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뇌의학자가 전하는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통찰-①

엔도르핀(endorphin, endo (, 내부)+morphine)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아편입니다. 엔도르핀은 심한 운동, 흥, 통증, 매운맛 등 강한 자극에 의해 뇌에서 분비되며 고통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매운맛에 중독되어 있다기보다는 먹은 후에 나오는 엔도르핀에 중독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는 달리는 도중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경험하게 됩니다. 러너스 하이는 이견이 있으나 엔도르핀의 분비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운동중독이라는 말도 엔도르핀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는 인류가 원시 시절 육체적 고통을 이기고 짐승을 끝까지 추적해 사냥에 성공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때론 엔도르핀의 진통작용이 근육골격계를 무리하게 작동시켜 근육 손상이나 피로 골절 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더구나 엔도르핀은 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어서 여자 운동선수를 월경 불순이나 무월경 환자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여자아이에게 너 그렇게 뛰어다니면 시집가서 아기 못 낳는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빈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소림사 스님이 끊임없는 무술 훈련을 하는 이유가 엔도르핀의 성 억제작용을 통해 성적 자극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극심한 훈련을 통해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운동선수들이 성적으로도 그만큼 강할지 의심해볼 여지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침술은 동양권에서 2,000년 넘게 시술되어 왔으며, 현재 160여 개 나라에서 시술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인정한 침술 적용 질환은 43개 정도입니다. 한의학의 대표적인 치료 방법 중 하나인 침술이 통증을 완화시키는 것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침의 진통작용이 엔도르핀의 분비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 이론은 엔도르핀 차단제에 의해 침의 진통작용이 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면서 더욱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릴리 교수는 따뜻한 소금물이 반쯤 채워진 격리탱크에 사람을 눕게 하고 외부 자극을 차단하면 엔도르핀이 분비된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연구 발표 이후 격리 탱크는 부유탱크noatation tank,싱크탱크think tank 등 다양한 형태로 개량되어 스트레스나 불면증 등을 치료하는 데 이용되고 있습니다.

외부 자극을 차단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격리탱크에 들어가는 것은 명상을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명상에 의해 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명상 중 외부나 내부의 자극이 줄어들어 엔도르핀이 분비되기 때문일 겁니다. 자극이 아주 강하거나 없을 때 모두 엔도르핀이 분비된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엔도르핀은 태아와는 뗄 수 없는 중요한 관계에 있습니다. 태아 쪽 태반은 엔도르핀을 분비해 영양분을 태아 쪽으로 많이 오게 합니다. 태아가 엔도르핀을 이용해 엄마를 기분 좋게 만들면서 자기의 잇속을 챙기려 엄마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으면 태반과 함께 엔도르핀도 사라져, 엔도르핀에 젖어 있던 엄마는 아편중독자가 금단 현상을 겪듯이 산후우울증에 빠집니다.

조금 다행스러운 것은 아기가 젖을 빨면 엄마의 뇌에서 옥시토신0xytocin과 함께 엔도르핀이 다시 분비되어 산후우울증이 완화된다는 것입니다. 이 와중에도 아기의 목적은 엄마의 건강이 아니라 젖이라는 것이 얄밉기도 합니다. (태아와 엄마의 갈등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임신중독은 태아가 자기에게 영양분이 잘 공급되도록 엄마의 혈압과 혈당을 높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엄마의 엔도르핀을 분비하게 하는 또 다는 자극은 피부 접촉입니다. 끊임없는 피부 접촉을 통해 엔도르핀이 분비되면 엄마와 아기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서로의 털을 골라주고 있는 원숭이들은 피부 접촉을 통해 서로에게 엔도르핀을 선물합니다. 반면 털 대신 옷을 입고 있는 인간은 상대적으로 피부 접촉이 부족하기에 피부 접촉으로 얻을 수 있는 엔도르핀 양이 원숭이에 비해 적습니다. 대신 인간은 웃음으로 엔도르핀을 보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많이 웃고, 피부 접촉(스킨십)도 많이 하길 권합니다.

혹 엔도르핀중독에 대해 걱정하는 이가 있다면, 아무리 웃어도 아편중독자가 될 정도로 엔도르핀이 나오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흥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나흥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고려대 나흥식 교수

1990년 모교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한 이래, 기초의학인 생리학 연구와 학생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우수 강의상인 '석탑강의상'18회 수상, 2017중앙일보가 선정한, 전국 17개 대학 32명의 대학교수 강의왕중 한 명이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케이무크(KMOOC, 일반인 대상 온라인 공개강좌)에서도 최고의 강의 평가를 받으며 2017년 교육부총리 표창장을 수상하는 등 학생 교육뿐 아니라 과학의 대중화 작업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한생리학회 이사장, 한국뇌신경과학회 회장, 한국뇌연구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신경병증성 통증 실험동물모델에 관한 연구가 독일 슈프링거Springer 출판사에서 발간한 '통증백과사전Encyclopedia of Pain'에 실렸고, 그의 이름이 세계 3대 인명사전 마르키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에 등재되는 등 연구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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