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영 약사의 「약」이야기-⑪
과거 학부시절 이런 얘기가 있었다. 이 세상에 감기 환자와 소화불량 환자가 없다면 병원, 약국, 그리고 제약회사까지 다 망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그만큼 감기나 소화불량은 흔한 질환이다. 특히 요즘처럼 날씨가 더울 때에는 소화불량 환자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진다. 소화불량에 별명을 붙여준다면 난 주저하지 않고 ‘카멜레온’이라고 하고 싶다. 사람마다, 시간대마다, 먹은 음식물에 따라서, 증상에 대한 표현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답답하다”, “꽉 막혔다”, “부글부글 끓는다”, “불쾌한 느낌이 든다”, “콕콕 찌르고 쑤신다.”... 이처럼 임상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소화불량에 대하여 묘사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그러나 그런 묘사로는 정확한 뜻 전달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듣는 입장에서도 답답할 뿐이다.
주관적 증상이 다양한 만큼 다른 질환과 헛갈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위염, 장염과는 증상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속이 불편하기만 하면 막연히 소화불량이라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 물론 큰 범위 내에서 소화불량이 아우르고 있으니 그리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다. 그러나 협소적 의미에서 소화불량이란 ‘기능성 위장장애’를 의미한다. 이는 명치를 중심으로 하는 복부의 불편감, 음식이 걸린 듯한 느낌이 특징으로 주로 상부위장관인 식도, 위, 십이지장의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긴다. 간혹 속 쓰릴 때도 소화불량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위염, 십이지장염, 소화성 궤양일 가능성이 높으며 소화불량과는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
그렇다면 소화불량의 원인은 무엇인가?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소화불량이 있다고 하여 딱히 원인을 특정하기가 어렵다. 그냥 최근에 무엇을 먹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일단 평소에 복용하지 않았던 약물이 원인인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진통제나, 스테로이드 계통 약물 등이 있다. 그리고 음식물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지방질이 많은 음식은 탄수화물에 비하여 음식물 소화시간이 길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정신적인 요인도 원인이 될 수 있다. 눈칫밥은 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지막으로 다른 질환이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소화성궤양, 식도염, 담도 질환 등이 있을 때 만성적인 소화불량을 겪게 된다.
이처럼 소화불량의 증상과 원인은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나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재발하여도, 건강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따라서 예후는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치료 방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우선 상식적인 측면에서 약을 쓰지 않고 생활습관을 바꾸거나 식이요법을 통하여 자연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가장 좋다. 병원, 약국에 가면 가장 흔하게 듣는 얘기가 무엇인가? 술, 담배와 커피를 절제하라고 한다. 백번 지당하지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따라서 적절한 약물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약물은 일반의약품 중심으로 설명하겠다. 치료 약물은 크게 소화효소제와 위장운동촉진제, 그리고 한방제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소화효소제는 말 그대로 소화효소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우리 몸 안 소화기관에서 분비되는 소화액 성분을 직접 복용하는 것이다. 시제품으로는 베아제, 아진탈, 훼스탈 등이 있다. 위장운동촉진제는 저하된 위장기관의 운동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여 위, 소장 등의 연동운동이 활발해진다. 시제품으로는 현재 트리메부틴(Trimebutin) 성분 하나만이 남아 있다. 트리메부틴은 위장관 운동을 돕는 역할을 하므로 구토의 증상이 있을 때에도 쓰인다. 한방 제제(한약을 한방 원리에 따라 배합한 의약품)로는 반하사심탕이 있다.
이러한 약물들을 병용 투여(동시 투여)하는 것은 어떨까? 상호작용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면 큰 문제는 없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도 유의한 부작용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약물 복용은 필수불가결인 동시에 필요악이다. 따라서 여러 약을 무조건 조합하여 복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소한의 약으로 최적의 효과를 내는 방안을 의약사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