기의 혈관을 수축시켜 여분의 혈액을 뇌나 심장과 같은 중요 장기에 보내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방자치제에서도 위급한 상황에는 중앙정부가 개입하는 것과 유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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