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장애인복지관 이희중

1995년 11월 18일 갑자기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귀가하던 중 쓰러진 후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지체장애 2급의 장애인이 되었다. 한창 혈기왕성하던 40대에 장애인이 된 나는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절망 속에 빠져 삶의 의욕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온전치 않은 걸음걸이를 사람들이 힐끔 힐끔 쳐다보는 시선들이 싫어 극단적인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밖에 나가기가 싫어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던 어느 날 집으로 배달된 장애인 신문을 통해 서산시 장애인복지관 컴퓨터 무료교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바로 전화를 하였다. 상담선생님이 친절히 상담을 해주셔서 등록을 하고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였지만 오른손이 온전치 않아 마우스를 다루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 나고 건강하던 지난날과 비교가 되면서 ‘내 주제에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되지도 않는 일 헛고생 하지 말고 포기할까. 아니면 도전해 볼까?’ 수없이 되뇌던 어느 날 박새 한 마리가 땅콩을 물고 나무 밑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저 작은새가 단단한 껍질을 깨고 알맹이를 먹을 수 있을까?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자그마한 발로 움켜쥐고 부리로 쪼아 보지만 끄덕도 않는 땅콩 부리에 온 신경과 힘을 다해 힘껏 내리쪼다 중심을 잃고 나뒹굴기를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 작은 부리로 계속 쪼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박새가 껍질을 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속껍질을 벗겨내고 알맹이만 먹고 있는 것이다. 땅콩 한 알로 배를 채우고 남은 한 알은 나무 틈에 숨겨두고 기쁨의 행복한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실로 가슴 찡한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 박새를 보면서 조금 불편하고 힘이 들고 잘 안된다고 포기하려 했던 자신이 ‘한갓 미물인 박새만도 못 하구나.’라는 생각에 반성하고 ‘그래 포기하지 말고 도전 해보자.’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배우고 연습하기를 거듭하였다.
오른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오타도 많이 나고 마우스를 잘못 클릭하기가 다반사라 그럴 때 마다 나오는 건 한숨이요. 짜증의 연속이었다.
왜 내가 무엇을 잘못 하였기에 이런 고통을 받고 힘들게 살아가야 하나 하늘을 원망 하기도하고 몸이 온전하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실의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박새를 생각하고 지금보다 더한 상황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주어진 시간과 상관없이 매일 복지관에 나와 열심을 다해 노력해 보지만 잘 되지 않기는 매한가지 쉽게 절망하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포기할까! 아니야. 그럴 수 없지. 안되면 되게 해보자!’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오른쪽 세 손가락(새끼손가락, 약지, 장지)을 묶고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물리치료도 받으면서 계속 연습하니 조금씩이지만 차츰 나아지는 게 아닌가? ‘어 되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 하며는 쨍 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박새처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한 끝에 떨리는 마음으로 내 생전 처음으로 컴퓨터 한글 자격증 시험을 보았다. 큰 기대를 갖고 합격 결과를 기다리는데 결과를 보고 살짝 실망스런 마음이 들었다. 합격은 했으나, C등급이었다.
‘눈물 나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 때문에 다시 승급 시험을 보았지만 결과는 B등급으로 한 등급 올라가는데 만족해야 했다. 처음 컴퓨터를 배우던 때를 생각하면 대단한 성과라 기뻐하고 자축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이 차치 않았는지 ‘더 열심히 노력해서 더 좋은 성과를 내야지.’라는 생각으로 어렵고 두렵다는 생각보다 배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좀 더 노력하고 공부해서 엑셀은 C등급 합격, 파워포인트는 B등급으로 합격해서 모두 3개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파워포인트는 아쉽게 10점 차이로 B등급을 받아 다시 승급 심사를 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나중을 위해 남겨 두기로 하였다.
요즘은 복지관에서 선생님께 인터넷을 배우고 있다. 부러진 가지에 옹이가 생겨 흉해보여도 잎이 나고 열매가 맺듯이 내 삶을 다시금 일으켜 새워준 이곳 복지관에서의 생활에 점점 재미가 붙고 있다.
잘 되지 않던 타자도 계속된 연습과 노력으로 오른손을 쓰는 요령이 생기더니 손가락 끝에서 톡 톡 튀어나가는 글자에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좋다.
지금은 컴퓨터실에 수업을 오셔서 힘들어 하시는 분들을 보면 먼저 말을 걸고 나의 지난이야기를 해드린다. ‘힘내세요. 저도 아직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못하지만 물리치료도 받고 배우려고 노력하니 조금씩이지만 나아지네요.’ ‘처음 배울 때 나보다는 잘하시네요. 힘내세요!!’ 힘을 드리고 있다.
장애인이라 좌절하지 말고 도전을 하시라고 이야기하면서 나 또한 박새에게 배운것 처럼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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