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문턱에서

최미향 취재 부장
최미향 취재 부장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에 엄마와 딸로 보이는 듯한 두 사람이 손을 꼭 잡은 채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고 서 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았던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차를 세워 돌아봤어요. 엄마인 듯한 분이 바람에 날리는 딸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줍니다. 아마도 마중 나온 듯한 모습이에요.

파란 불이 켜지고 그 둘은 총총히 제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여전히 뭔가를 얘기하면서 말이죠. 무거워 보이는 듯한 가방은 엄마의 등에 짊어진 채 말입니다. 갑자기 옛날 우리 엄마 모습이 눈앞을 탁 가로 막습니다. 우리 엄마도 그랬거든요.

당시 우리 집은 누에치는 집이라 늘 바빴습니다. 엄마는 캄캄한 밤이 되면 후레쉬 하나를 의지 삼아 다 큰 딸을 위해 정류장으로 나오셨지요. 어른 걸음으로 족히 30분은 될 거리를 힘든 몸 끌고 나오신 겁니다. 야간자습으로 힘들까봐 그리고 무서워할까봐 그랬겠지요.

가방 인니 도고.”

“괘안타. 힘들잖아.”

나는 어무이잖아 괘안타.”

무거운 가방을 척 울러 매고 당당히 걸었던 우리엄마.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든 일을 도맡아 했는데도 엄마들은 정말 하나도 힘이 안 드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들은 다 그카나? 힘 안든다고?”

다 글치. 진짜 힘 안드니까.”

장골이데이 진짜루. 남자로 태어날 걸 그랬다 옴마는.”

그라면 니가 몬 태어났잖아. 그래도 괘안나?”

아 맞네. 그라면 여자로 잘 태어났다.”

엄마가 꼭 잡아주는 손은 세상 어떤 손보다 포근했습니다.

엄마의 사랑으로 한 해 두 해가 갔고 드디어 결혼이란 걸 했습니다. 형제들 중 혼자만 지도에서도 찾아보지 않았던 먼 곳으로 시집가던 날, 엄마는 손가락을 그어가며 경주와 내가 갈 도시를 가리키며 속울음을 삼켰지요.

가서 힘들면 편지해라.”

알겠다. 힘들게 뭐 있노.”

저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에만 눈이 멀어 엄마의 어깨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니 엄마랑 떨어져도 괘안나?”

슬프지. 많이 슬프다.”

그런데 제 눈은 웃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뒤돌아 앉는 것도 모르고 자꾸 웃어버렸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엄마와 떨어져 산지도 꽤 오래 되었네요. 엄마는 요즘도 늘 말씀하십니다.

사랑한데이 우리 향이.”

나두 나두 나두 사랑해 엄마.”

니가 있어서 좋다. 우야든동 건강 잘 지키고 차 조심하고. 알겠나?”

에이 참, 내 걱정은 말고 엄마나 건강 잘 챙겨라.”

수화기는 놓였지만 엄마는 한참 동안 제 걱정으로 그렇게 수화기를 바라보고 있겠지요.

오늘 본 모녀의 모습이 머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이런 밤이면 정채봉 작가의 시가 미치도록 와 닿아요.

 

<어머니의 휴가>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5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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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에는 내 아이가 엄마를 찾는 것처럼 저도 제일 먼저 엄마를 찾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한 다섯 번은 불러봐야겠어요.

엄마엄마엄마엄마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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