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항상 새롭게 변해야 생명력 유지”

김현구(88) 전 문화원장을 처음 만났을 때 연륜 넘치는 노신사란 첫인상이 머릿속에 딱 들어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섣부른 판단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90세를 바라보는 노신사지만 그의 머릿속 생각은 그 어떤 젊은이 보다 열정적이었다.

김 전 원장은 대화 도중 ‘젊었을 적 건방진 생각’을 여러 번 했다며 웃었다.

그가 말하는 건방진 생각의 정의를 잘 되짚어 보니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한발 앞서가는 생각을 그렇게 불렀구나하고 곧 이해가 간다.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젊은 시절 김 전 원장은 대학 졸업 후 공직기회도 마다하고, 건방진 생각 끝에 고향에 눌러 앉았다. 아니 엄청난 일을 벌였다.

4H구락부 지도자를 시작으로 농협 창설 멤버, 전국 최초의 리‧동단위 소규모농협통합, 의식계몽운동 서산군 책임자 역임, 생약초 재배 권장 등 남들보다 몇 걸음은 앞서간 생각으로 수많은 결과물을 이뤄냈다. 이렇듯 그의 젊은 시절은 문화예술 분야보다는 사회운동 쪽에 비중이 더 컸다. 그러던 그가 지금처럼 서산문화예술의 산증인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983년 제2대 문화원장에 취임한 것이 큰 원인이 됐다.

취임 당시 문화원은 말뿐인 기관이었고, 실제적인 활동은 극히 미비한 상태였다. 이런 문화원을 가만히 놔두지 못한 것도 남과는 다른 그의 ‘건방진 생각’ 때문이었다.

“문화는 항상 변하고 새로워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취임할 당시에는 그런 면이 상당히 부족했어요. 사회운동에 열심이었던 것처럼 문화원을 재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원장 취임 후 불모지 상태나 다름없던 서산지역의 문화예술 환경을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서산태안정체성 확립을 위해 18여개월동안 기층문화와 민속조사를 벌였고, 문화유적지 지표조사를 실시했다. 이때 작성한 학술보고서로 유네스코 국제 학술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현재 국제 유명 대학 6곳의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남과 다르고 앞서가는 생각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서산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던 공간이 전무하던 시절 지금의 서산문화원을 신축했고, 서산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해미읍성 축제와 제1회 서산문화제(87년) 등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서산의 문화예술을 널리 알리는 한편 지역문화예술인들에게는 끼를 발산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했다. 김 전 원장의 활약상은 서산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전국에서 모인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지역문화발전 대책위원회에 참여해 특별법인 지역문화원 조성법을 입안해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원의 근간을 마련한 인물 중 한사람이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세월이 그렇게 빨리 가는 지도 몰랐다는 김 전 원장은 지난 2003년 퇴임할 때까지 20여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서산지역 문화예술의 최전방에서 문화예술인들의 든든한 보호막 역할을 해왔고 퇴임 후에도 역사에서 아예 사라져 있던 류방택 선생을 다시 빛을 보게 만드는 등 끝임 없는 활동을 하고 있다.

문화원장 재직시절인 지난 1989년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지역 언론이 필요하다는 의무감으로 충서신보란 지역신문을 발간하기도 한 김 전 원장은 앞으로 서산시대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조언과 함께 문화예술에 대한 끝없는 애정을 나타냈다.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문화고 예술입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도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힘으로 서산지역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을 겁니다”

다시 한 번 느꼈다. 김 전 원장의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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