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두웅 편집국장
박두웅 편집국장

며칠 있으면 2019 기해년 추석이다. 우리는 달을 기준으로 설날을 정월 대보름이라고 하듯이, 추석은 팔월 한가위라고 말한다.

추석의 순우리말은 가위이다. 우리말에 절반이나 가운데라는 뜻으로 쓰이는 가웃이란 말에서 왔다. ‘가위는 바로 이 가웃이 변한 말이다. 더운 때와 추운 때의 한가운데를 가리킨다. 가위크다는 뜻의 우리말 을 덧붙여서 한가위라고 부른다.

 

 

하늘은 높고 청명하다. 밤하늘 둥근 보름달처럼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고 나무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부족함이 없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좌로 치우치고 우로 치우치고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매사에 이편인지, 저편인지를 따진다. 편을 가를 이유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도 버릇처럼 그렇게 한다.

정신병적 편가르기 현상은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몰아간다.

페이스북에 난무하는 글을 보면 반대 논리를 주장하는 무리를 부모 죽인 철천지원수 대하는 것보다 더 심하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고집한다. 토론은 사라지고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논쟁을 기대하기 어렵다.

유가 경전 중용(中庸)’에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이라고 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용이라고 한다중용은 치우치지 않고 의지하지 않아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치라고 했다.

고향 집 담 너머로 두둥실 떠 있는 보름달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1년 열두 개의 보름달 중에서도 가장 크고 밝고 넉넉한 달. 한가위 보름달은 온 세상을 골고루 밝게 비춘다.

가웃크다을 만나 듯 고향을 찾은 국민 모두의 가슴 속에 보름달 하나씩 담아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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