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하면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마을

▲ 마을입구에 위치한 송내달내마을 표지석. 탑곡3리의 달래는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도 알아주는 명품 농작물이다

달래로 유명한 음암면 탑곡3리(이장 안창식)는 마을이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자리 잡아 옛날에는 ‘송내(松內)’란 이름으로 불렸다.
노인정 이름도 송내 노인정이라 지었고, 마을입구에 떡 하니 버티고 선 마을표지석에도 송내 달래마을이라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는 걸 보면 마을주민들이 송내란 이름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탑곡3리는 달래 재배로 명성이 높은 곳인데 전성기 시절에는 서산에서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했고, 그중 3분의 1은 탑곡3리가 책임질 정도였다고 한다.
가을철부터 늦봄(10~5월)까지 재배하는 달래 특성상 이 마을은 1년 내내 쉴 틈 없이 바쁘다.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마을과는 달리 농한기라는 단어가 생소할 정도다.
60여 년 전 마을의 한 주민이 운산면에서 달래를 얻어다가 키운 것이 시초가 됐다는 탑곡3리의 달래재배는 그 후로 마을의 주력 재배품종으로 자리 잡아, 현재도 36명의 작목반원들이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또한 얼마 전에는 서산달래영농조합법인이 마을에 들어서 서산 달래의 명성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이러한 주민들의 부지런함이 경사도 이끌어 냈는데 지난달 26일 서산시와 신세계푸드의 상생협력MOU에서 달래가 당당히 지역 우수농산물로 선정되며 새로운 판로개척에 성공한 것이다.
경사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이 마을 출신으로 구한말 성균관 박사를 지낸 직암 이철승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유허비가 마을회관 앞 공원에 조성될 계획이어서 탑곡3리에 달래에 이어 큰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철승 선생은 조선이 주권을 상실하자 일본의 간섭아래에서는 교육을 할 수 없다며 고향에 낙향해 활발한 후학양성에 매진했는데 탑곡3리에서도 제자가 서당을 운영했으며 천안, 당진, 신양, 면천 등에서 많은 제자들이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스승의 항일정신을 본받아 각 지역에서 민족혼을 지키는데 노력했다. 이번 이철승 선생 현양사업은 음암면향토발전추진회가 현양사업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추진하고 있어 탑곡3리 뿐만 아니라 음암면 전체의 위상을 높이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나이 먹은 노인들도 달래농사는 거뜬히 지을 수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탑곡3리는 조용하지만 실속 있는 발전이 계속되고 있는 알찬 마을이다.

인터뷰 안창식 이장
“전국 최고의 달래마을 만드는데 노력”  

안창식 이장은 탑곡3리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35살 때 마을일을  보기 시작해 65살이 됐으니 강산이 딱 3번 변했다.
긴 시간동안 이장 업무를 맡아온 만큼 마을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안 미친 곳이 없다.
마을회관 건립, 찜질방 시설 완비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안 이장은 특히나 마을 정중앙의 토지를 구입해 주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송내 공원을 조성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소나무 숲에 자리 잡은 팔각정으로 이뤄진 쉼터와 넓은 마을회관 주차장 등은 미래를 내다본 안 이장과 주민들의 안목이 만들어 낸 명작 중 하나다.
이만하면 됐다싶을 만도 하지만 안 이장은 지금도 부지런히 마을의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고령화 등으로 예전만 못한 달래 특화마을의 명성을 이어가는 것도, 무리한 작업으로 각종 농작업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살펴드리는 것도 이장인 자신이 신경써야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달래 작업에 알맞은 신형 농기계를 발명해 활용하고, 과거 농작업 안전모델 시범마을로 선정되기 위해 노력한 것도 다 이런 생각 때문이다.
적게는 1~2천에서 1억까지 소득을 올리는 농가들이 있는 만큼 앞으로도 달래를 마을의 주력상품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농촌에 대한 자부심과 농민으로서의 긍지가 높은 안 이장의 전진은 앞으로도 한참동안 계속될 것이란 희망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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