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뇌의학자가 전하는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통찰-③

 

책(구입처: 서산시 문화서점, 서해서점, 중앙서점)

그리스도 교회가 회교도에게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찾기 위해 약 360년간 치른 십자군전쟁은 1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전쟁의 원인이 단지 성지 때문이었다는 것이 한심해 보이지만 성지 순례가 목숨보다도 더 중요했던 그들에게는 성지를 탈환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진리였을 겁니다.

현대에도 비슷하지만, 종교인 사이의 잔인함은 종교의 본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대단합니다. 십자군전쟁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현대인보다 머리가 나빠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진화의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능의 차이보다는 나치의 독일이나 제국시대의 일본에서 보았듯, 집단을 우매한 군중으로 몰아 가는 무서운 힘이 십자군전쟁을 일으킨 원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동안 커피에 들어 있는 카제인나트륨이 독극물처럼 취급된 적이 있습니다. 이 한심한 상황은 한 커피 회사가 판매량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경쟁사를 넘어뜨리기 위해 꾸며낸 광고 카피에서 시작됐습니다.

우유에는 지방, 유당, 유단백질이 들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지방을 빼면 무지방 우유가 되고, 유당까지 빼면 유단백질인 카제인만 남습니다. 물에 잘 녹도록 카제인에 나트륨을 붙인 것이 카제인나트륨입니다.

그런데 왜 이 카제인나트륨을 해롭다고 한 것일까요? 이 논리대로라면 카제인이 들어 있는 우유도 유해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카피로 인해 커피 매출 순위가 잠시 뒤바뀔 정도로 광고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두 회사의 사활을 건 싸움도 볼만했죠. 후에 한국식품안전연구원이 나서서 카제인나트륨이 인체에 무해하다고 발표하면서 이싸움은 일단락됐습니다. 그러나 유명 여배우가 자신이 들고 있던 커피잔을 가루로 뿌리면서 걸어가는 광고 장면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현재 독극물처럼 취급되는 인공조미료 MSG(monosodium glutamate)에 대한 오해도 카제인나트륨과 유사합니다. 오래전 국내의 어느 한 조미료 회사가 난공불락의 경쟁사를 모함하기 위해 꾸며낸 우리는 화학조미료인 MSG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로부터 오해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누명을 씌웠던 회사의 제품에도 MSG가 일정량 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쓴웃음을 짓게 합니다.

MSG의 성분인 글루탐산glutamate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입니다. 감칠맛은 기존에 4대 미각으로 알려진 단맛, 짠맛, 쓴맛, 신맛에 이어 새롭게 밝혀진 5번째 미각으로 단백질의 표지 역할을 하며 우리에게 쾌감을 선물합니다.

실제로 MSG가 미각이 둔해진 어르신들의 입맛을 돋게 하고, 입맛을 잃은 환자의 치료제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의학계에선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미각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신생아를 위해 모유에는 글루탐산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MSG가 해롭다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한때 일부 연구자들이 중국 음식을 먹은 후 나타나는 졸림, 두통, 천식, 매스꺼움 등을 MSG와 연관된 중화요리증후군Chinese restaurant syndrome’이라고 주장했으나, 최근 들어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이 증상 모두가 MSG와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MSG를 넣은 맛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이 된다면 모를까, 현재 의학적으로 밝혀진 인체에 대한 유해성은 없습니다. 혹시 아직도 MSG가 건강을 해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국민 일인당 MSG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런 일본이 최장수국이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혈액형과 성격을 연결시키려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입니다. 1970년 일본의 방송 프로듀서인 노미 마사히코 가 쓴 '혈액형 성격설'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자,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현재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일본보다도 더 혈액형별 성격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테말라에 가면 O형이 100퍼센트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과테말라 사람들은 모두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을까요? 위의 지도처럼 아메리카 모든 국가는 O형이 대부분이니 혈액형으로 성격을 맞추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현대인은 발달된 문명을 갖춘 복잡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신의 경지에 가까울 만큼 발달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 복잡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응은 커녕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기가 벅차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악착같이 따져서 진위를 밝히기보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매한 군''에 숨어버리려 합니다. 그런 방

법이 훨씬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누군가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놓은 '거짓진실' 속 우매한 군중으로 살아가는 일을 경계해야 하겠

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MSG나 카제인나트륨의 예처럼 말이죠.

 

<약력>

나흥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90년 모교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한 이래, 기초의학인 생리학 연구와 학생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우수 강의상인 석탑강의상18회 수상, 2017중앙일보가 선정한, 전국 17개 대학 32명의 대학교수 강의왕중 한 명이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케이무크(KMOOC, 일반인 대상 온라인 공개강좌)에서도 최고의 강의 평가를 받으며 2017년 교육부총리 표창장을 수상하는 등 학생 교육뿐 아니라 과학의 대중화 작업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한생리학회 이사장, 한국뇌신경과학회 회장, 한국뇌연구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신경병증성 통증 실험동물모델에 관한 연구가 독일 슈프링거Springer 출판사에서 발간한 통증백과사전Encyclopedia of Pain’에 실렸고, 그의 이름이 세계 3대 인명사전 마르키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에 등재되는 등 연구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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