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가 모시는 게 제일이여”

국내 여행은 물론, 시내 아들 집에서 하룻밤 묵은 적도 없어

자신의 삶 뒤로하고 시부모 모셔 와

“어쩔 수 없지 뭐. 나 아니면 누가 할겨. 요양병원에 모셔도 되겠지만 자유롭지 못하잖여. 요양병원에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고 갑갑해서 사시기나 하겠어. 힘들어두 내가 모셔야지.”

수년 전 치매에 걸린 97세 고령의 시아버지와 98세 시어머니의 손과 발이 돼 극진히 모신 효부가 있어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주인공은 화수2리 박상분(72) 씨.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남편 강부윤(73) 씨와 결혼한 박 씨는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시부모뿐만 아니라 집안에는 늙으신 시조부모까지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이라면 시부모가 있는 것만 있는 것만으로도 따로 나가 살림을 차릴 계획을 세우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시조부모까지 모시며 그녀의 결혼 생활은 시작됐다.

시집살이가 있을까 덜컥 겁도 났지만, 화수리에 함께 사는 부모님 간 중매로 이어진 터라 막상 결혼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똑 부러지게 집안일을 거들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그녀는 항상 귀염을 받아 왔다고.

 

몸도 마음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아

“시조부모, 시부모 가릴 게 있던 시대가 아니었어. 당시만 해도 집안 어르신들을 모시고 산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지금 시대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따져가며 결혼들을 하지만 말여.”

집안 어른들을 모시고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을 함께 해왔기에 조금은 어려움이 덜하지만, 그녀마저도 요즘 들어 힘이 부친단다. 시부모님이 늙어가며 거동이 쉽지 않아졌고 수년 전 치매에 걸려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특히 자신의 나이도 나이인지라 몸 이곳저곳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여기에 남편과 함께 고된 농사일에 매진하고 있고 집안일까지 있으니 그녀의 하루는 고되기만 하다.

“몸도 마음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어. 사실 요즘 들어 조금은 짜증이 나기도 해. 그래도 시부모님 앞에서는 목소리 한번 높여 본 적 없지. 나 혼자 짜증 내고 삭혀 버리는 게 다여.”(웃음)

 

집 옆 요양원 권유에도 “내가 모신다”

요즘 들어 그녀의 하루는 유독 바쁘다. 평상시 해왔던 집안일에 농번기를 맞아 바빠진 일손, 집안일, 자식 걱정 등에 시부모의 병치레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뼈마디가 약해져 조금만 넘어지더라도 크게 다치는 게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은 시아버지와 몇 주 전 냉장고 문을 잡고 일어서려던 시아버지가 넘어지며 시어머니의 손을 깔고 앉아 다치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내의 병원에 주기적으로 들려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박 씨의 고집에 “집 옆에 바로 요양원이 들어서는 데 힘들일 것 없이 왔다 갔다 하며 조금은 짐을 더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늙고 쇠약해진 시부모를 모시는 자식 된 도리와 본인도 늙어감에 힘이 드는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자녀들 역시 집 옆에 들어서고 있는 요양원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는 게 어떻겠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지만,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그냥 내가 모시는 게 제일이여”라고 마무리했단다.

“우리 집에는 1년 365일 꽃게와 조기가 떨어지지 않어. 이게 있어야 식사를 제대로 하시거든. 요양원에 들어가시면 잡숫고 싶은 음식이라도 하나 제대로 드시겠어. 내가 해주는 밥이 최고지. 식사 마치고 물이라도 한잔 드시지 않는 분들이여. 물 대신 드링크 음료를 찾으실 만큼 까탈스러우시거든. 나 아니면 아무도 못혀. 이러니 내가 안 힘들고 배겨?”(웃음)

 

자연스레 제한된 그녀의 삶

박 씨는 치매에 걸려 아이처럼 변하신 시부모를 위해 바깥 외출도 거의 하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여행을 간다거나 해외여행을 간다던데 정작 본인은 평생 당일치기로 국내 여행 한 번 다녀온 적 없다. 하다못해 시내에 사는 큰아들(강응선) 집에서 하룻밤 묵어 본 적이 없다. 집에 있을 시부모 걱정에 자연스레 그녀의 삶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끼니도 챙겨 들여야지, 불편한 건 없는지 항상 둘러봐야지, 마음 편히 어딜 갈 수 있겠어? 그러다 보니 내 인생은 다산거지 뭐. 그래도 후회는 없어. 어쩔 수 없는 거잖여.”(웃음)

 

잘 자라준 자녀들, 건강한 시부모 ‘행복’

그래도 그녀는 행복하다. 시부모 모두 큰 탈 없이 건강하게나마 자신의 곁을 지켜 주고 있고 늦은 밤중에도 TV 리모컨을 잘못 조작해 TV가 안 나온다는 할아버지의 전화에 시내에서 뛰어오는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집 안에 어른들이 있으면 자녀들이 웃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법이여. 자연스러운 이치 아니겠는가. 힘들지는 몰라도 언젠간 나도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될 테니까 말여. 그렇다고 내가 더 늙어서 대접받겠다는 소리는 아녀. 난 내가 밥도 못해 먹을 정도 되면 보따리 싸서 요양원에 들어 갈겨. 요즘 세상에는 이게 맞는 거잖여.”(웃음)

박 씨는 “요즘 들어 소원이 있다면 시부모님 두 분 모두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살다가 내 품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마무리 지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인터뷰 중 불평 섞인 말들이 곳곳에서 엿보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항상 밝고 웃음이 넘쳤다. ‘그저 그냥 하는 말’일 뿐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희생해 가정과 남편, 시부모를 생각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며 살아왔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개인화되어버린 현시대의 가정들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