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속에서 행복을 찾다”

뇌졸중으로 얻은 장애, 생각하기 나름
“나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세상만사는 새옹지마라 했던가.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될 수도 있는 삶 속에서 뜻하지 않게 찾아온 화를 이겨내고 복을 만들어 낸 이들을 왕왕 찾아볼 수 있다.
석림동 민형란(62) 씨는 후천적 장애를 갖고 있다. 23년 전,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뇌졸중은 그녀의 평범했던 생활을 한순간에 무너트렸다.
23년 전 그날, 어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일과를 마무리하고 잠을 청한 민 씨는 낯선 병원에서 눈을 떳다. 뇌졸중이었다.
간밤에 오른쪽 뇌에서 출혈이 일어나 이틀 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단다. 다행히 일어나지 못하는 민 씨를 가족들이 아침 일찍 발견해 병원으로 급히 이송했지만 왼쪽 몸을 전혀 가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신경까지 문제가 생겨 왼쪽 눈의 시력도 차츰 떨어져 갈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왜 내게 이런 일이...”
평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 들었고 눈을 뜨고 나니 장애가 생겨 버렸다. 웃음도,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허무하기만 했다. 자신의 처지를 인지하고 세상을 비관하기 까지 몇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울했어요.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장애를 갖고 태어나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도 장애를 마주하지만 내가 이런 일을 겪을 거라는 상상은 전혀 못했죠. 당연하게 움직이던 몸이 내 뜻을 거부하기 시작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모든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더군요.”
다시 정상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거란 희망과 기대도 해봤다. 하지만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씩은 기억이 필름 끊기 듯 드문드문해 그녀의 마음을 더 헤집어 놓기만 했다. 오랜 시간 부정적인 생각이 지속되다보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그녀가 정신적으로 지치기 시작하면서 병원에서는 여러 곳을 다니고,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좋을 거라는 진단을 내렸고, 3개월 만에 병원 문턱을 넘어 그녀가 있던 사회로 다시 돌아 올 수 있었다.
“남편과 하나 뿐인 아들을 서울에 두고 고향인 서산으로 내려 왔어요. 복잡한 도심보다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고향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게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 였어요.”

‘장애’ 따가운 시선
갑갑했던 병원을 벗어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녀는 또 다른 벽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시선’ 이었다. “다리 저는 아줌마”는 우스개소리였고 심할 때는 “저런 사람은 얼마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래도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재활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향 서산에 살고 있던 언니(민형숙)와 함께 옥녀봉을 오르고 서울을 오고가며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다. 오랜 시간 끝에도 차도가 보이지 않아 언니에게 화풀이도 많이 했었다.
민 씨는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의 시선이 항상 신경 쓰였다”며 “장애를 갖고 보니 무시 받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들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년 만에 다시 일어서다’
“어린 시절 서예를 배운 적이 있었죠. 집중력을 기를 수 있고 마음을 편안하게 다스릴 수 있어 다시 시작해 봤어요. 몸이 따라주지 않아 힘들었지만 서예를 할 수 있도록 종이를 접어 펼쳐주셨던 이숙자(새터서예학원) 강사님의 따뜻한 행동에 점차 용기를 얻게 됐죠.”
세상에는 자신 보다 겉으로 보이는 장애를 먼저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민 씨 그대로를 바라봐 주는 사람도 있었다. 불편한 몸에 조금이라도 서예를 하기 편하도록 일일이 서예도구를 준비해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고.
그렇게 10년을 넘게 서예학원에서 서예를 배우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 나기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재활치료를 나가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됐던 그녀가 서산터미널을 거쳐 서울의 병원까지 혼자 왕복을 할 수 있게 됐다.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혼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게 10여년 만이었으니까요. 그때 느꼈던 성취감은 절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자신감으로 뇌졸중 이겨내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과 세상을 질책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하자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 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웃들을 위해 봉사를 하기 시작했고. 밝아진 마음 때문인지 늘어난 활동량 때문인지 몸상태는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던 몸에 자유가 찾아오자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욕구도 생겼다. 가사일에 얽매여 배울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배워보고 싶었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2년 전 다시 찾아온 뇌졸중으로 이번에는 오른쪽 몸을 쓸 수 없게 된 탓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직후 바로 병원으로 이송돼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았다. 특히 이번에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꾸준히 재활치료에 전념했다. 이제는 몸상태도 다시 호전돼 혼자서 외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을 회복했다.
최근에는 서산장애인복지관(관장 김준곤)에서 진행하는 정보화 교육(강사 전현숙)을 시작해 컴퓨터를 배우고 있을 정도다.
“지금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즐길 수 있다는데 큰 기쁨을 느끼고 있어요. 마음하나 바꾼 것 뿐인데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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