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변화와 추억의 가게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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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변화와 추억의 가게들-1
  • 한기홍
  • 승인 2019.08.1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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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한기홍 향토사학자
한기홍 향토사학자

현재 서산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은 동부시장이다. 그런데 동부시장이 형성되기 이전에 구장뻘(구시장)이라 하여 지금의 번화로 한가운데(현 윤은아트홀 건너 서해주차장 일원) 시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서산읍성 안에 시장이 있었다는 사실은 거의 모르고 있다.

필자가 쓴 서산 원도심 이야기를 바탕으로 2회에 걸쳐서 서산의 시장과 추억의 가게들에 대하여 연재하며 서산 원도심의 지난 추억을 되살려보고자 한다.

 

서산에는 두 곳의 성터가 있었다. 하나는 현재 서산초등학교 자리에 위치한 활성과 다른 하나는 서산시청을 중심으로 한 서산읍성 터이다. 조선환여승람에 의하면 활성은 신라성이라 한다. ,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쌓은 성인 것이다. 그리고 서산읍성은 조선시대에 축성되었다. 이 두 곳이 해당 시기에 있어서 우리 서산지역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시장이 형성되기 마련인데 그 시장의 발달과 변화는 그 도시의 발달과 변화를 살펴보는 가늠자가 된다.

활성이 서산읍성보다 시대적으로 훨씬 오래전이지만 활성에 대한 자료는 전무하다시피하여 활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의 농성(農城)이라는 게 알 수 있는 전부이다.

活城 在瑞山面市場南端高三尺廣袤八十間諺傳新羅時農城

활성 서산면 시장 남단에 있으며 높이 3척 길이 80간이다. 신라시대 농성이라 전해 온다.

현재까지는 이 내용이 우리가 활성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전부이다.

그리고 서산읍성이 있는데 이 또한 성벽의 흔적은 서산시청 뒤쪽으로 약간의 흔적이 있는데 그나마 뚜렷하지 않다. 다만 지적도와 몇 몇 자료를 바탕으로 서산읍성의 규모와 형태 등은 추정이 가능하다.

서산읍성은 동서남쪽 방향으로 성문이 있었고 남문 안쪽에 읍성 내 시장이 있었다. 그리고 도시규모가 커지면서 시장이 읍성안과 밖에 각각 생겼고 나중에 생긴 것이 남문 밖에 생긴 시장으로 현재 구장뻘 또는 구시장으로 일컬어지는 서해주차장 주변이다. 구시장은 서산시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1956년 동부시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동부시장은 현재 고운로 남쪽에 형성되는데 1호광장과 고운로 북쪽에는 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어 동부시장의 형성으로 주거지역에서 시장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동부시장의 발전으로 구시장쪽 지역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져서 1960년대에 장옥을 지어 발전을 도모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의 상권은 동부시장으로 완전히 옮겨져 구시장은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1979년 터미널이 현 서산축협자리에서 지금의 동부시장 옆으로 옮겨감에 따라서 동부시장이 더 활성화 되고 터미널과 동부시장을 연결하는 시장통로를 따라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었다. 한 때 동부시장 철물상가가 동부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쪽이었는데 터미널을 통해 왕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동부시장의 입구가 자연스럽게 바뀌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산에 상설시장이 형성되기 전에는 5일장을 중심으로 보부상들이 시장을 형성했는데 이러한 시장 형태는 1960년대까지 남아있었다고 한다. 옛날 서산군의 시장은 운산, 서산, 태안, 부석, 해미로 이어지는 5일장으로 운산이 1일과 6, 서산이 2일과 7, 태안이 3일과 8, 부석이 4일과 9, 해미가 5일과 10일에 열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운산, 서산, 태안, 부석, 해미의 시장을 차례로 다니며 장사를 했다.

서산읍성시장(성내장)2일과 7일에 열리고 성외장(서산읍성 남문밖 구장뻘)4일과 9일에 열렸다고 하는데 서산읍성시장(성내장)이 밖으로 나오면서 서산장은 2일과 7일장으로 통일되게 된다. 구장뻘이라고 불리는 구시장에는 현재 3개동의 장옥이 남아 있다. 난전터로 쓰이던 곳은 현재 서해주차장이 되었고 장옥을 일부 개조하여 길가로 서너 곳의 국수집이 영업을 하고 있다.

번화1로와 고운로 사이의 윤은아트홀 주변에 서산읍성 남문이 위치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읍내동과 동문동의 경계선이 서산읍성의 성벽이 위치한 곳이다. 읍성의 성벽을 따라서 읍내동과 동문동이 나뉘어진 것이다.

구장뻘(구시장)이 있던 아래 쪽 지금의 동헌로 119에 우시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낙원식당이 있었는데 바로 이곳이 중고제라는 판소리의 본향이며 판소리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은 한 번씩은 다녀간 유명한 식당이 있었다.

나무전(나무시장)은 구장뻘(구시장)주변 이 곳 저곳에 산재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부시장이 1956년 개설됨으로써 시장이 구시장에서 동부시장으로 옮겨지는데 나무전은 시장 4길의 공용주차장 자리로 옮겼고 우시장은 그 옆으로 옮겨져 운영되다가 읍내2로 서부상가 뒤쪽에서 운영되다가 공림삼거리 우시장으로 옮겼다. 지금은 음암(중앙병원 대로 건너편)에 우시장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옛 상점 중에서 기억에 남는 가게로는 화교로 초창기부터 영업을 해왔던 남신상회가 있었고 지금도 원도심 지역에서 오랜 기간 영업을 하고 있는 상점으로는 가로상회, 유화약국, 삼화약국, 한일식당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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