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미 시인의 이야기가 있는 詩」

 

잎들의 입속으로

 

폐렴 증세로 쿨룩거리던 밤

은행나무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여기는 은행나무 병실

마른 잎들은

젖은 채 매트 위에 쌓여갔다

모로 누운 은행의 눈은 감겼고

팔과 다리도 묶였다

씨알이 굵어야 제값을 받는다나

제 몸 마르는 줄 모르고

쿨룩대기만 했던 나무의 뿌리

떨어진 은행들의 신음

껍질에서 나는 독한 냄새

입과 코, 목까지 연결한 호스는 무균

은행나무 척추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기침도 사라진 정적

환청처럼 은행이 열리기 시작할 무렵

젖은 잎들의 입속으로

걸어간 사람 있었다

 

 

시작 노트

해마다 아버지는 은행을 보낸다. 기관지가 약한 딸을 챙기는 연례의식 같은 것이다. 씨알 굵은 것으로만 골라서 뽀얀 뜨물이 넘실거리듯 하얀 은행들이 자루에서 쏟아질 때 나는 아버지의 흰 이를 생각한다. 아마 보름 전쯤 되었을 거다. 올해 은행이 풍년이라서 평년 대비 수확이 좋다는 말끝에 혼자서 주우려니 진도가 안 나가고 밤에 자려면 다리에 쥐가 나서 죽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안 들었으면 모를까 들었으니 모른 척할 수도 없어 가서 도와주겠노라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은행 농사가 풍년인 만큼 손이 많이 가니, 할 일이 배로 늘어난 상태에서 아버지는 폐렴 증세로 입원을 하셨고 은행을 줍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이 걱정인 아버지. 쿨룩거리며 몸이 불편한데도 제때 은행 수확을 못 하게 된 처지를 비관하고 있으니 곁에서 보는 자식의 눈엔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올해는 아버지를 도와드리러 밭으로 파견 나간 형제자매가 아버지 대신 열심히 은행잎을 뒤적이며 은행을 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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