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목적보다는 예방 차원에서 복용하는 것도 좋다!

장하영 약사의 이야기

장하영 세선약국 약사
장하영 세선약국 약사

혹시 채변봉투를 기억하는가? 아마도 필자 세대들은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담임 선생님께서 한 묶음 가져와 학생마다 한 장씩 나누어주시는 그 순간... 내 생체리듬과의 사투는 시작되었다. 너무나 강렬하였던지 그 기억은 지금도 흘려버릴 수 없다. 필자나 독자 제현 모두 그렇지 않았을까. 매 학기 봄, 가을마다 제출할 의무가 있었다. 90년대 초반 학생 인권을 강조하는 시대 풍조 때문인지 중학교에 입학하니 그런 의무가 사라졌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를 보면서 아기자기한 내 어린 추억을 꺼내 보곤 한다. 난 학창 시절 학교 화장실을 잘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변비가 있었나 싶다. 항상 그랬다. 손 씻기 위한 목적 외에는 학교 화장실에 가보았던 기억이 없다.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그냥 습관이었다. 이런 생활이 고등학생 시절까지 계속되었으니 내 몸도 참 대단타. 그런데 본디 그런 아이들이 있다. 나만 특별히 그랬던 건 아니다. 초등학생들은 배변 활동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 변비로 고생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러니 채변봉투를 받는 순간 며칠 동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봉투를 걷는 날은 단 하루였다. 그렇다 보니 제출 전날 밤 화장실에 가야 변 일부를 채취할 수 있었다. 반드시 말이다. 나처럼 변비가 있었던 아이들은 절묘한 타이밍이 필요하였다. 시험보다 더 큰 스트레스였다. 심지어는 변의(便意)가 느껴져도 참았다가 배변 날짜를 억지로 맞추었었다. 그런데 타이밍을 놓치는 아이들이 한 반에 몇 명씩은 있었다. 아량 깊은 선생님이라면 하루 연장해 주셨다. 그런데도 제출 못 하는 아이들이 꼭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꾸중과 타박을 감내해야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신문지를 쥐여 주며 마지막 기회를 주셨다. 수업이 종료될 때까지 학교 후미진 곳에서 강제로 채변해야 하였다.

그런데 학교에서 변을 수집한 이유가 있다. 인체 내부 장기에 기생충이 감염되었는가를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원리다. 변에 기생충이 섞여 나오면 당연히 감염되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정상일 것이다.

기생충이 체내에 가볍게 침입했을 때는 특별한 증상이 없다. 그리고 큰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심한 감염일 경우 피로감, 메스꺼움, 체중 감소, 장관운동 비정상, 설사, 복통 등의 다양한 소화관 질환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특별한 이유도 없이 소화불량이 오래 지속된다면 기생충 감염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기생충은 회충, 편충, 요충, 십이지장충, 디스토마, 민촌충 등 다양한 종이 있는데 생김새와 번식 위치에서 차이를 보인다. 비록 종은 다를지라도 삶의 방식은 동일하다. 숙주에 기생하면서, 필요한 영양분을 탈취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치료 방법도 종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종합 구충제를 복용하면 그만이다. 현재 시판되는 구충제는 크게 젤콤(플루벤다졸)과 젠텔(알벤다졸) 계열이다. 기생충이 영양분을 흡수 못 하게 하여 굶겨 사멸시키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보통 1회 복용으로 치료가 되지만 요충 같은 기생충은 알이 나중에 부화하는 경우가 있어서 수회의 복용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요충이 의심된다면 1주일 간격으로 적어도 2회 복용해야 한다. 연령대는 3(생후 24개월)부터 무조건 1정씩 복용하도록 하자.

구충제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위생 수준 향상으로 기생충이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감염률 2%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수치는 날것으로 먹는 회, 채소나 과일 섭취 증가 때문으로 보인다. 영양부족이 아닌 영양 과잉 시대에 살고 있으니 기생충에 영양분을 일부 빼앗긴다 해도 큰 문제는 없겠다. 물론 필자도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영 개운치 않다. 그래서 어떠한 결론을 내릴까 하고 고민해보았다.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구충제는 치료 목적보다 예방 목적이라 생각하고 복용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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