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이 성성한 실버밴드의 로큰롤 무대 기대하세요”

팔봉면 어송리에 사는 손영강(78)씨의 평생직업은 ‘드러머’였다.
한창 사춘기 시절이었던 10대 후반 드럼의 매력에 푹 빠진 뒤 평생을 헤어나질 못했으니 참으로 긴 세월동안 종사한 직업인 셈이다.
80을 목전에 둔 고령이지만 그는 아직도 현역이다. 앞에 실버라는 단어가 붙긴 했어도 아직도 드럼을 사랑하는 팔팔한 ‘드러머’다
드럼 장단에 미쳐 두 손에 항상 스틱을 쥐고, 담벼락이고 깡통이고 두드려대던 소년은 부모님의 반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생일대의 모험을 감행했다고 한다. 집을 뛰쳐나와 동춘서커스 단에 들어간 것이다. 그때가 19살, 그 후 밴드 뒤치다꺼리와 엄격한 규율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그토록 좋아했던 드럼을 칠 수 있어 마냥 좋았다. 제대로 된 연주 실력을 갖춘 20대 초반부터 미8군 무대에 올랐으니 평생을 무대에서 산 셈이나 마찬가지다.
“한창 무대에서 공연 할 때만 해도 밴드 위치가 매우 중요했지요. 밴드 없는 무대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라 인기도 좋았고, 지금 연예인들처럼 팬들도 많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한민국 1세대 드럼연주자로 손꼽히는 그는 오랜 세월 숱한 무대에서 숱한 유명가수들과 공연을 하며 명성을 쌓았고, 남부러울 것 없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인기와 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1970년대 초 리듬박스라는 생소한 장비가 나타나 순식간에 무대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이후 많은 연주인들이 무대를 떠났고, 그의 인생도 화려함을 잃어갔지만 마지막까지 무대를 지켰다. 그만큼 드럼이 좋았고, 무대가 좋았다. 이제는 칠만큼 쳤다는 생각이 든 15년 전 무대를 떠나 야인이 됐고, 우연한 기회에 팔봉과 인연이 닿아 10년 전부터 서산사람이 됐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곳에서 60년 전 느꼈던 강렬한 느낌을 다시 받았다고 한다. 어는 동네잔치 집에서 드럼을 연주한 것이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 깨운 것이다. 반환점을 이미 돌아 결승점을 향하는 인생 후반이지만 그는 제2의 무대를 준비 중이다. 몇 해 전부터 민들레음악봉사단의 악단장을 맡아 음악을 통한 봉사활동에 매진하며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원대한 계획도 세웠다. 지역에 숨어있는 고수들을 모아 제대로 된 실버밴드를 만들어 보자는 의지가 생겼다. 단원 모집과 금전문제 등 넘어야할 산이 많지만 음악을 통해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열정으로 극복해나갈 심산이다.
소싯적 잘나갔던 무대연주자들을 그는 기다리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5인조 실버밴드가 연주하는 로큰롤 무대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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