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안녕하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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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안녕하지 못한 이유
  • 서산시대
  • 승인 2015.03.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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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대 시론 - 신기원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서산시대 감사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는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시작되어 1960년 모든 단체장의 민선으로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듯하였으나 1961년 5·16군사쿠데타에 의해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30여년의 세월동안 강력한 중앙집권과 관치시대를 통해 경제개발제일주의와 국가안보지상주의가 추진됨으로써 지방자치는 흔적조차 사라졌다. 경제성장은 국민의식의 성장을 수반하여 1991년 지방의원선거가 실시되었고 1995년 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직접선거가 실시됨으로써 오늘날 지방자치시대 20년을 맞게 되었다.
민선자치 20년에 즈음하여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행정의 패러다임이 변했다는 것이다. 즉 관선시절에는 공무원들이 전부 중앙의 눈치만 살피고 주민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단체장의 임명권을 중앙에서 가지고 있다보니 이들은 어떻게 하면 중앙에 줄을 대서 임기를 보전하고 보다 좋은 곳으로 자리를 바꿔 탈 것인가에 온통 신경을 집중하였다. 이에 따라 부하공무원들도 원님 덕에 나발 좀 불어보자는 입장에서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했지 지역민들의 민원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다보니 자연히 관청 문이 높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연줄을 동원하든지 아니면 푼돈이라도 쥐어줘야 민원이 해결된다는 통념이 생겨났다.
지방자치는 이리한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단체장을 주민들이 선출하다 보니 단체장후보들은 지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공무원들도 덩달아 주민의 요구를 청취하는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인사권을 민선자치단체장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방의원들도 주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일조하였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지방자치의 어두운 면도 있다. 먼저 자치단체장을 선거를 통해서 뽑다보니 ‘돈 선거’ 등의 폐해가 나타났다. 주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돈으로 매수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표를 구걸하기 위해 거짓공약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결과 선거법 위반으로 자치단체장이 재판에 회부되고 재선거,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서산에서도 2차례 이런 사례가 발생하여 전국적인 관심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둘째, 행정의 불공정성이 나타났다. 자치단체장은 당선되면 해당지역의 소통령이다. 인사권과 예산권 및 도시계획을 비롯한 제반 권한을 다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과정에서 학연, 지연, 혈연 및 금전으로 얽혀서 당선되다 보니 이들의 요구를 듣지 않을 수 없다. 또 자신의 재선, 삼선을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 사단은 여기서 비롯된다. 인사비리, 이권개입, 인허가비리, 논공행상에 따른 인사 및 보복성인사로 보도되거나 토착세력과 연계하여 비리를 저질러 구속되는 경우가 이런 예이다.
셋째, 주민들이 원하는 행정개혁을 보기 어렵다. 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공직자출신, 정치인출신, 기업가출신, 학자출신, 시민단체출신 등 다양하다. 그런데 공직자출신은 공직내부를 잘 알기 때문에 또 공직자가 아닌 경우에는 공직사회를 잘 모르기 때문에 행정개혁에 나몰라 한다. 굳이 공무원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공무원 역시 4년간 기간제로 들어온 선출직이 굳건한 공직사회의 벽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복지부동으로 버티기에 들어간다. 약삭빠른 공무원은 선거과정에서부터 줄대기를 해서 출세를 보장받기도 한다. 이 점에서 지방의회가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제대로 해주면 다행인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권한부족, 전문성 부족, 정보부족, 인력부족, 노력부족 등으로. 이런 점에서 20년이 된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자화상은 아직 안녕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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