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두웅 편집국장
박두웅 편집국장

오랫만에 고향에 들렸다.

한 학기동안 고향의 중학교 마을신문 만들기강의를 맡게 됐다. 평소에도 업무 부하가 많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고향에서의 요청이라 흔쾌히 승낙했다. 꿈속에서도 가보고 싶은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그리움 탓이리라.

수업 때마다 한 두 시간 일찍 고향에 도착한다. 젊은 시절 잊고 지냈던 추억이 깃든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싶었다. 고추를 내놓고 동무들과 멱을 감던 개울이며, 지금은 사라진 5일 장터와 호떡 한 개에 5, 100원이며 20개에 다섯 개를 덤으로 주던 호떡집 등이 엊그제 기억같이 생생하다.

개울물은 말라 잡초만 무성하고,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동무들이지만 장소는 기억을 소환한다고 했던가 옛 기억이 너무나 아름답고 그립다.

마을이란? 아이들에게 있어 일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며, 특별할 것도 없는 삶의 공간이다. 굳이 마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생뚱 맞나보다.

마을은 농촌에 있다. 도시에서 무슨 무슨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이름 짓곤 한다. 이는 마을에 대한 그리움의 또 다른 표현일뿐 도시에 마을은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마을이 아니라 동네가 있을 뿐이다. 마을에는 이웃이 있고, 구성원 서로의 삶이 충돌하고 상호 영향을 미치는 공동체가 있다.

강의는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다. 2학년 전체 학생수라고 해봐야 14, 1학년은 5명에 불과하다하니 전국 시골학교마다 겪고 있는 폐교 위기가 남의 일만이 아니다.

키가 큰 편이었던 나는 학창시절 키 순서로 60번을 넘나들었다. 학년마다 3반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니 한 학년에 200여명가량으로 전교생은 600여명을 넘었었다.

마을 5일장은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찾아오는 우시장을 중심으로 활기찼다. 아버지를 따라 나선 장날은 국밥 한 그릇 얻어먹는 날이기도 했다.

마을이 세상을 구한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일갈을 이번 강의의 화두로 삼았다. 슈퍼맨도 어벤저스도 아닌 데 무슨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말인가? 마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은 더 황당한 주제다.

마을마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났고, 아이 울음소리가 그친지 오래다. 한 해가 지나면 돌아가신 어르신들의 체온조차 사라진 빈집들만이 을씨년스럽게 늘어간다. 세계를 구한다는 마을의 실상이 이러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마을의 붕괴는 왜 일어난 것일까?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도 나오지 않을까. 필자는 증기기관으로 상징되는 2차 산업혁명 이후 서구적 방식의 근대화가 그 원인이었음을 무겁게 제시한다. 인간 존엄성보다는 기계문명과 산업화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삶의 편리함이 일차적 가치로 설정되는 사회. 노동보다 자본이, 마을보다는 도시가, 지방보다는 중앙이, 그리고 정신보다는 물질이 우선되는 근대화의 한 파편이 마을을 파괴시켰고,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돈이 최고인 사회는 그 결과물이다.

요즘 아이들의 꿈이 돈이 많은 백수로 살고 싶다라고 한다. 과정은 생략되고 누리고 싶은 욕심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이에 근대화 과정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 온 어른들은 어른들의 깨진 거울이 아이들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자책한다. 본인은 돈이 최고인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 이런 사회는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역설이다.

5일 장터마다 원숭이를 무대 위에 올려 잔재주로 사람을 모으고 거침없는 입심으로 일명 만병통치약을 팔던 약장수가 있었다.

필자는 아이들에게 솔직해지고 싶다. 약장수가 침을 튕기며 판매에 열을 올리던 만병통치약은 세상에 없다. 마을이 세상을 구하기 전에, 먼저 마을이 살아야 한다.

마을이 살아나는 방법은 그리 먼 곳에 있지도,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개발 위주의 토목공사를 벌이기보다, 마을사람들끼리 즐기는 소박한 축제를 만들고, 몇몇 이웃이 모여 만든 음식을 나누는 곳이 마을이다. 그저 우리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자원을 이용해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거창한 프로젝트의 이름을 내걸고 도시라는 악다구니 소굴에서 벌어지는 무한 생존경쟁을 마을에 까지 가지고 올 필요는 없다.

마을 사람끼리 협동하고 연대하는 일을 만들어야 한다. 마을에 동네책방, 카페 등 학습공동체를 만들고, 행정지원을 받아 어르신들이 모이시는 경로당에 의료복지, 공동부엌, 쉼터를 설치해야 한다. 로컬푸드, 푸드플랜은 지속가능한 농촌지역 만들기에 가장 좋은 마을재생프로그램이다. 마을기업을 통해 푸드플랜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자립에 나서야 한다.

마을은 돈이 최고인 세상에 병들고 지친 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다. 마을은 치유의 공간이며 사람이 살만한 곳이다, 돈보다는 인간 존엄성이. 욕심보다는 배려가, 물질보다는 정신이 우선되는 그런 마을을 세계는 갈망하고 있다. ‘마을이 세상을 구하는 일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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