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환자에게 힘이 되는 간호사이고 싶어”

 >> 편집자주_ 우리 주변에는 사회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많은 이가 손사래 치며 꺼리는 일을 자부심을 갖고 해내고 있는 이웃들. 본지는 서산에 사는 이웃들을 만나 그들의 직업이야기를 들어 봤다.

25년 째 간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인화 씨는 현재 엠산후조리원 실장으로 근무 중에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녀는 학창시절부터 슈바이처와 같은 의료선교사를 꿈꿔 왔다.
명지성모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한 김 씨의 담당 파트는 수술실이었다. 새내기 간호사에게는 벅찬 일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한다는 마음에 첫발을 내딛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잡혀있는 수술일정에 3교대라는 열악한 근무조건이었지만 수술을 마치고 차도를 보이는 환자를 볼 때면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병원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강하게 내비쳐지는 곳이 수술실이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의 경우 수술실에 들어간다는 생각은 쉽사리 할 수 없다. 전문교육을 받은 간호사라고 하더라도 초년생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곳이다. 특히 환자의 병세가 심각해 수술도중 사망하는 일이 일어날 때에는 일에 대한 보람보다 슬픔이 더 크게 다가 왔다.
1년 정도 명지성모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돌연 고향인 서산에 내려오기로 결심했다. 병원생활의 각박함과 서울의 복잡함이 더해져 그녀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기 때문이다.
고향에 내려온 그녀는 사산의료원에 입사했다. 서울에서 1년간의 경력을 살려 수술실을 주로 출입하는 간호사로 활동하게 되면서 큰 변화는 없었지만 고향이라는 여건이 마음을 편하게 달래 줄 수 있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김 씨는 환자들의 마음이 어떨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 불안, 긴장... 이런 환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수술 일정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무거워지는 환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간호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수술실을 출입하다보면 크고 작은 병을 떠나 수술을 앞둔 환자들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왕왕 볼 수 있죠. 수술 일정이 나온 환자들에게 꽃을 드리며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함께 기도했어요. 종교적인 부분을 떠나 간호사인 제가 환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죠.”
자신의 고된 업무에 지치고 힘들었지만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생각하고 따스한 손길을 건네는 모습이 환자와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김 씨는 1996년 모범직원으로 추천돼 충남도지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수술에 대한 두려움에 무거웠던 병실의 분위기가 더 밝아지고 환자들의 모습에서 미소를 볼 수 있었다고.
김 씨는 “환자들을 위해 간호사인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음을 졸이는 환자들을 보면서 *호스피스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이들 위해 호스피스 활동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호스피스에 대한 공부를 진행한 그녀는 1996년 경기도에 위치한 샘물호스피스에 입사했다. 기존에 받아오던 월급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입이었지만 삶의 마지막을 앞둔 환자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수술실에서 근무할 당시만 해도 수술 이후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는 환자들의 희망을 볼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느낄 수 없었다. 전신마비를 앓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특히 환자들이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하루하루는 비관적이었다.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마음을 다해 간호하는 일이었다. 전신마비를 앓고 있는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사비를 털어 CD플레이어와 CD를 선물하기도 했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정서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비록 그녀가 환자들의 상황이 호전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없었지만 마음만은 고통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당시 CD플레이어와 CD를 선물했던 환자분에게서 안부의 인사가 오기도 합니다. 혹은 가족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가서 만나기도 하죠. 환자와 간호사로 만났던 인연이었지만 직업보다 마음으로 환자를 대했기에 유대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호사, 이제는 3D 업종
호스피스로 활동하면서 김 씨는 남편(유인주)과 결혼식을 올렸고 만삭이 되면서 고향 서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결혼 또는 출산 후 직장을 그만두고 가사에 매진하는 풍속이 남아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김 씨는 자신의 꿈을 펼치고자 서산성내과 인공신장실에 입사해 간호사로서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당시 성내과는 새로 생긴 병원이었기에 간호 인력이 매우 부족했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백의의 천사’에서 ‘3D’ 업종으로 치부되기 시작하면서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도 점차 줄어드는 실정이었고,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을 시작하고자 하는 젊은 간호사들의 업무강도는 몇 배는 더 강하게 다가왔다. 새내기 간호사들이 입사를 하고는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만에 두 손 들고 퇴사하는 상황이었으니 기존에 남아 있는 간호사들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환자에 대한 마음과 자신의 꿈을 힘으로 삼아 그녀는 근무했고 일의 어려움 보다 환자를 생각하는 간호사들이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 정상적인 근무여건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서산중앙병원이 개원을 하게 됐다. 서산중앙병원 역시 새롭게 개원한 상황이었기에 의료진의 손길이 매우 부족했다. 힘든 상황이 될 거라는 걸 뻔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안정된 직장보다 인력이 부족해 환자들이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할 거란 생각이 먼저 들어 서산중앙병원 수술실 부서장으로 입사했다.
“환자는 모두 같은 환자라고 생각해요. 이 병원 환자, 저 병원 환자로 나눌 일이 아니죠. 환자들이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고통 받고 힘들어 하는 모습이 먼저 떠올라 힘든 일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 다시 몸을 던졌죠.”

신생아, 산모들과 시작을 함께하는 간호사
오랜 시간 간호사로 활동했지만 이제 그녀는 또 다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2011년 미래앤자모산후조리원에 실장으로 입사해 현재 앰산부인과 산후조리원 실장으로 재직하며 신생아와 산모를 돌보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녀가 신생아와 산모를 돌보는 일에 마음을 갖게 된 이유는 호스피스로 활동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던 이들을 봐왔던 영향이 컸다. 삶의 의미와 함께 항상 삶의 끝이 공존했던 곳과 달리 이곳은 신생아와 산모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시작이 항상 함께 하기 때문이다.
“산후조리원은 경험이 없었던 의료분야였죠. 부족한 경험을 메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요. 신생아와 산모들에게 부족함 없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거든요. 이들이 출발해 만들어갈 삶의 시작에 제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그녀는 신생아들의 힘찬 울음소리를 듣고 힘을 얻고 있다. 항상 환자들에게 힘이 되어왔지만 이제는 이들에게 오히려 힘을 얻고 있다는 새로운 즐거움이 그녀를 행복하게 한다.
김 씨는 “앞으로 10년은 더 간호사로 활발히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간호사로서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이 편안하고도 인간답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위안과 안락을 베푸는 봉사 활동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즉, 호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와 그의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로 남은 여생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인 돌봄을 통해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하며, 사별 후 가족이 갖는 고통과 슬픔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총체적인 돌봄(holistic care)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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